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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이크가 명예로운 군인이 되길 바랬던 퇴역 군인 행크 디어필드는 참전 후 귀환한 아들이 외출 후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다. 아들이 귀국했다는 소식도 모르고 있던 헌병 수사관 출신 행크는 탈영 처리될 위기에 처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군부대로 향한다. 단순한 마약관련 사건으로 아들의 실종을 처리하려는 군수사대를 의심한 행크는 지역 관할 형사인 에밀리 샌더스와 함께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선다. 전직 수사관 출신답게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해 가던 중 아들 마이크와 전쟁에서 함께 했던 전우들을 만난 후 결국 그 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군 당국과 지역 경찰과의 갈등은 심해져 간다. 마침내 아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행크는 그 동안 조국에 충성했던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아들의 죽음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간직해온 신념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스포일러 주의


스펙터클이 아닌 현실 속에 남겨진 전쟁의 이면

이라크 전쟁에서 귀환한 아들이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으러 부대로 떠난 행크(토미 리 존스). 아들의 전우들을 만나 보지만 뚜렷한 행방을 아는 이가 없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부터 이 아버지는 죽음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데 진실을 알게 될수록 자신이 고수해 온 가치와 신념이 뒤흔들리게 된다. 이 아버지는 본인이 한때 군인이었으며 두 아들을 직접 전쟁터로 보낸 장본인이다. 이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충성과 헌신은 말로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굳건하고 완고했다. 그러나 그가 전쟁터로 보낸 둘째 아들 마이크는 처참히 살해당했다. 부모와 사이도 좋았고 착했던 아들이었지만 전쟁터에 다녀온 마이크는 입이 거칠고 마약을 하고 스트립 댄서를 모욕하는 폭력적인 군인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붙은 '위생병'이라는 별명도 그가 이라크에서 생포한 포로의 상처를 헤집으며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붙여준 거라고 하니 행크는 더욱 혼란스러워 진다.
이렇게 이 영화는 전쟁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스펙터클이 없다. 다만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에 다가서는 아버지의 절망스러운 눈만 있을 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미국'

아들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한 후 집으로 돌아온 행크가 한 일은 아들이 보내온 낡은 성조기를 거꾸로 매다는 일이었다. 국기를 거꾸로 다는 것은 국제적 조난 신호를 뜻하는 것이라며 국기를 바로 걸어야 한다고 훈수를 두었던 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성조기를 거꾸로 매달고 깃대를 테잎으로 감아 봉해 버린다. 그에게 영예와 자긍심, 충성의 대상이었던 조국인 미국은 그의 선량했던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 괴물로 만들었으며 적이 아닌 또다른 동료 괴물들에 의해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뿐만 아니라 정작 자신은 왜 아들이 애타게 아버지 도움이 필요하다며 울먹였을 때 그것을 외면했던가. 그렇다. 자신 역시 아들이 죽도록 내버려 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믿어온 모든 가치가 한낱 살인기계를 양성하는 국가관에 복무해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조국 미국이 다른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국기를 거꾸로 닮으로써 스스로 공표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모든 기성세대가 자신의 아들들을 괴물 제조공장으로 보내 버리는 가해자이자 공범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정신적 조난 상태에 빠진 미국을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전쟁만큼 무서운 '방관'과 '방조'

여기서 '방조죄'는 행크와 함께 수사에 나선 여형사 에밀리(샤를리즈 테론)에게도 성립된다. 그녀는 한 여인이 자신의 애완견을 때려 죽인 남편을 신고하러 경찰서로 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 그녀를 돌려 보낸다. 결국 남편에 의해 욕조에서 익사당한 그 여인의 손을 부여잡은 에밀리도 자신이 왜 그때 그 여인을 모른 척 했을까 뼈아프게 뉘우쳤을 것이다. (이 때 아내를 살해한 그 남편 역시 참전 용사였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 역시 '전쟁'이 만들어 낸 하나의 '괴물'이었다.)
결국 폭력과 범죄와 전쟁은 모두 '악'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키우는 것은 바로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방조'와 '방관', '외면'이다. 폴 해기스는 이렇게 전쟁을 둘러싼 모든 혐의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물론 미국내에는 여전히 직장내 여성차별이라든가 인종차별과 같은 고질적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사회 구성원 간의 이성과 화해로 극복 가능한 반면 전쟁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폴 해기스 감독은 스스로 병들어 가고 있는 미국에게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고백을 이 영화 한 편에 덤덤하면서도 충분히 고통스럽게 담아내었다.



'엘라의 계곡'

'엘라의 계곡'을 제목으로 택한 이유는 뭘까. 괴물을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맞서야 한다는 다윗 이야기의 교훈은 결국 괴물에게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군인 정신의 논리를 미화한 전설이 아닌가. 행크의 아들 마이크는 바로 그 군인 정신이 낳은 부작용 때문에 살해되었건만. 그렇다면 이 제목은 이제부터라도 인류는 역사 안에 놓인 수많은 '엘라의 계곡'을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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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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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성훈 2012/01/21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대충 영화 봐서 이해를 잘 못했는데 여기와서 이해 제대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