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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위의 세 남자 - 8점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문예출판사
인간이여, 잡동사니를 버려라! 당신의 보트 인생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것만으로 채우라.
소박한 짐과 꾸밈없는 오락거리,이름값을 하는 친구 한두명,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고양이 한 마리,개 한 마리,그리고 파이프 한 두 개,간소한 먹을 거리와 입을 거리,그리고 조금 풍족한 마실 거리,갈증은 위험한 증상이니까.

- 본문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단순한 세 남자의 보트 여행기다. 소설은 작가로 짐작되는 J의 시점으로 진행되며 그의 두 친구 해리스와 조지, 그리고 그들의 애완견 몽모렌시가 겪는 사건사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건 소설이라기보단 일종의 시트콤으로 보는 게 더 알맞을 지도... 보트를 몰고 강으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서로 투닥거리며 벌이는 에피소드들은 과연 그들이 합심해서 뭔갈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 감정이 그들에 대한 한심함이라기보다는 경외심에 가깝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산만하고 부산스러우며 단순하고도 추진력없고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서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고 결국 보트를 강으로 끌고 나갈 수 있었던 걸까. 결국 그들은 해낸 거다. 많은 곡절이 있긴 했지만, 이슬비에도 흠뻑 젖고 솔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유약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그들은 목표를 이룬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보트로 템즈 강을 여행하는 거였지, 여행을 온전하게 끝마치는 것은 그들의 목표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여행 중 사건 하나를 겪으면 그것과 관련된 온갖 추억과 에피소드들이 소세지처럼 줄줄이 딸려 나온다. 그걸 따라 읽다 보면 사실 그들이 실제로 겪은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건 분명 작가가 직접 겪지 않았으면 결코 모를, 디테일하면서도 쫌스러운 기억력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심중의 캐릭터들을 그렇게 많이 생산해 낼 수 없는 거다. 그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을거란 생각이 드니, 그 시대 태어나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어 그런 삶.. 뭐 보트를 타고 가끔 강에 서로를 빠뜨리거나 노로 엉덩이를 찌르거나 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거나 하면서 여행 한번쯤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보트 뿐 아니라 작가는 <자전거를 탄 세 남자>라는 비스꾸무리한 소설을 또 쓰기도 했다. 그 사람은 친구들과 아마 평생을 이렇게 살았을 것만 같다.) 사실 이런 좀 모자란 듯한 캐릭터는 오늘날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들 뿐더러 함께 일하기도 피곤한 스타일로 치부되곤 하니까.. 똑소리 나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캐릭터들을 소설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할 수 밖에. 그리고 푼수를 떨어도 혼자는 외롭지 않은가. 그럴 때 그룹이란, 정확히 말해 나랑 별반 다를 것 없는 친구를 곁에 둔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뻘소리에도 기꺼이 응대해 주는 친구들, 아.. 친구들한테 잘해야지. ;;

나에게는 모든 증상이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주된 증상은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대체로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내키지 않는 상태가 됨"이다.

이상한 교훈과 혼란스러운 감상을 안겨준 이 책은 발간된지 백년이 넘었으므로 어쩌면 '고전'으로 분류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느낌은 너무나 현대적이면서도 친근한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박민규의 <핑퐁>이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에서 땡볕 아래 옥상에서 탁구를 하거나 투수가 던진 야구공을 얼결에 치고 나서는 홈으로 곧장 들어가버리는 루저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었을 당시 영국의 시대적 배경과 동떨어진 인물들, 그리고 100여 년 뒤 한국에서 한강의 기적 거품이 꺼진 뒤 갈곳을 잃은 청춘들에게는 승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누군가들과 함께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자 모험이었을 게다. 상대를 이기거나 골인지점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세상에 급할 일이 무에 있으랴.
성석제의 문체를 닮은 듯, 다소 길지만 반드시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야 비로소 온전하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문체의 호흡 역시 인상적이다.(일단 읽었다면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는 문장들.) 이것은 물론 번역가의 뛰어난 필력 덕분인 것 같기도.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낄낄댔는지.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이 인물들이 이런 식으로 해서야 어디 이 험한 세상 끝까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하고 걱정하던 마음은 결국 모든 사람들이 저렇다면 정말 다들 행복하고 재밌게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이어지고 만다. 실로 복잡미묘한 감상이다.

아..
이래서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기분조차 든다.




알라딘 이주의 TTB 리뷰로 선정되었습니다. ^^ (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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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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