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근무하는 신부 ‘상현’은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 하다가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개발 실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실험 도중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고,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하지만 그 피는 상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렸다.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와 살인을 원치 않는 신앙심의 충돌은 상현을 짓누르지만 피를 먹지 않고 그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살인하지 않고 사람의 피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상현은 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고 기도를 청하는 신봉자들 사이에서 어린 시절 친구 ‘강우’와 그의 아내 ‘태주’를 만나게 된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태주의 묘한 매력에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느낀다. 태주 또한 히스테리컬한 시어머니와 무능력한 남편에게 억눌렸던 욕망을 일깨워준 상현에게 집착하고 위험한 사랑에 빠져든다.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태주를 사랑하게 된 상현은 끝내 신부의 옷을 벗고 그녀의 세계로 들어 간다. 인간적 욕망의 기쁨이 이런 것이었던가. 이제 모든 쾌락을 갈구하게 된 상현은 신부라는 굴레를 벗어 던진다.
점점 더 대담해져만 가는 상현과 태주의 사랑.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태주는 두려움에 거리를 두지만 그것도 잠시, 상현의 가공할 힘을 이용해 남편을 죽이자고 유혹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더욱 그를 조여오는 태주. 살인만은 피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태주를 위해 강우를 죽이기 위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사랑,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될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고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상현의 기도)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감독 중의 한 명.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를 이제야 보았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에 관한 이야기, 김옥빈보다 송강호 노출이 더 충격적인 이야기 정도의 정보만을 접한 채 극장으로 향했다. 모든 예측은 어긋날 때 가장 쾌감이 강하다. 그러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 아무런 예측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영화 감상법이다.
박찬욱 감독은 일정한 스타일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데 그런 점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충분히 만족감을 준 듯. 사실 이번 영화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나 심지어 <친절한 금자씨>에 비하면 굉장히 대중친화적인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좋아하는 정신분석학적 키워드들이 난해하게 숨어있지 않고 마구 흘러 넘치기 때문. 하지만 역시 불편하고 역겨울 수도 있다. 그건 박찬욱 감독만이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자 고약한 코드이기도 하다.
학대받는 초라한 아내의 모습, 신부를 사랑하는 동안 욕정에 타오르는 여인의 모습, 공포에 질린 표정, 뱀파이어가 된 이후 색기가 흘러 넘치는 모습, 사랑하거나 절규하는 모습 등 매 순간 그녀는 변신을 거듭한다. 김옥빈의 흰 피부와 큰 눈망울은 가련해 보이기도, 순결함과 동시에 음탕해 보이는 여주인공 태주를 표현하기에 매우 잘 들어맞는다. 젊고 하얗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라니... 적당히 늙고 검은 옷을 두른 신부이자 어둠의 자식인 뱀파이어 상현(송강호)의 외관과 가장 시각적으로 충돌하면서도 묘한 어울림을 빚어내기에 최적인 '육체'가 아닌가. 특히 그녀의 흰 피부 덕분에 그녀의 푸른 원피스나 입가의 핏물 모두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다.
신하균과 김해숙의 연기 역시 좋았지만 그 배우들 각자가 가진 아우라가 너무 강해서 역할이 다소 작아 보이는 듯한 느낌도 있다. 조금만 그들의 유명세가 덜 했다면 극중 역할에 대한 몰입도가 더욱 컸을텐데. 특히 신하균이 송강호와 어릴 적 친구라는 설정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가만 보면 박찬욱 감독은 캐릭터와 실제 배우들 간의 나이차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올드보이>에서 최민식과 유지태가 동창이었다는 설정은 캐스팅 과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박쥐>의 경우 그 역할은 굳이 신하균이 아니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아담과 이브 모티브를 차용하기도 한다. 상현이 백신개발 프로그램에 자원하는 것도 이브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것이었고 상현은 자신의 피를 태주에게 나누어 먹임으로써 그녀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때문에 갈등에 이르게 되고 스스로 심판을 내리는 자가 된다. 여기서 상현과 태주는 각각 2가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자신을 복제하여 여성 뱀파이어를 창조하는 상현은 아담이자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그의 갈비뼈(피)에서 난 태주는 이브이자, 욕망이라는 새로운 '앎'에 눈을 뜨게 하는 뱀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같은 성경 뒤틀기는 불경스럽지만 그래서 더 은근한 쾌감이 느껴지는 박찬욱식 화법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실생활 무기', 이번 영화에서는 바로 쪽가위였다. 기생처럼 치장한 태주(김옥빈)는 '행복한복집'에 앉아서 쪽가위로 한복의 동정을 뜯어내면서 김해숙에게 말한다. 이렇게 사는 게 싫다고. 그리고 살인을 주저하는 상현과 달리 쪽가위를 손에 쥔 태주는 남자를 가차없이 살해하며 피를 마신다.(이 영화에서 여성은 살해되지 않는다.) 여성이 사용하는 작은 소품이 남성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가위란 물건에는 결정적으로 '거세'의 기능이 숨겨져 있다.
이 영화가 내내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극렬한 청각효과음 때문이기도 하다. 태주가 밤에 골목을 달리며 숨을 몰아쉬는 소리부터, 피를 들이마시는, 혹은 서로의 몸을 탐하는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고 자극적이어서 마치 상현이 지닌 뱀파이어의 청력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또 물과 피의 뒤섞임 역시 비위에 거슬린다. 피는 그들의 일용한 양식이지만 물은 그들이 공모해 살해한 강우가 흠뻑 젖은 채 그들 사이를 배회할 때 공포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눈물, 콧물, 피와 와인, 물침대와 피바다, 모든 액체가 뒤섞이고 범벅이 된 듯한, 나를 살게 하는 것이 피인지 물인지,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득한 세계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인 듯.
만화 캐릭터같은 강우 엄마(김해숙). 비현실적인 무국적 분위기의 공간에서 마작을 두고 있다. 이 모임의 구성원은 환자이거나 경찰이었던 자이거나 인간이 아닌(뱀파이어) 자이거나 학대하거나 받는 자이거나 외국인... 모두 불균질한 상태의 인물들이다.
결국 박찬욱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야기는 종교가 말하는 구원이었을까. 결국 '신의 뜻'이란 건 없다는 것? 하지만 오히려 이 영화 안에서 종교의 의미는 반박당한다. 상현(송강호)이 아프리카에서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은 것도, 학대받는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그 안에 신의 뜻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되듯이 모든 건 '심리적'인 면이 크다. 500명 중에 유일하게 살아돌아온 신부라고 해서 그의 기도가 무조건 영험할 것이란 건 결국 그렇게 믿고 싶은 신도들의 심리적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어떨 땐 한낱 자살이 환경과 구경꾼들의 모의에 따라 순교로 추앙받게 되기도 하지 않던가. 신은 그 과정 어느 지점에 얼마만큼이나 존재한단 말인가.
상현과 태주의 마지막 종말은 더 이상 도피할 곳 없는 불륜 치정극 주인공들의 자살인가, 아니면 더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희생이자 순교인가. 영화는 상현이 태주에게 신겨 주었던 신발를 비추는 채로 끝난다. 신발은 흔히 자살하는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기는 물건이다. 이들의 죽음이 자살인지, 순교인지, 그들의 욕망이 죄악인지 자연의 섭리인지는 보는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그건 모두 개인의 '심리적'인 견해에서 비롯될 것임이 분명하고 그것이 곧 인간 본원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머러스하고 관능&도발적이어서 좋았던 영화. 하지만 박찬욱 인생 최고의 영화를 만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 그래서 더욱더 앞으로가 기대된다는.
★★★★★ : 판타스틱!!!!!!
★★★★☆ : 이 정도면 Good~ (취향을 고려하세요)
★★★☆☆ : 본전 생각이 살짝.
★★☆☆☆ : 이거 누구 보라고 만든건가요?
★☆☆☆☆ : 이래저래 자원낭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먹는'는 행위나 먹을 것의 의미가 참 중요하게 다뤄지는, 또한 '흰색'이 상징하는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눈에 띄는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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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7 - [신씨의 리뷰/영화] -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박찬욱이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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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리뷰 멋지네요^^*
감사합니다. ^^
전 이 영화에서 김옥빈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태초의 이브처럼 원초적 욕망이 잘 묻어나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습니다.
세밀한 리뷰 잘 읽고 박쥐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네 송강호야 워낙 훌륭한 배우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김옥빈의 연기열정을 재발견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앞으로 유심히 지켜보게 될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제일먼저 든 생각이 아담과 하와 였는데..
저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능력이 안되서 말이죠.
보고 난후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저에게는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다시보고 평을 제대로 내보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기분 좋아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영민한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죠. ^^
다시 리뷰 쓰신다면 트랙백 부탁드려요~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영화에서는 상현보다는 태주가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김옥빈, 원래도 호감이었는데 앞으로 더 기대가 되구요 ^^
** 트랙백 하나는 잘못걸었네요 ㅡㅡ;; 죄송^^
전 김옥빈 무호감이었는데 이번 영화를 계기로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동안 출연했던 영화들도 보고 싶어질 정도라는.
댓글 감사합니다. ^^
그리고 잘못 거신 트랙백은 제가 삭제했어요. 괜찮겠죠? ㅎㅎ
잘하셨어요 ^^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린거예요...
와.. 2009/05/12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 잘봤습니다...
이 영화에서 몇가지밖에 못보고 많이봤다고 생각한 제가 하찮아지는군요...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것은.. ;;;
어쨌든 댓글과 칭찬 감사합니다. ^^;
제가 미처 짚어내지 못한 부분이나 상상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포함된 리뷰여서 읽는내내 즐거웠습니다. 저도 김옥빈의 연기는 현재 네티즌들에 의해 많이 평가절하된 면이 있다고 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천가지 만가지 해석이 나와서 씹어볼수록 재밌는 영화인 것 같아요.
김옥빈은 나이들수록 더 멋있는 배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