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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culture 리뷰'에 해당되는 글 610건

  1. 2012/05/14 [영화 리뷰] 다크 섀도우 : 아동용도 아닌 것이 성인용도 아닌 것이.. (스포)
  2. 2012/05/12 [책] 빛의 제국 (2005, 김영하) : 분열, 망각, 소외, 욕망.. 오늘을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3. 2012/05/07 [영화] 은교 : 늙은 시인의 사랑 이야기 (스포)
  4. 2012/05/03 [영화] 코리아 (2012) : 우직하고 사심없는 감동, 2% 부족하지만
  5. 2012/04/26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 우리나라 SF의 한계와 가능성, 장단이 명확한 영화 (4)
  6. 2012/04/25 [책] 언니의 비밀 통장 : 20대 여성 재테크 입문 도서로 딱!
  7. 2012/04/21 [미드] 수퍼내추럴 시즌 3 : 미묘하게 조금씩 더 재밌어 지네
  8. 2012/04/15 [영화] 배틀쉽 : 진부함의 끝. 그런데 왠지 싫지 않아 ;; (2)
  9. 2012/04/11 [영화] 이창 (1954) : 히치콕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재발견
  10. 2012/04/02 [책] 달려라, 아비 (김애란) : 삶보다는 덜 질척이는 아버지에 대한 상상, 긍정의 힘 (2)
  11. 2012/03/31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_ 비극마저 웃게 만드는 빛나는 유머
  12. 2012/03/30 [영화] 디센던트 : 유쾌함, 진심으로 극복하는 가족의 위기
  13. 2012/03/24 [영화] 건축학개론 : 공간, 사람, 추억 모두 함께 나이들어 간다 (2)
  14. 2012/03/22 [영화] 크로니클 (2012) : 신선한 듯 아닌 듯, 욕심없는 연출이 돋보이는 (청소년) 오락영화
  15. 2012/03/10 [책] 카라마조프가 형제 下 (1880,도스토예프스키) : '아버지'와 '신'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16. 2012/03/05 [영화] 러브픽션 : 로맨틱코미디는 역시 캐릭터(배우)+시나리오빨
  17. 2012/03/04 [미드] 수퍼내추럴 시즌 2 : 시즌 1에서의 변화, 그리고 형제는 나아간다
  18. 2012/02/27 [영화] 워 호스 (스티븐 스필버그) : 전쟁터에서의 용기를 재정의하다 (4)
  19. 2012/02/24 [영화] 하울링 (유하) : 외로운, 버려진 존재들 간의 분노와 교감
  20. 2012/02/20 [연극] 안티고네 (선돌극장) : 개인의 양심과 법질서의 싸움

 

 

<다크 섀도우>

감독 : 팀 버튼

출연 : 조니 뎁 / 에바 그린 / 미셸 파이퍼 / 벨라 히스코트 / 클로이 모레츠 등

 

※ 스포 주의

 

팀버튼과 조니 뎁의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팀버튼이 조니뎁의 캐릭터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지더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때도 그걸 좀 느꼈는데 <다크 섀도우>를 보니 더욱 그렇다. 물론 팀버튼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동화 속 나라를 완벽하게 스크린 안에 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감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의 작품이 거듭될수록 영화의 비주얼과 캐릭터가 강화되는 반면 스토리나 메시지는 조금씩 심심해 지고 있다. 

 

 

 

 

배우 보는 맛

 

하지만 역시 그의 영화를 통해 만나는 배우들의 매력 만큼은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만큼 강렬하다. 팀 버튼은 다른 것보다도 배우들을 잘 고르는 듯. 그리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팀 버튼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배우들같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치 장진 사단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정재영, 신하균 등등) 조니 뎁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팀버튼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주연급 조연 헬레나 본햄 카터의 미친 존재감도 역시 열외.  

<다크 섀도우>에서 새롭게(혹은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팀 버튼의 타고 난 배우 복(福)이 드러나는데 콜린스가 저택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주인으로 나온 미셸 파이퍼는 물론이요, 그녀의 한껏 비뚤어진 딸 캐롤린으로 나온 클로이 모레츠도 될성 부른 대배우의 떡잎을 보여주는 듯. 무엇보다 대박이었던 건 마녀로 나온 에바 그린!! 언뜻 보면 청순한 얼굴상인데 그 큰 눈을 매섭게 치켜 뜨니 악랄한 마녀 얼굴이 딱이더라는 ;; 특히 깨져 부서지는 흰 얼굴에 각기 귀신 흉내내는 모션이 가관이었다. 콜린스의 일편단심 연인으로 등장하는 벨라 히스코트라는 여배우도 아이 같은 외모와 달리 낮은 톤의 품위있는 목소리가 매력적.

 

 

 

 

 

 

About Blood

 

세트와 소품 등을 통해 영화 전반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핏빛 비주얼은 섹슈얼하면서도 질긴 연대의 상징으로서의 피(blood)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 '피'라는 것에 대해 인간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강박 같은 것에 대한 전복도 읽히는데,  영화의 초반 콜린스의 내레이션을 통해 피를 어떻게 타고 나느냐(어느 부모 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가난할 수도,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선천적 조건으로서의 '피'를 언급한다. 하지만 '피'로 맺어진 대표적 관계인 '가족'의 의미가 이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보면 콜린스의 내레이션은 로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을 버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거부하는 딸의 모습은 '피'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한편 영원히 늙지 않는 불멸을 꿈꿨던 호프만 박사는 콜린스의 피를 탐내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콜린스는 조세트의 목을 깨물어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로 만듦으로써 둘의 사랑을 완성한다. 결국 인간이 집착하는 '피'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거나 절대 바꿀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통해 충분히 변경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배제되어 있는 무조건적인 집착과 오만함이 얼마나 허무하고 위험한 것인지 콜린스가의 몇몇 어른들과 마녀 안젤리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듯.

 

결론 삼아 정리하자면 <다크 섀도우>는 고전적인 스토리라인을 가공하되 팀버튼다운 비틀기식 유머가 간간이 비어져 나오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동원한 캐릭터 재해석을 통한 재미를 전달하는, 지금까지의 그의 영화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비주얼과 크로테스크한 매력이 넘치는 볼거리들로 무장되어 있지만 마치 잔혹한 그림형제의 동화 원본을 보고 난 후의 찜찜함도 함께 선사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좀 민망하고 그렇다고 성인용 스토리도 아닌 것이...

 

 

팀 버튼의 다음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지... 이제 조금 고민해 봐야겠다.

 

+ 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음악들~

   70년대 미국 컨츄리 음악과 데스락을 오가는 배경음악은 또다른 재미 요소다.

   그 중에서도 팀 버튼의 영화와 앨리스 쿠퍼의 궁합은 단연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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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 문학동네

 

얼마 전 중구 주민도서관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빌리고 나서 요즘 하루에 50페이지씩 책읽기 실천중이다. 그 첫 번째 도전작은 애정하는 작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었는데 역시나 후회없는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빛의 제국>

 

이 책은 남한에서 가정을 꾸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한 남파 간첩 김기영이 귀환 명령을 받은 날,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한 일가족의 구성원이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일터와 학교로 향하고 그 사이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정치를 하는 과정들을 집요하게 관찰하게 된다. 십 수년을 함께 산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 그들 각자의 삶의 테두리에는 서로의 영향력이 거의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파 간첩이라는 사실을 십 수년 동안 가족 모르게 살아온 가장 김기영을 비롯하여, 딸과 불과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어린 청년과 변태적 사랑을 나누는 장마리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또래보다 조숙하고 영리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다질 줄 아는, 세상을 한참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어린 딸 현미까지 이 세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되 각기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 날(김기영이 송환 명령을 받은) 하루는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영역 안에서 허용되는 한 가장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남파간첩 김기영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념에 대한 물음들, 그리고 추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방황하고, 스무 살 어린 애인과 일탈을 즐기던 장마리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가족과 단짝친구를 벗어나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현미에게 공통적으로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간 유지해 왔던 일상성이 파괴됨과 동시에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되는 시간, 그 단 하루.

 

일가족의 단 하루

 

 다음 날 아침은 전 날 아침과 똑같이 밝아 왔고 다시 이 구성원은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이들 각자의 세상은 분명 어제와 달라졌고 앞으로도 다르게 굴러갈 것이다. 김기영을 억지로 가정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작 장마리는 딸의 안전을 위해 남편에게 혼자 북으로 돌아가라고 선언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영에게 등을 돌린 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작가적 삶을 꿈꾸었던 '소지'도 마찬가지였다. 마리도 소지도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환멸을 느끼지만 막상 그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함과 지루할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면 마음이 바뀌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남한에서 이십년 가까이 살아온 남파간첩 기영도 마찬가지였다. 무료할지언정 반복되는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사회의 밖에 나와 그 곳을 바라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비록 한 공간 안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갈지언정 그래도 온전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선사해 주는지, 그 하루 동안 기영, 마리, 현미는 모두 깨달았을 것이다. 소지가 말하는 드라마틱한 삶처럼 처절하지 않게 치열하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 그 안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빛의 제국에서는 빛이 사라지기 전엔 아무도 그게 빛인지, 그 빛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채 사는 것이다. 

 

김영하

 

바로 전철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채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것만 같은 작가, 김영하.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각 인물이 입고 먹고 마시고 타고 지나치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친근해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김기영과 소지가 함께 추억하는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되살려 허무하게 추억하고 그 위에 세워진 <빛의 제국> 안에서 누추한 욕망과 환상을 품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새 변해가며 무섭게 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그리고 그 무언가에 무뎌져 간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빛의 제국>인 줄로만 알고 태어나 현미와 같은 세대를 사는 이들은 결코 알기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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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감독 : 정지우

주연 :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 스포일러 주의

 

늙은 시인.

 

누구에게나 '처녀'로 표현되는 영감의 대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창작을 하는 예술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그야말로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다. '은교'는 그러한 존재의 대명사라 일컬을 만 하다. 비록 흰 목과 매끈한 다리, 가는 발목에서부터 시작된 호기심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할지언정 은교는 늙은 시인 이적요를 다시 젊어지는 꿈을 꾸며 창작열을 태울 수 있도록 만든 뮤즈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늙은 시인은 자신의 나이든 육체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기쁨이 되지 못할까 다가서지 못하고 남은 생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자신을 파멸시켜 가고 만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십대 소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젊은 제자에게 돈과 명성 모든 걸 내주었으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은 제자에 대한 분노는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그 죄책감 때문에 남은 생을 지옥처럼 살아갈 것이다. 

 

 

 

 

젊음.

 

한 편 젊음은 위험하고 어리석으며 모자라고 탐욕적이다. 여물지 못한 손과 머리로 글을 쓰면서 늙은 선생 덕분에 소설가가 되고 팔자가 피게 되었지만 젊은 서지우의 속마음에는 늙은 시인의 껍데기로 살아 간다는 자격지심이 늘 자리하고 있다. 늙은 시인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우월한 단 한 가지는 바로 젊은 몸뚱아리 뿐.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같다고 여겼던 늙은 시인의 뮤즈를 자신의 몸뚱아리로 범하는 것으로 늙은 시인을 이기려고 한다.

 

처녀, 어린 아이, 은교.

 

어린 '여자' 은교는 거침이 없고 순수하고 맑으며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서지우처럼 돈과 명성을 탐하지 않고, 나이든 존재에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다만 자신에게 따뜻한 존재를 따를 뿐이다. 그저 자신에게 상냥하고 친절하며 가르침을 주고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는 사람을 사랑해 버리는 백지 상태와도 같은 은교는 어린아이와 동일한 존재였기에 늙은 시인으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를 떠올리게 하고 문학적 상상력이 꿈틀대도록 만들 수 있었다. 

 

 

나이든 수컷과 젊은 수컷 간의 자존심 싸움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결국 아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서지우만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늙은 시인은 꿈과 상상 속에서 얻은 젊은 육체를 가지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렇게 행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추한 욕망에 사로잡힌 한 늙은이가 아니라 나이를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혹은 욕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공대생'과 같은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칠십 먹은 노인과 여고생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추문에 불과하다고, 거울이 모두 똑같은 거울이지 선물로 받으면 뭐가 다르냐고 따지는 미성숙한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늙은 시인과 은교가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 늙은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의 세상에서 은교는 이 공대생들의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늙은 시인은 그런 은교가 염려되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끝내 묻고 말았을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 등뒤에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은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을 꼭 다문 채 숨죽여 흐느끼는 늙은 시인의 표정을 카메라는 오래도록 비춘다. 그 늙은 눈물이 어찌나 가슴아프던지..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닌 것처럼,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사람은 왜 늙기 전에는 우리가 젊다는 것을 고마워 할 줄 모르고 나도 늙어가고 있음을 외면하고 싶어할까. 은교가 자신에게 키스하려는 서지우에게 그 이유를 묻자 서지우는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또한 은교는 서지우와 섹스를 하며 여고생이 남자와 자는 이유가 '외로워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늙은 시인에게는 아무도 '외롭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늙음과 외로움은 늘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혹은 나이가 들면 외로워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일 터이다.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이렇게 '별'을 '별'로 보지 못하는, 가슴과 본능 안에서 시를 쓰지 못하는 '공대생'의 관념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수많은 서지우들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과 슬픔, 흰 발목과 가슴, 젊음에 대한 예찬과 갈망을 시로 쓰고 행복감을 느끼는 시인이 될 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세 배우의 파격 노출씬,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고 나니 좋은 점이 단순히 노출씬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행간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ㅎㅎ 사실 야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거 아니냐며. 그저 배우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만 계속 들 뿐.

 

++ 사실 놀라웠던 장면은 배우들의 섹스신이 아니라 서지우가 탄 차의 교통사고 장면이었다. 오만한 젊음의 철저한 '파멸'을 보여 듯한 적나라한 사고 과정 묘사가 인상적이라는.

 

++ 소설 속 대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문어체 대사가 가끔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적인 느낌 덕분에 좀 상쇄되는 듯. 영상이 참 예쁘다. 특히 은교와 젊은 박해일이 함께 달려가거나 서로 간지르는 장면 참 이쁘다. 저런 게 '젊음'이지 싶고. (아놔. 노인네처럼ㅡ.ㅡ;;)

 

 

 

 

 

 

이런 느낌의 화보들 너무 좋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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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연출 : 문현성
주연 : 하지원, 배두나 

하나가 되는 것부터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최고의 탁구 스타 ‘현정화’(하지원). 번번히 중국에 밀려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던 그녀에게 4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 단일팀 결성 소식이 들려온다. 금메달에 목마른 정화에겐 청천벽력 같은 결정! 선수와 코치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초유의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다. 

 순식간에 ‘코리아’라는 이름의 한 팀이 된 남북의 선수들. 연습 방식, 생활 방식, 말투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남북 선수단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하고, 양 팀을 대표하는 라이벌 정화와 북한의 ‘리분희’(배두나)의 신경전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대회는 점점 다가오지만 한 팀으로서의 호흡은커녕 오히려 갈등만 깊어지고, 출전팀 선발은 예상치 못한 정국으로 흘러 가는데… 

 46일간의 뜨거운 도전이 시작된다!



있을 거 다 있는데 좀 심심하네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 영화 <코리아>는 잔꾀 없이 우직하게 나아가는 영화이다. 예전 <킹콩을 들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로 이어지는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한 영화의 계보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코리아>라는 제목과 포스터의 비주얼만 보아도 우리는 영화의 내용과 감상 포인트를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나도 정직하고 순수한 (목표하는 바가 너무나도 명징한) 이 스포츠 영화가 오히려 일부 관객들에게는 불편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반도>를 연상케 하는 애국심 자극용 제목도 그렇고 (물론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제목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장 적합한 제목이라는 게 이해가 된다만) 지고지순한 스토리 라인이 단조로워서 딱히 꼽을 만한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탁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가진 긴장감이나 존재감을 살려주기보다는 철저히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 주는 감동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종류의 것이다. 스토리는 충분히 드라마틱했으나 세련되지 못했다는 인상은 조금.

 

하지원. 처음부터 호감형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자리잡은 듯. 


그러나 역시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 코드는 존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에 더해진 남북의 화합 코드는 비상한 긍지와 자존감의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배우 하지원, 배두나가 완벽하게 재현해 낸 현정화, 리분희 선수의 액션만 보아도 이 영화가 얼마나 순수한 이상과 열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싱크로율 100%란 표현은 이런 때에 쓰는 것!!) 특히 <더킹 투하츠>에서 북한 여성으로 나오는 하지원이 부산사투리와 표준말을 오가고 상대역인 배두나가 낮은 목소리로 평양사투리를 시크하고 읊조리는 장면을 볼 땐 묘한 재미가 있다. 또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남북한 남녀 선수 간의 러브 스토리도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기도. 좀더 애절하게 몰고 갈 수 있었겠지만 심각하게 보이길 원치 않았던 듯. 무엇보다 북한의 유순복 선수역을 맡았던 한예리의 수더분한 인상과 연기가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캐릭터로 남았다.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남북 관계를 드라마틱한 구도 안에 담아 스포츠 정신을 통한 화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지점에서만 보더라도 의미가 있었던 영화. 사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특히 젊은 관객이라면 더더욱 지나쳐 버리기 쉬운 역사 속 한 장면이니까.  



사상만 가로놓여 있지 않다면 저렇게 같이 얘기만 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아가씨들인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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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

연출 : 임필성 / 김지운 감독
출연 : 류승범, 고준희, 송새벽, 배두나, 봉준호, 윤제문, 진지희, 이영은, 류승수, 송영창, 김강우, 김규리, 김서형 등등... 

 인류멸망보고서 1. 피조물인 인간, 신의 영역을 넘보다! <천상의 피조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미래. 천상사의 가이드 로봇 RU-4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제조사 UR은 해체를 결정하지만 그를 인명스님으로 부르며 숭배하는 승려들은 반대한다. 해체 직전, 일촉즉발의 순간, UR의 엔지니어 박도원(김강우)이 상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명의 앞을 막아 서는데…

인류멸망보고서 2. 욕망의 끝은 섬뜩한 종말일지니…<멋진 신세계>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연구원 윤석우(류승범)는 소개팅 약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지 않고 한번에 처리한 후 집을 나선다.킹카 (고준희), 맛있는 고기 요리, 즐거운 클럽. 온갖 유희 끝 그녀와의 달콤한 키스 현장을 덮친 고교생들을 괴력으로 응징한 석우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온다. 거리를 뒤덮은 좀비의 물결, 광우병도 조류독감도 아닌 괴 바이러스의 정체를 캐는 매스컴의 호들갑도 무색하게 서울의 거리는 멸망으로 치닫는데…

인류멸망보고서 3. 그날 이후, 살아있음을 기뻐하라! 인류, 제2의 탄생 <해피 버스데이>

당구광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셔버린 초등학생 박민서(진지희)는 정체불명의 사이트에 접속, 당구공을 주문한다. 하지만 2년 후 당구공 모양의 괴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고 임박한 멸망에 민서 가족은 오타쿠 삼촌(송새벽)이 설계한 지하 방공호로 대피한다. 그리고 7년 후, 엄청나게 밝은 광채에 홀려 민서(배두나)는 용감하게 지상으로 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은근히 SF영화가 꾸준히 나온다. <예스터데이>, <세기말> 등등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런 영화들을 전부 챙겨봤던 것도 아닌데 왜 <인류멸망보고서>를 보고 우리나라 SF 영화의 한계가 팍 느껴졌을까? 내가 느끼는 우리나라 SF 영화의 한계란 대체 뭐지? 자본의 한계? 상상력의 한계? 스토리텔링의 한계? ... 이 모든 한계를 담고 있는 듯한 영화. 




이 영화는 우선 옴니버스식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영화 <멋진 신세계>, 세 번째 영화 <Happy Birthday>는 임필성 감독이, 그리고 두 번째 <천상의 피조물>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비주얼이 가장 훌륭한 건 역시 김지운 감독의 작품.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길에 이른다는, 러프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고급스러운 플롯의 영화이다. 미래 시대의 절의 구조, 주거시설, 기후변화를 고려하여 만들어졌다는 승려의 복장 등 세트와 미술 작업이 꼼꼼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고자 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용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간의 자만심은 이미 기존의 SF영화들에서 숱하게 다루어진 소재라는 점에서 좀 진부하다. 모든 디테일한 설정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설정이 그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루함만을 유발한다는 게 함정. 로봇 회사인 UR의 사장으로 출연하는 송영창과 로봇 수리공 김강우, 그리고 로봇 인명(목소리 연기는 박해일이 했다는)이 벌이는 '종교'와 '신'과 '인간의 온전함'에 대한 토론은 받아 적으면 훌륭한 철학 텍스트가 되겠으나... 영화 대사로 나열되기에는 좀 벅찬 감이 없지 않았다는. 법당에서 고차원적인 대사가 오가는 장면에서 한적한 극장 구석에서는 곤히 잠든 아저씨 관객의 숨소리가 들려오더라. ;; 

하지만 생각해 볼 지점은 던져준다. 아주 오랜 옛날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인간들을 신(하나님)이 벌했던 것과,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고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로봇을 처단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란 존재의 자유 의지를 허락한 '신'과 로봇의 자유 의지를 허락하지 않는 인간 간에는 여전히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결국 인간은 신도 따라가지 못하고 로봇을 끌어안지도 못 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 고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자멸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 생각을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시나리오 하나 나올 듯.) 마지막 장면 김강우는 버려진 강아지 로봇을 주워다 수리하면서 자신의 팔에 심겨진 칩을 꺼내 강아지에게 이식한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갈빗대를 꺼내어 이브를 만든 아담이나(물론 아담 몰래 그렇게 한 건 하나님이지만) 태초에 '빛'을 만든 하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존재를 창조한다는 행위 자체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무언갈 만드냐고? 외로우니까. 심심하니까. 내 곁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주체는 피조물들에게 '동정심'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만든 인간이 나에게 도전하고, 여친이나 애완견이 내게 대들어서 화가 나서 그들을 없애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자의 감정의 흐름을 정리해 본다면 '심심함' -> 필요성에 의한 창조 (재미, 욕구 충족) -> 만족감 -> 분노 (자존심 상함 혹은 괘씸함) -> 후회나 자책감, 자성, 반성 등..  뭐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신이고 인간이고 다 참 유치하네. 

결국은 모든 것이 '욕망'의 문제인 것이다. 고기를 끊임없이 삼키고 끈적하게 키스하는 <멋진 신세계>의 남녀 주인공의 모습, 엄마 아빠가 도륙을 당한 판국에도 화장실에 숨어들어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누나의 배설욕과 고장난 강아지 로봇을 고치기 위해 새벽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천상의 피조물> 속 소녀(조윤희)의 이기적인 행동까지... 인간이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들은 언제나 제 3자를 불쾌하게, 혹은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스틸 한 장만 보고도 시나리오 몇 편 나올 것 같아.  

음.. 어쩌다 (간만에) 리뷰가 또 산으로...ㅡ.ㅡ;; 다시 리뷰로.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공통적으로 발상은 좋았으나 스토리가 없는 소품으로 느껴졌다. 탐욕스럽게 먹을 것을 좇지만 밖으로 배출하는 것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인간들의 무성의함이 결국 인류 멸망을 가져오게 된다는 발상도 좋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당구공이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에 의해 괴행성이 되어 지구로 돌진해 와서 문명이 박살난다는 상상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영화 자체에 힘이 없다는 게 문제. 아..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나라 SF의 문제가 아니라 '옴니버스'라는 포맷이 가진 한계, 아니 특징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재밌었던 건 영화에 짬짬이 등장하는 깨알같은 카메오와 단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90분 토론에 등장한 봉준호 감독과 윤제문. 그들의 쇼가 나오는 스튜디오 시퀀스는 정말이지 시니컬하면서도 통쾌하고 신나게 웃겼다. 아... 차라리 이 영화가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했더라면 더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을텐데... 암튼 <멋진 신세계>의 90분 토론과 <해피 버스데이>에서 지구상의 마지막 뉴스를 방송하는 스튜디오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살린 듯 하다. 내용은 없어도 재기발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게 나의 총평이랄 수 있겠는데 영화라는 게 꼭 내용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좋은 측면에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내게 좋은 영화로 기억될 예정이라는.

음... 생각해 보니 좋은데?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로봇 '인명'의 표정이 그야말로 예술임. 

좀비로 변한 류승범. 다시 볼수록 정말 돈 많이 든 영화였구나.. ㅠㅠ 

 어맛, 고준희 옷 예뻐라~ <건축학개론> 같은 (무난한) 역할보단 <해피 버스데이>의 단역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 고준희.


각성하는 '로봇' 나오는 영화 
 


아이,로봇 (2004)

I, Robot 
8.9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출연
윌 스미스, 브리짓 모나한, 알란 터딕, 제임스 크롬웰, 브루스 그린우드
정보
액션, 미스터리, 스릴러, SF | 미국 | 110 분 | 2004-07-29

로봇을 더 이상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건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8.2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케어 둘리아, 개리 록우드, 윌리암 실베스터, 다니엘 리치터, 레오나르드 로시터
정보
SF, 어드벤처 | 영국, 미국 | 139 분 | -

정말 로봇이 이 정도 수준 된다면... 공포스러운 게 당연하겠지.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을까봐 무섭다면, 컨트롤할 자신이 없다면 만들지 않으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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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비광 2012/04/29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들렀습니다...그나마 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있는 영화평을 보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모든 영화가 재미있을 필요도 없고 다수를 위한 영화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천상의 피조물에서 마지막 장면...전 로봇의 대사와 연관성을 생각했습니다...인간은 태어날때부터 해탈해 있다..오히려 기계화되어가는 인간의 씁쓸한 모습...그걸 로봇이 오히려 위로하려고 했던건 아닐지...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5/03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을 왜 자꾸만 환경을 탓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욕심내는지... 그것을 꾸짖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만든 로봇이라는 설정이 아이러니하죠. ㅎㅎ

  2. BlogIcon 한비광 2012/04/29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더 멋진 신세계에서는 단지 특정한 병을 예로 든게 아닌 식생활과 정부의 아니한 대처로 인해 후순환 되어가는 식생활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통찰하여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음식쓰레기에 포함된 플라스틱이나 종이류, 그걸 먹은 소, 다시 더러운 도축과정을 보여주며 마지막에 탐욕스럽게 먹고있는 인간...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5/03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쓰레기가 돌고 돌아 다시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정말 끔찍했어요. 광우병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병이겠죠.
      암튼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전해준 영화들이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

<언니의 비밀 통장> 허서윤/신찬옥 저 | 21세기 북스

재테크 서적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물론 이 책은 20대 여성, 사회 초년생을 타겟으로 씌여진 책이다. 하지만 뭐 그냥 내가 몇 년 어리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 하긴, 일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요즘 나오는 자기 계발서들 보면 '스토리텔링'은 기본인 듯. 최대한 친근하게, 몰입이 되도록 써 줘야 좀 공감이 되고 읽게 되는 듯. 물론 무리수가 있는 설정도 곳곳에 있지만 덕분에 킥킥대며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골자는 남자친구의 공무원 공부 뒷바라지를 하다가 결국 공무원이 되신 남친한테 대차게 차인 여자 주인공이(ㅡ.ㅡ;;) 인생의 목표를 잃고 헤매다가 문득 재테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 직장 여선배한테서 재테크 노하우를 사사받게 된다는 이야기. 

물론 출발은 다른 재테크 책에서 모두 하는 흔한 조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가만히 내 사정에 대입시켜 생각해 보면, 내게도 점검, 재정비해야 할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잔고를 싹 비워 버린 CMA 계좌도 다시 살려서 열심히 써야겠고, 펀드도 다시 부어야겠고, ETF인지 하는 투자상품도 좀더 관심을 갖고 공부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재테크란 것이 그렇더라. 일 잘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서, 별도의 시간투자와 공부가 필요하더란 말이다. 하긴, 살다 보니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 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법칙이더라만은. 항상 배우고 갈고 닦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다. 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을 수록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이 책의 타겟도 아니었고, 정말로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밑줄까지 쳐가며 열심히 읽었으니...그러나 책 뒤에 부록으로 나와 있는 천 만 원 만들기, 일 억 만들기 등의 고급 과정에까지 다다르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려나... ㅠㅠ 

이십대 여성, 여대생이 읽기에 딱 좋은 재테크 도서. 재테크의 'ㅈ'도 몰라도, 공부하는 셈 치고 시작 단계에 파고 들어볼 만 하겠더라는. 무엇보다 재테크의 가장 큰 자산은 '돈'이 아니라 ' 나 자신'이라니, 이런 시크한 도시녀자들에게 혹할 만한 이야기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남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거, 그리고 나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건 '재력'이라는 사실, 냉정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휴... 아무리 쉬운 재테크 도서라도 후딱 읽고서 그냥 덮어버리고 나면 아무 소용 없다. 책에 나와 있는 건 전부 실천해 봐야 나중에 하나라도 남는다! 나이 헛먹었다는 게 아니라 그냥 회춘했다 생각하고 ㅠㅠ CMA통장부터 다시 만들어야지. 어엉~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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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내추럴 시즌 3

더욱 업그레이드된 악령들과의 처절한 사투! 꽃미남 퇴마사 윈체스터 형제의 세 번째 퇴마 여정!

수많은 악령, 괴물들과 싸워온 딘과 샘 형제. 그러나 시즌 2에서 딘은 동생인 샘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매개로 악마와 계약을 맺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샘은 형을 구하기 위해 모든 악마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이제, 악마 전체가 두 형제를 노린다!


시즌 2와 달라진 점.

매회 다양한 연출 방식. 

형제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물갈이 혹은 죽음. 엘렌 아줌마 사라지고 벨라 탤봇, 루비 등장. 고든의 죽음 등. 

잔혹한 장면, '섹스'라는 단어의 노출, 애정씬 빈도수 증가. 


보다 보니 계속 봐지는 미드. 매회 에피소드가 반복되면서 아주 조금씩 스토리가 진전되고 있어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시즌이 반복될수록 비주얼은 조금씩 잔혹해 지고 형제의 갈등과 번뇌는 깊어져 가며 그들의 임무에 무심한 사회에 대한 냉소와 허무가 묻어난다. 형제들을 위협하는 요소들(고든, 벨라 탤봇 등)이 퇴치되는가 하면 그들을 돕는 악마(루비)도 나타나는 등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시즌 3의 전체적인 주체는 '딘 구하기'이다. 시즌 2에서 노란 눈의 악마와 싸우다 죽은 동생 샘을 살리기 위해 교차로의 악마를 소환한 딘은 처음엔 동생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 믿지만 갈수록 혼란스러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두기 위해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인가, 누구보다도 끔찍하게 여기던 악마의 모습으로 자신의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태연하기는 어려운 것은 아무리 딘이라 해도 피할 수 없는 감정. 시즌 3에서 내내 대사를 통해 등장하듯이 딘&샘 형제와 아버지 3명은 모두 서로에게 약점으로 존재한다. 아버지를 위해, 형 혹은 동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이 인간들만의 인지상정, 미덕이라면 그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들이 바로 악마들이다. 인간성과 악마성의 대결은 지난하게도 이어진다. 

오랫동안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드라마인 만큼 조금씩 허용되는 연출의 변주법들이 눈에 띈다. 'Ghost Facers' 나 크리스마스 특집 같기 유머러스한 에피소드와 연출방식들은 수퍼내추럴 팬들에게 연출진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악마들에게 아무리 쥐어 터지고 만신창이가 되어도 다음 씬에서는 말끔한 차림으로 등장하는 형제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암묵적으로 합의가 된 옥의 티 아닌 옥의 티. 이것이 바로 팬덤 최강 미드 '수퍼 내추럴'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즐거움. 시리즈가 너무 길어 당최 이거 끝이 나긴 하는 걸까 싶은 절망의 순간이 다가올 때도 있지만 사실 그다지 심한 중독성이나 폐인을 양상하는 몹쓸 몰입감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심심할 때 찾아보는 드라마 정도로 여기면 딱 좋은 드라마. 그런데 도대체 대천사니 뭐니 하는 서브 주연 캐릭들은 언제 나오는 거임... ㅡ.ㅡ;; 조금 지치기도 하지만 지옥으로 간 딘이 어떻게 되살아 나올지 궁금해서라도 난 또 시즌 4를 보고 있겠지. 

형제는 죽음을 죽음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나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에 있어서는 절대 관대하지 못하다는 게 함정. 이들은 매회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물론 그들이 살해하는 건 악마이지만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그 비주얼은 '살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폭력과 살인은 도덕적 면죄부를 얻으며 그와 동시에 시청자에게는 '살인'을 보여줌으로써 간접적 폭력의 쾌락을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아주 질이 나쁜 드라마이다. 원한을 품고 되살아난 영혼들을 지옥으로 되돌려 보내면서도 자신들의 죽음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형제들의 이기심도, 그들의 폭력을 정당한 것이라 믿으며 그들을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청자들의 모습도 '옳지 않다'. 왠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난 또 조만간 시즌 4를 보고 있겠지. 훗.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 수퍼 내추럴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하나같이 다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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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쉽>

감독 : 피터 버그
출연 : 테일러 키취, 리한나, 브룩클린 데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바다에서 시작된다!

전 세계 해군들이 한데 모여 훈련하는 림팩 다국적 해상 훈련. 해상 합동 훈련 첫날,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발견되고 쉐인 함장(리암 니슨)은 수색팀을 파견한다.

괴물체에 접근한 하퍼 대위(테일러 키취)가 몸체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엄청난 충격과 함께 괴물체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장벽을 구축한다. 레이더도 통하지 않고, 부딪히는 순간 모든 걸 파괴시키는 엄청난 위력의 장벽을 시작으로 지구를 향한 대규모 선재 공격을 감행하는 외계의 존재들!

목적 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의 엄청난 공격에 평화롭던 지구는 순식간에 초토화 되기 시작하고, 이들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육해공을 넘나드는 전 세계 연합군의 합동 작전이 펼쳐지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존재와 전 세계 다국적 연합 군함의 전면전이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진부함의 끝. 그런데 왠지 싫지 않아... ;;

<아마겟돈> 이후로 무수히 쏟아져 나온, 중고등학생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잇는 최신작!
정도면 이 영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구가 될 듯.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고립된 채 맞서 싸우는 주인공. 그 주인공이 사회로부터 별종 취급을 당하던 괴짜였으나 위기 속에서 용맹함과 저돌적인 똘끼가 진가를 발휘하여 결국 인류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는... 그냥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엄청나게 진부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꽤 볼 만 했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 하나. 지치지 않고 이런 영화를 찍어내는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확인하는 의미 정도라고나 할까. 스케일과 정교한 CG 만큼은 입을 벌리고 볼 만 하지만 스토리고 캐릭터고 다 집어 던지고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영화의 뚝심이 감탄스러울 정도. 영화에서 줄창 이어지는 스펙터클과 비주얼보다도 영화 초반에 남자 주인공인 '알렉스'(테일러 키취)가 '샘'(브룩클린 데커)을 보고 반해 치킨 브리토를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10분 정도가 오히려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피터 버그 감독의 데뷔작이 <베리 배드 씽>, 주요작품이 <핸콕>이었다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그냥 이 분은 블록버스터보다는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액션 코미디를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싶더라는.



'제 3의 적' 앞에서는 화해만이 살 길

태평양은 과거에 일본과 미국이 세계대전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곳. 영화에서도 림팩 해상훈련에 참가한 미군, 일본군 대표로서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알렉스와 나가타(아사노 타다노부)는 서로에게 적대심을 갖는다. 미국은 일본이 얍삽하고 치밀하다고 비꼬고 일본은 미국이 융통성없고 동양문화에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 3의 적(외계인)이 나타났을 땐 한 때 적이었던 그들이 서로 화해하고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내게 된다는 영화의 주요 골자를 보며 내부 단합을 다지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이라는 설정만큼 유용하고 간편한 게 없구나 싶었다. 마치 요즘 드라마 <더킹투하츠>에서 남한과 북한이 'M'이라는 다국적 군사복합체 회사를 이끄는 싸이코(윤제문)의 공격에 맞서 힘을 합쳐 싸우듯이. 

그러나 태평양 연합군을 위협하는 외계인들 치고는 그 존재감이 너무 미약했다는 것도 좀 아쉽다. 물론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최첨단 무기들은 등장하지만 외계인이라는 생명체 자체에 대한 비주얼적 상상력은 빈약 그 자체였는데 <아메리칸 싸이코>에서 크리스천 베일 같은 싸이코 패스 한 명이 주는 공포보다도 외계인 십 수명이 갖는 존재감이 미미하더란 것. 외계인이 극단적으로 악해 보이거나 카리스마가 없으니 긴장감이 확 떨어질 수 밖에. <디스트릭트9> 이후로 더이상 영화 속에서 정말 쇼킹한 (생김새의) 외계인을 만나보기란 어려워 진 듯. 외계물체가 내는 주파수 높은 소음이나 <우주전쟁>에서 문어발 우주선이 내던 금속성 사운드도 식상하고 언제나 지구인보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도 좀 김이 샌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돈이 아깝진 않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시나리오고 캐릭터고 다 팽개쳐도 그 정도 스펙터클이면 영화 본 보람이 없진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결말도 뻔하고 새로울 것 하나도 없고 기대도 안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영화를 볼 땐 꼭 두 시간 동안 온 몸에 힘 빡 주고 보게 되더라는. 그리고 한국 영화 관객으로서 그런 영화는 일 년에 한 편쯤은 보고 넘어가 주는 게 당연한 듯 뭐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고나 할까... 허허.

+ 요런 스펙터클. 솔직히 아직까진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잖아.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그 이상 기대하는 것도 없고. 

++ '리한나'는 영화에서 자세히 처음 봤는데 엄청 매력있게 생겼네. ;; 이참에 앨범까지 덩달아 찾아 듣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인 테일러 키취는 어쩜 그리 매력이 없어!! 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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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감주 (즈라더) 2012/04/15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한나는 본래 가수지요. +_+
    리한나의 대표곡들은 아마 거리를 지나다 한 번쯤 들으셨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4/15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게요. 가수인 건 알았지만 비슷한 이미지의 여가수들이 많아서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ㅎㅎ 이래서 가수들이 연기를 하고 싶어하나봐요 ㅋ

<이창>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사진 작가인 제프리스는 촬영 도중 다리가 부러져 휠체어에서 꼼짝할 수 없는 처지이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그는 자신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뜰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한 사람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을 본 그는 이를 모델인 애인 리사와 친구인 형사 도일에게 말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의심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리사와 간호부 스텔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범행의 증거를 찾아 나선다.

발랄함 + 로맨스 + 서스펜스를 한 번에 갖춘 작품.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라고는 깁스를 한 다리 때문에 창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하는 주인공 남자(제프리, 제임스 스튜어트 분)의 작은 아파트와 건너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창문 속의 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전부. 카메라는 주인공의 방 안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으며 오로지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리사, 그레이스 켈리 분), 가정부가 나누는 대화로 모든 살인사건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관객은 제프리가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건너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행위에 동참하다가 조금씩 수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한 중년남자가 정말 아내를 죽였을까를 궁금해 하다가 종내는 제프리의 여자친구 리사가 건너편 아파트에 주거침입 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그 사이 중년남자가 집으로 돌아올까봐 가슴을 졸이게 된다. 특히 리사가 연행된 이후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진 제프리의 방을 향해 다가오는 중년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장면은 이 영화 절정의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는 부분! 

맙소사. 이러한 가슴졸임과 극도의 긴장감을 그야말로 대사빨, 즉 등장인물들의 말빨로만 빚어내는 연출력이라니!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의 명성을 다시한번 실감케 한 작품. (여지없이 그는 작품 속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관음증 VS 호기심

이웃을 관찰하는 주인공 제프리의 행동은 오늘날 같으면 범죄로 취급받아 마땅한 행동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나름대로 이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인 양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외로워 보이는 독신 여성이 자살할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기르던 개가 죽어 슬퍼하는 부부의 눈물에 안타까워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 아래, 옆으로 이웃해 살고 있지만 서로의 일에 무관심한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이웃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가진 제프리 덕에 묻혀질 뻔 한 살인 사건이 해결되었으니 그 정도 '인간적인' 관음증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도 좋지 않겠느냐... 하는 감독의 메시지로 읽히기도.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것이 요즘 도시 사람들의 생활이란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래도 누군가 나를 관찰해 주고, 위험에 빠졌을 때 경찰에 연락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고마워 해야 할 노릇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좀 서글프면서도 섬찟한 도시 인생. ㅠ

히치콕의 여성 캐릭터의 재발견, '리사'

심각한 살인사건이지만 제프리와 여자친구 리사가 티격태격하거나 가정부의 거침없는 입담을 보는 순간 만큼은 이 영화가 스크루볼 코미디인가 싶기도 할 만큼 대사가 찰지다. 또한 주인공의 끈질긴 집착과 호기심이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도 싶지만 모든 것은 그의 직업이 기자라는 점에서 명분을 얻는다. (빈틈이 없어!)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그를 사랑하는 여자친구 리사의 캐릭터인데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된장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남자의 가치관과 관심사에 완벽히 일체되는 경지를 보여주고 만다. 과연 저 여자가 날 위해 삶의 일부분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믿는 남성의 우월감과 의구심을 확실하게 해소해 준다는 설정이 꽤 멋지다. 다리를 다쳐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 남성이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해, 아니 오히려 그를 넘어서는 여성 특유의 수완과 재치, 상상력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니. 그의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리사는 그의 다른 영화 속에 나오는 금발 여인들과 전혀 다른 여성상인 듯.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쪽 다리에 깁스를 한 남자 친구가 잠든 사이 슬쩍 패션잡지를 꺼내 드는 리사의 모습과 '리사...'라는 가사의 음악이 겹쳐지는 장면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했더라면 얼마나 잘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히치콕은 서스펜스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여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희귀한 감독이 아니었을까... 아, 정말 히치콕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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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2005)

김애란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녀가 2003년부터 쓴 단편들을 모은 <달려라 아비>이다. 제목에 '아비'가 들어간 것처럼 이 책에는 김애란이 상상하는 아버지의 종류들이 열거되어 있다. 소설 속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대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부모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결격사유들이 있다. 주인공들은 그런 부모를 증오하거나 피해의식을 갖거나 부지불식간에 닮아 가거나 부정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묘사되는 많은 아버지들도 그다지 이상적인 아버지상은 아니다. 그리고 부정하기에 그들은 주인공의 기억과 현재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차마 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김애란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긍정하고 용서한다. 예를 들어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멈추지 않고 지구 위를 달리게 하거나 새로운 가족과 함께 떠나 보내거나 어린 시절과 상관없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거나 하는 식이다.

분명 '과거'란 현재의 나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의 집합이다. 좋지 않은 과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무심하게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재포장하고, 현재의 시간들을 악착같이 살아내는 정신력과 생활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현대 사회의 부품처럼 살아갈지언정, 무모하게 큰 변화를 꿈꾸었다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부품의 필요성과 가치를 상상해 내고 스스로 위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내 양 옆과 앞뒤에 나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살아가고 있다. <노크하지 않는 방>에서처럼 나 역시 나와 비슷한 경제수준을 지닌 사람들을 머리 위에 이고 발 밑에 두고 살아가고 있고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처럼 나 역시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들러 다른 사람들이 사가는 물건들을 사간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못하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니다. 그러나 내 상상에 의해 나의 아버지와 나의 지구,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내 형제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희극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건 누구에 의해서건 '마이너스'가 될 순 없다는 것. 이것이 김애란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긍정의 힘'이다.

남루한 미시사에 대한 묘사,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 주변인물들에 대한 무심한 태도, 그러나 생물학적 관계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 쌩뚱맞은 사연들끼리의 불협화음. 이런 것들이 김애란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요소들인 듯.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김애란의 단편들보다도 책 맨 뒤에 붙어 있는 소설가 김동식의 '해설'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마치 호기로운 신인작가가 마음껏 부려놓은 캔버스를 액자에 끼워 전시회에 가지런히 걸어 둔 것 같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그의 해설을 읽고 나니 내가 흘려 보낸 김애란의 문장들을 다시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졌다. 방만하면서도 찐득하게 흐르는 듯한 문체는 박민규나 마르케스를, 끊임없이 언급하는 우주에 대한 애정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가끔 찐따같이 느껴질 정도의 세심함은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문장들을.

 

아버지는 누운 채 불빛을 세례받는다. 펑! 펑! 활짝 피는 불꽃들이 아름답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거대한 성기에서 나온 불꽃들이 민들레씨처럼 밤하늘로 퍼져나갔을 때, 아버지의 반짝이는 씨앗들이 고독한 우주로 멀리멀리 방사(放射)되었을 때,
"바로 그때 네가 태어난 거다."
면도를 마친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거짓말"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中

 


달려라 아비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창비 | 2005-11-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출생과 성장의 과정과 관련된 모티브를 주로 다룬 김애란의 첫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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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09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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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 1%의 우정>
감독 : 올리비에르 나카체 / 에릭 토레다노
출연 : 프랑수아 클루제 / 오마 사이

상위 1% 귀족남과 하위 1% 무일푼이 만났다. 2주간의 내기로 시작된 상상초월 특별한 동거 스토리

하루 24시간 내내 돌봐주는 손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신불구의 상위 1%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어느 날 우연히,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를 만나게 된 그는 거침없이 자유로운 성격의 드리스에게 호기심을 느껴 특별한 내기를 제안한다. 바로 2주 동안 필립의 손발이 되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자신을 간호하며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것. 참을성이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 볼 수 없던 드리스는 오기가 발동해 엉겁결에 내기를 수락한다. 이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극과 극, 두 남자의 예측불허 기막힌 동거가 시작 되는데…

 

비극도 웃게 만드는 빛나는 유머

'장애', '죽음' 등 우리가 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영화 안에서는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상위 1%와 하위 1%의 두 인생이 만나 진심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냥 언뜻만 보아도 지금까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두 명의 남자는 자신들의 삶에 나타난 서로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고 아픔을 치유해 주며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에서 주로 웃음을 주는 것은 흑인으로 그려지는 드리스( )이다. 전신마비에 걸린 남자에게 못된 농담과 장난을 하나 싶지만 그는 필립( )의 말마따나 그를 유일하게 정상인 취급하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글도 잘 모르고 예술은 더더욱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도울 줄 알았던 드리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그의 숨겨진 재능과 심성을 발견하고 세상에 좀더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필립. 제목의 부제에 달린 '1%'란 말은 상류층 1%와 하류층 1%가 만났다는 의미에서 쓰였겠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없는 1%를 채워주는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필립의 모습을 본 드리스는 좀더 진지하게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고, 필립은 자신의 장애가 부끄러워 사고 이전의 사진을 펜팔 여성에게 보냈지만 결국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여인의 마음과 마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 영화 속에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은 바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대립이다. 필립과 오페라를 함께 보러 간 드리스가 나무 분장을 한 가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거나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전화 안내 방송 멘트를 흉내내는 등의 가식없는 행동은 '못 배운 티'를 내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경멸하는 부류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몇몇 미성숙한 컨텐츠들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필립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교향악단 앞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는 드리스의 모습은 주변의 모든 점잔빼던 사람들을 춤추게 만든다. 예술에 대한 기호와 엄격함, 자부심이 남다른 프랑스 관객들에게도 가장 큰 카타르시스와 신선함을 안겨준 장면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필립'과 '에브댈'도 지금 각각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의 애버 애프터식 마무리도 가슴 찡하다. 신분의 격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너무나도 다른 태생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 긍정적인 기운과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를 경쾌하게 그린 영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정심 같은 것도 왠지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언터처블 : 1%의 우정 (2012)

Untouchable 
9.2
감독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톨레다노
출연
프랑수아 클뤼제, 오마르 사이, 앤 르 니, 오드리 플뢰로, 클로틸드 몰레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프랑스 | 112 분 | 2012-03-22

 


한핏줄 영화들 


씨 인사이드 (2007)

The Sea Inside 
8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벨렌 루에다, 롤라 두에냐스, 마벨 리베라, 셀소 부가요
정보
드라마 |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 125 분 | 20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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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 조금 우울하긴 하지만... 장애인의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끔 한다.

 


버킷리스트: 죽기전에 꼭 하고싶은 것들 (2008)

The Bucket List 
8.9
감독
롭 라이너
출연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션 헤이즈, 비벌리 토드, 롭 모로우
정보
드라마, 코미디 | 미국 | 96 분 | 2008-04-09

신분, 아니 소득차를 뛰어넘은 두 노인네의 우정. '우정'이란 그 어디에서든 '오픈 마인드'만 있다면 성립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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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2012)

The Descendants 
8.1
감독
알렉산더 페인
출연
조지 클루니, 쉐일린 우들리, 아마라 밀러, 주디 그리어, 매튜 릴라드
정보
코미디 | 미국 | 115 분 | 2012-02-16

 

뜻하지 않은 아내의 사고!

그 동안 몰랐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

잘 나가는 변호사 맷(조지 클루니). 그의 아내가 어느 날 보트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내의 사고에 절망한 맷은 막내 딸과 함께 기숙사에 있는 큰 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에게 엄마의 상태를 전하러 가지만, 그간 일에 매달려 가족에게 소홀했던 사이 부쩍 커버린 딸들과의 소통이 법정에서의 변론보다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맷에게 고백하는데…

평온하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딜레마!

그의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과 절망,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남은 가족들의 적응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남의) 가족에 닥친 슬픔은 멀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일이기도 하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 <디센던트> 역시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 미처 몰랐던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죽음'을 다루었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극중 배경이 바로 '하와이'라는 점이다.

'하.와.이.'. 365일 야자수가 푸르게 우거져 있는 이미지의 휴양지, 모두가 언제나 훌라춤을 추며 요들송을 부르고 보트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은 바닷가가 단박에 떠오르는 섬. 하지만 그 곳에도 생로병사가 존재하고 가족 간의 갈등과 오해가 끊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고 사건, 사고도 가끔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내의 혼수상태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간 몰랐던 가족 간의 오해와 비밀이 밝혀지면서 맷(조지 클루니)과 딸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가족의 비극을 그리는 데에 그 배경이 '하와이'로 설정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꽃남방을 입고 슬리퍼에 반바지를 걸친 사람들이 등장해 '죽음'과 '불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풋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하와이에도 슬픔이란 것이 있다!'라고 극중 주인공은 주장하지만 그래도 영화에 담긴 하와이라는 대상의 특성들은 관객의 기대를 심하게 흔드는 대신 그 땅의 역사와 그 곳의 주민들, 성향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죽음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느냐에 따라 남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좀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몰랐던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긍정적인 기회.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유쾌해 진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쨌든 남은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다가 바람 피운 사실을 알고 화를 내는가 하면, 커가는 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 하기도 하는 맷의 모습은 가정에서의 위치를 잃어버린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장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면서도 어른스러운 태도로 위기에 대처해 나간다. 특히 반항적인 큰 딸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듯 싶다가 엄마의 내연남을 찾아가 복수 아닌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딸과 묘하게 협력하게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역시 가족 간에 이해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알렉산더 페인의 유쾌한 연출은 가족이 앞으로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관객을 안심시켜 주는데에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오랜만에 진지한 역할을 벗어난 조지 크루니의 코믹 연기도 볼 만하다. 은발의 꽃중년도 귀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지 클루니의 영화를 보면서 가끔 깨닫곤 한다. ;;

 

 


 

'조지 클루니' 관련글

2010/03/14 - [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다큐멘터리] - [영화] 인 디 에어 (2009, 제이슨 라이트먼)_내 배낭, 무얼로 채워야 하나 

 

 이 영화 보고 나니 생각나는 영화들


아들의 방 (2001)

The Son's Room 
7.8
감독
난니 모레티
출연
난니 모레티, 로라 모란테, 야스민 트린카, 쥬세페 산펠리체, 소피아 비글리아
정보
드라마 | 이탈리아 | 96 분 | 2001-11-02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로를 다독이는 부부의 모습.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Little Miss Sunshine 
8.9
감독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출연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렛, 스티브 카렐,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1 분 | 2006-12-21

미스 리틀 선샤인에 출전하는 막내딸을 위해 온 가족이 출동하여 길을 떠나는 골때리는 로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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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개봉: 2012. 3. 22
감독 : 이용주
주연 :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어쩌면…사랑할 수 있을까?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던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함께 숙제를 하게 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순진한 승민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고백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작은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다시…사랑할 수 있을까? 15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서른 다섯의 건축가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서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 함께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 스포일러 주의

아, 폭풍 회춘!


오랜만에 본 멜로 영화. 덕분에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기분에 젖었다.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열고 나오며 영화 속에 등장했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찾아서 다운받아 들었다. 아... 이런 거 보면 참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데 어째 감성만큼은 그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단 말이야...

30대 초중반이라면 이 영화에 더 빠져들 수 있을 듯 하다. 90년대 중반을 수놓았던 전람회, 015B, 마로니에의 노래들과 CD플레이어, 삐삐, 힙합바지, 공중전화, 펜티엄 등등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들이 첫사랑에 대한 추억과 함께 스크린 안에 고스란히 되살려 지니 보는 것만으로도 회춘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테니. 그리고 '건축'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또한 오묘하게 첫사랑과 맞아 떨어진다. 세월이 지나면 더욱 아련해 지는 첫사랑처럼, 사람이 오래 산 흔적이 남은 낡은 집 위에 또다시 새로운 집을 지어 올리듯 우리는 추억에 추억을 또 쌓아올리며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굳지 않은 수돗가 시멘트 바닥에 남은 여섯 살 서연의 발자국도 벽돌담에 남은 키를 재던 자국도, 승민의 발길질에 찌그러진 쇠문도 그 안에 사람의 모든 기억을 담은 채 사람과 함께 늙어갈 테니까.


함께 나이들어 가는 존재들에 대한 애가(愛歌)

'건축', 그보다 나아가 '공간'이란 개념을 이토록 따뜻하게 보여줬던 영화가 또 있었던가. 영화의 문을 여는 건 서연이 사용했던 오래된, 그러나 따뜻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에서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보기, 가까운 곳으로 여행 떠나보기 등의 과제를 하며 두 주인공 남녀가 가까워 지는 과정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감정과 추억을 새로 깃들게 한다는 것으로 그려져 무척이나 로맨틱한 은유가 되었다. 또한 한 때 희망했던 '강남'의 아파트가 아닌 바닷가가 내려보이는 고향집을 선택한 서연의 현재도 아버지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어 따뜻하게 느껴진다.  추억을 함께 쌓았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함께 집을 짓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이지 않은가! 물들의 대화 중에 나타나는 '강남'과 '강북'에 대한 선입견과 환상들, 그리고 서울이라는 낯설고 외로운 공간에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어린 서연이 '나만의 공간'에 집착하거나 강남을 선망했던 이유도 씁쓸하면서도 충분히 공감 가능한 부분이었다. 


영화는 건축을 말없이 늙어가는 사람처럼 세월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대상으로 의인화한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실제로 승민의 어머니와 서연의 아버지는 각각 그들의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 포기했으나 이제는 늙고 병들거나 외롭게 남겨진, 오래되면 허물고 새로 지어 올려야 하는 유물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승민의 엄마가 스펠이 틀린 게스 티셔츠 입고 있는 부분에서 울컥!할 뻔.) 그 버려진 공간을 딛고 다음 세대들은 그 곳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다. "10년 후 우린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의 답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꽃과 나무는 그저 정성스레 심고 가꾸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주인공의 부모 세대와 승민과 서연,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라는 공간, 그들이 함께 들었던 노래, 심었던 꽃과 나무 모든 것은 기억과 함께 시간이 흐르는 대로, 어려운 질문은 접어둔 채 순리에 따라 성장하고 나이들어 가는 존재들이다.



보는 재미도 쏠쏠


영화 보는 잔재미들도 알뜰살뜰 챙긴 이 영화, 야무지다. 어린 승민-서연을 연기한 이제훈-수지의 풋풋함, 어른 승민-서연을 연기한 엄태웅-한가인의 적당히 알 것 아는 성인들 간의 대화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고, 승민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 재수생 친구 '납뜩'이(조정석)의 연기도 꽤 찰지다. 어설프게 공유를 닮았는데 90년대 중반 무스 바르고 힙합바지입은 채 친구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연기가 아주 일품. ㅎㅎ 공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영화답게 주인공들이 만나는 카페나 레스토랑, 마지막에 함께 완성한 집도 무척 아름답다.  (한가인이 제주도에 지은 그런 집 욕심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첫사랑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솔직히 나의 첫사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첫사랑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과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지만 그 때 그 감정이 살아있을리 만무한 것을 보면 첫사랑은 그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한 때 가졌다는 것, 내 작은 역사에도 한때 촉촉하니 홍조를 띠고 설렘에 잠못들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자체가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종류가 아닐까.
영화를 보며 아주 작은 오해 때문에 무너져 버린 그들의 사랑을 보고 안타까운 기분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건 살아가는 것에 비해 어쩌면 정말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솔직히 말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강남에서 사는 것을 꿈꾸었던 (속물 근성 다분했던) 소녀가 의사와 이혼한 위자료로 대궐같은 집을 짓고 첫사랑까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산다면 그건 좀 너무 하지 않겠나. 

어쨌든 오랜만에 그 시절에 대한 추억도 떠올려보고, 배우와 공간을 보는 재미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영화로 꼽아두어야지.



+ 수지, <드림하이> 때보다 연기가 많이 늘었다. 꽤 오랫동안 '첫사랑 그녀'의 롤모델로 군림할 듯.
++ 한가인, 조금 나이보다 들어보이게끔 분장해서 그랬을까 꽤 아름답게 나이들어 갈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현실 속으로 들어온 올리비아 핫세를 보는 듯한 기분.
+++ 엄태웅, 언제나 여배우들에게 묻혀가는 듯한 역할을 맡는 배우. 하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럽도 불만 없다.
++++ 이제훈, 볼 때마다 느끼지만 박해일을 닮았다. 숫기없는 대학생 연기를 보고 있자니 <국화꽃 향기>가 떠오르더라는.
+++++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이 곡을 사용하기 위해 시대 배경을 그 때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영화
<동감> 시간과 공간, 캠퍼스의 추억 등등..
<번지점프를 하다> 한가인이 매운탕 얘기할 때 이은주가 숟가락 얘기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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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uneywoo.tistory.com BlogIcon 주니우 2012/03/25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화를 보면서 '신씨'님과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크로니클>
개봉 : 2012.3.15
감독 : 조쉬 트랭크
출연 : 데인 드한, 알렉스 러셀, 마이클 B.조던


평범한 고교생 친구 앤드류와 맷, 스티브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땅굴에서 무언가를 본 이후 그들에게 생긴 작은 변화를 알게 된다.

작은 손짓만으로 물건을 이리 저리 움직이거나, 포크로 찔러도 다치지 않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 어릴 때 한번쯤은 꿈꿔왔던 슈퍼 파워를 갖게 된 이들은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난을 하는 등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에 심취한다. 장난에 장난을 이어가던 중 우발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게 된 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그들의 슈퍼파워는 점점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간다. 그러던 중 앤드류가 이상행동을 보이며 점점 공격적으로 변한다. 특별하지만 위험한 그들의 능력에 도시는 점차 혼란에 휩싸이는데…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청소년) 액션 활극을 보았다. 딱 기대했던 만큼의 명랑 영화.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된 청소년 3명이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와 유대 형성의 과정들이 보여지고 나름대로 현실감도 있었다. 투명 망토를 걸치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남자 초등학생한테 물으면 열에 아홉이 '여탕을 훔쳐보겠다'고 말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충실하게 시나리오에 반영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스파이더맨>처럼 우연히 영웅이 된 소년이 겪는 군중 속의 고독과 정체성에 대한 번민을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그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갑작스런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비뚤어진 자존감과 증오를 다스리지 못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조금 스피디하게) 다룰 뿐. 덕분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주인공 소년의 심리가 점차 악을 향해 가는 과정도 꽤 설득력있게 점진적으로 묘사되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꽤) 사실 각 등장인물의 관계 변화를 진지하게 이끌어 나가기에는 8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짧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감독이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않은 듯, 영화는 산뜻하게 전개, 클라이막스를 거친다.




이 영화의 모든 스토리는 카메라에 찍히는 장면으로만 보여진다. 자신의 모든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로 한 주인공 소년의 시점 샷으로부터, 그 카메라를 주고 받는 사람들 사이로 시점이 옮겨 다니고 급기야 소년이 카메라를 공중부양 시키는 덕에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불편함 없이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배우들의 액션 때문에 실제 십대들의 적나라한 학교생활을 지켜보는 듯한 실제감도 들고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렇듯 인물이 찍는 카메라 영상을 영화의 메인 소스로 활용하여 실제감을 전달하는 기법은 <클로버 필드>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기타 다른 영화들에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설정이지만 그다지 진부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언제부턴가 실제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의 삶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 가능해 지지 않았던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보기에 좋은 영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악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초능력 인간을 다루는 영화들이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선'보다는 '악'으로 발전하기 쉬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기도.  


+ 남자 주인공 3명이 모두 듣보잡 배우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 (내가 나이든 탓인걸까..;;)
   그 중에서도 알렉스 역의 데인 드한이란 배우는 에드워드 훨롱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맙소사, 나이 인증..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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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 형제 下> 
도스토예프스키 저 | 박호진 역 | 혜원출판사


주인공들과 그 중심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미움의 끈적끈적한 인간극. 사상적·종교적 문제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색을 장대한 규모와 긴밀한 구성으로 집대성한 작품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걸작이다. 물욕과 음탕의 상징인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그의 아들들 드미르티, 이반, 알료샤를 중심으로 펼치는 예술적인 가치와 심오한 사상성을 그려내고 있다. <하 권> 


카라마조프의 막내 알료샤가 현실 세계로 나와 겪는 사건들이 하권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 책이 친부 살해를 다룬 대작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허물이 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전개에 대한 박진감과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법정 싸움을 지켜보는 흥미진진함까지 내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띄엄띄엄 읽느라 소설을 한 눈에 꿰뚫는 감동을 얻는 데에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역시 한 위대한 작가의 말년 그의 평생을 통해 다듬어진 문학과 철학의 가치관이 집대성된 작품 안에 내재된 깊이를 맛보기엔 충분했다. 


신과 인간, 모두 완벽한 존재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카라마조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여인들이 벌이는 행각들은 신의 방탕한 자녀들의 한바탕 소동극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선 카라마조프의 큰 아들 미챠를 벌하기 위해 신을 대신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미욱하기 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한편으로는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신의 고뇌와 번민을 반영하는 캐릭터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 의해 살해 당하는 카라마조프를 비롯해 그의 성정을 물려받은 아들들이 각기 어떠한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의 상권에서부터 누누히 언급되어 있지만 하권에 이르러서는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과 가치관의 갈등이 한층 극대화되고 있다.

피조물에 살해당한 창조주
 

비극은 아들들의 아버지인 카라마조프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들들에게 살해 당한 그의 마지막 모습도 그렇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비극은 카라마조프가 아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만든 모든 상황이 아닐까. 법정에서는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카라마조프는 모든 아들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큰 아들 미챠는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살인 계획을 담은 편지를 작성했으며 둘째 아들 이반은 그의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다른 형제에게 내비쳤다. 그를 실제로 살해한 것은 카라마조프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정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버림받은 자식이었다. 결국 그의 아들들 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공모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인간상, 막내 알료샤
 

물론 이 진흙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인물도 있기는 있다. 바로 카라마조프의 막내 아들 알료샤이다. 그는 시종일관 모든 인물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거나 오해를 풀고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시도하는, 마치 평화 사절단과 같은 역할을 자처한다. 직업적으로도 방금 수도원에서 나온,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으로 그야말로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객관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알료샤야말로 작가가 지정해 놓은 모든 인간이 이루어야 할 '선'의 극치를 이룬 인물의 모범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어딜 가나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고 악한 이들을 교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선악은 알료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로부터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까지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재판장과 배심원들이 내린 판결(그의 형 미챠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형을 언도받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챠의 탈주 계획에 동조함으로써 형의 결백함을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한 알료샤의 선함을 향한 의식의 여정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그는 한 소년의 무덤가에서 감동적인 마지막 연설을 남기는데 무덤에 묻힌 그 소년은 가난난 아버지가 남들로부터 비웃음과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해 돌멩이를 집어드는 용기를 발휘했고,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또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았던 아이였다. 또한 그 소년의 아버지 역시 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자신이 생명을 주었던 존재의 죽음을 얼마나 사람이 아파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아버지'란 이름에 충실한 자였다. 알료샤가 바라본 인간의 모습이란, 이성적인 인간들 간의 관계란, 이상적인 부자 간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인간 세상 역시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비천할지언정 인간이란, 가족이란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를 작가는 알료샤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알료샤는 소년의 무덤가에서, 그 소년의 순수한 또래 친구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선언한다. '악인'이 아니라 우리는 '선한'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끈 모든 존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해서 카라마조프(아버지 표도르)는 비록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비난받아 마땅한 이름의 대명사였지만 반성과 후회를 통한 깨달음을 실천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은 후 카라마조프(알료샤)는 칭송해 마땅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때 알료샤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감격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작가가 기대하는 러시아의 미래였을 것이다. 인간 존재에 가치와 가능성은 그렇게 획득되어 가는 것이며 인간은, 러시아는, 또 인류는 그렇게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말이다.   

뚝심을 요하는 소설

소설의 양이 방대하고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외우기 어려워 도중에 읽기를 중단하면 이후 다시 그 감정을 이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긴박한 법정에서의 논쟁과 변론이 이어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빨려들듯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미챠의 잘못을 주장하는 검사와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의 논고 대결 안에 이 소설 속에 등장한 모든 팩트와 상징성이 압축되어 있어 이 책의 구도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는 것 같은 작가 특유의 장황한 문체의 행간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철학이 담겨 있었는지도 뒤늦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몰락한 인간성의 대표자 격인 아버지, 카라마조프의 생애는 비극으로 마감되었으며 그의 죽음을 심정적으로 공모했던 아들들은 장차 남은 모든 생애를 통한 반성과 희생에 바치며 살아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이 났다. 내가 해석한, 작가가 관객에게 남긴 주문은 다음과 같다. 무책임한 아들을을 방치한 신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따르고 그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선함'을 실천하고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결하게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알료샤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연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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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픽션>

개봉 : 2012.02.29
감독 : 전계수
출연 : 하정우, 공효진

“내 과거의 사랑은 비록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아직도 사랑은 유효하다”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맨 나머지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소설가 구주월(하정우).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게 완벽한 여인 희진(공효진)이 나타난다. 첫 눈에 그녀의 포로가 되어 버린 주월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희진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주월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희진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내 사랑, 널 위해서라면 폭발하는 화산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시작된 그녀와의 연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주월은 끓어오르는 사랑과 넘치는 창작열에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 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하나부터 열까지 쿨하지 못한 이 남자, 모든 고비를 이겨내고 평생 꿈꿔왔던 연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아~ 재밌었다'로 끝나지 않고 '도대체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금해지도록 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 영화가 그런 영화에 속할 텐데 나는 <러브픽션>의 전계수 감독의 전작 <삼거리극장>을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내손을 거쳐 간 몇 안 되는 한국영화 중 한 편이었기 때문에.. 흙.)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오래된 극장에서 오슬오슬 피어 올랐던 <삼거리극장>의 음습한 비주얼은 <러브픽션>의 첫장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과장된 성우 연기와  더빙 영화 특유의 신음(?)소리, 앤틱한 분위기, 웃기긴 한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모호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러브픽션>은 끝까지 줄곧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소재란 있을 수 없다. 다만 배우와 새로운 캐릭터가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하정우와 공효진을 커플로 묶어 구경할 수 있게 된 한국 영화 관객은 행복한 존재들이라고 할 밖에.  비록 그들의 연애사는 진부하고 중간에 지루할 뻔 하기까지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방울방울'스러운 영화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모두 이 두 배우의 힘과 톡톡 튀는 시나리오 덕분일 게다. 겨털을 기르는 취향을 가진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난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단 소릴 들어. 게다가 우리집 티비도 디지'털'이야~'라는 멘트를 좔좔 읊어대는 캐릭터 '구주월'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오직 하정우, 소녀 시절 흰 타이즈 입고 참외같은 똥을 쌌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 앞에서 늘어놓는 여자 '이희진'을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는 오직 공효진뿐이라는 걸 감히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어떠한 역할을 맡아도 싱크로율 100%를 보이는 하정우이지만 특히 찌질하고 소심하면서도 순수해서 미워할 수 없는 '남동생' 같은 남자친구 역할이 정말 그에겐 딱 어울린다. 공효진 역시 묘하게 현실감을 주면서 부담감은 줄여주는 외모를 통해 진짜 대충, 힘 안 들이고 하는 것 같은데도 너무 리얼하게 보이도록 연기하는 재주를 지닌 여배우. 이 두 배우와 엽기적인 시나리오 조합이라니, 주목하지 아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연애편지가 이 정도는 되어야 가슴벅찬 리플라이를 기대해 볼 수 있잖겠소!



로맨틱 코미디의 성격은 주인공들이 가진 직업에서 절반은 결정된다. 극중 소설가인 구주월은 베르테르의 '로테'나 단테의 '베아트리체' 같은 여신포스의 뮤즈를 갈망하지만 결국 현실 속에서 겨털을 기르는 엽기녀를 사랑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단순한 고민거리에 그쳤을 번뇌를 소설가인 그는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의 영감, 고민, 환희를 한데 버무려 제 2의 컨텐츠로 발현시킨다. 현재 여자친구와 친구들, 전 여자친구까지 감자탕집 주인으로 등장시키는 그의 소설은 영화 속에서 단순히 웃음을 주는 영화 속 영화같은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가 혹은 예술가들의 일련의 창작활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일부분 드러내보이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전계수 감독의 실제 사랑 이야기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감히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애'라는 행위는 인간에게 실로 다양한 부분에서 다양한 모양새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결국 사랑에 대한 결론은 영화 감독이든 소설가이든 그 누구든 동일하게 내리는 것 같다. 나만의 연인, 내 영혼의 뮤즈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채식주의자가 감자탕이나 삼겹살 같은 것을 먹어야만 하는 것만큼의 용기와 결단력과 희생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러나 누구에게든 완벽한 뮤즈란 없으며, 겨털을 기르는 엽기녀일지언정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나의 유일무이한 뮤즈일 뿐이라는. 또한 완벽한 누군가가 내게 '뮤즈'가 되어주길 바라지만 말고 내가 그녀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역으로 더욱 힘써야 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는.... 음... 이런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도 역시 누가 나와서 어떻게 대사를 읊느냐에 따라 달라지나니.. 앞으로도 로맨틱 코미디는 그냥 내용 다 떠나서 배우를 보고 선택하면 되겠다는 다짐만 다시 한번..

사랑이 심드렁해지는 순간, 생각만 해도 슬프..


 + 술자리에서의 아슬아슬한 농담과 유치한 말다툼은 잠시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도.
 

++지진희도 은근한 사차원 배우 중 한 명.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영화에 저런 역할로 특별출연한 걸까. ㅋ 너무 좋아.

하정우의 찌질남 연기 BEST 3!

1. <멋진 하루> : 이 영화와 <러브픽션> 단 두 편만으로 하정우라는 배우의 퍼즐이 맞춰진다고 하면 오버일까.  
    2009/05/10 - [신씨의 culture 리뷰] - [영화] 멋진 하루 (2008, 이윤기)_아, 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였다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강렬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웃집 찌질이의 고자질 크리!
    2010/01/19 - [신씨의 culture 리뷰] -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 홍상수)_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면 되는 홍상수 영화

3. <구미호 가족> : 아... 비주얼까지 이 정도면 정말... 난 이 영화 보고 하정우가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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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내추럴> Supernatural Seson 2
미국드라마 | 2006.09.28 ~ 2007.05.17
편성 : 미국 CWTV
출연 : 젠슨 애클스, 제러드 파달렉키

지난 시즌에서 심하게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의식불명이 된 딘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인 존은 어둠의 세력들과 위험한 거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끝없는 의문을 갖고 있던 샘은 결국 형 딘을 통해 자신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듣게 된다.
두 형제의 목숨을 놓고 벌이는 악령과의 진짜 전쟁.
시즌2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과연 딘과 샘은 악령으로부터 자신들의 목숨과 영혼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줄거리 출처 : 폭스 채널 >>


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화했다. 형제들의 신분 위장 변신 쇼는 계속되고 악마가 있는 곳은 어디든 옮겨다니다 보니 놀이 공원,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 교도소 등 장소의 범위도 넓어졌다. 사냥꾼들의 네트워크가 드러나는가 하면 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그 규모가 훨씬 확장되었다. 



깊어진 형제의 고민

시즌 1에서는 매 회가 끝날 때마다 마치 학원물의 에피소드가 끝나듯이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다시 먼 길을 떠나가는 형제가 탄 캐딜락의 뒷모습이 보여졌다. 그에 비해 시즌 2에서는 촌스런 락앤롤이 들려오는 대신 형제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채 끝나는 회수가 늘어났다. 그만큼 형제들의 고민과 고뇌가 깊어졌다는 것인데 시즌 1의 마지막에서 사망했던 딘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하고 지옥으로 간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방황하고 괴로워 한다. 결국 딘은 냉소적이고 우울한 인간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런 딘의 얼굴이 밝아진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 역시 동생 샘을 되살리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 이후이다. 각각 한 번씩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난 형제, 그러나 그들은 '자연스러움', 나아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단이고 욕망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아버지, 자신의 동생 또는 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도박을 하고 만다. 그들 역시 죽음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은 보편적인 욕망 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악마로부터의 희생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자유와 젊음을 저당잡혔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으로 괴로워 한다. 자신들이 왜 영웅, 그것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이 스스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피로감 을 느끼는 것이다. 그럴수록 악마들은 나약해진 형제의 빈틈을 파고 든다. 예를 들어 끊임없는 악마와의 대결에 지친 나머지 '절대선(善)'의 존재를 믿고 싶어진 샘에게는 천사의 환영을 보게 하고, 편안한 가족에 대한 로망을 간직한 딘에게는 강력한 환각을 맛보게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20회에서 딘은 소원을 들어주는 악령 지니에 의해 포박당해 환각 상태에서 자신의 이상형 속 가족을 만나게 된 딘은 어머니와 샘의 약혼녀 제시카가 살아있는 꿈을 꾸게 된다. 정원이 딸린 아담한 집과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사는 꿈.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나 소박한 이러한 꿈이 이들 형제에게는 왜 그리고 힘든 것이어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그는 그 달콤한 환각 상태에서 애써 빠져 나와 악몽 같은 현실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리고 자신의 꿈 속에없었던 단 한 가지를 현실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동생 샘과의 우애였던 것. (아씨, 가슴 뭉클~)

이렇게 악마는 조금씩 지쳐가는 형제들의 심리를 파고 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문을 거는 것이다. 이제 너는 충분히 노력했으니 그만 쉬어도 된다고. 이제 그만 행복해도 좋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서로가 흔들릴 때마다 끊임없이 다독이면서 힘을 북돋워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모든 일에는 신념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한 판단력이 동원되고 형제는 서로가 흔들릴 때마다 잡아 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마치 형제의 성장드라마적 과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다 큰 어른들이 아닌, 제도로부터 벗어나 있으나, 여전히 가족의 사랑에 집착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내추럴'의 영역 VS '수퍼내추럴'의 영역

시즌 2의 초반에 아버지는 딘을 위해, 그리고 딘은 시즌의 마지막 회에서 자신의 동생 샘을 되살리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고 만다. 삶과 죽음이 거래를 통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드라마 속 설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이면서도 이율배반적 욕망으로부터 형제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른 이의 죽음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온 힘을 다해 막아내고자 하는 것. 평소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생'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경멸해 왔던 딘 자신 조차도 동생 샘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을 1년만 남겨 놓고 악마에게 팔아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삶이 '내추럴'이 아닌 '수퍼내추럴'을 기반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이제는 좀더 나아가 상식'으로부터 '비상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의 행보는 경찰에 쫓기고 상식적인 사람들에 의해 반대당한다. 이들은 조금씩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로부터 배제된 삶 한 가운데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뇌어린 활보를 보고 있노라면 때로 세상은 이런 자들에 의해 정상으로 보이게끔 유지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음지에서 그저 사명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이 어디 '퇴마사'들 뿐이랴. 현실적 차원에서도 이들과 같은 기능을 하는 이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곳곳에 많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렇게 미드가 재미있는 점은 단순한 수퍼내추럴한 현상을 보여주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볼거리와 흥미거리로 시선을 사로잡는 기능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실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보편적이지 않은 존재들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의 오마주, 캐릭터를 보는 재미

이 드라마는 또다른 수많은 미드 속 다양한 설정들을 떠올리게 한다. 샘과 같은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등장할 땐 '히어로즈'를, 교도소에서 귀신을 잡은 후 탈옥하는 장면에서는 '프리즌 브레이크'를.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는 '배틀필드'까지 등장한다. 이같은 대중문화의 짬뽕탕 같은 재미에 대한 관심은 주인공 딘이 미국 대중문화 아이템들을 줄줄 꿰고 있어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제목들, 연예인 이름들을 대사에 등장시킨다는 설정과도 연결된다. 어떻게 이토록 많은 장르가 하나의 드라마 컨텐츠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 감탄할 따름. 그러면서도 드라마 본연의 목적성과 개성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모든 재미와 일관성은 (술과 여자를 밝히는 건달같은 겉모습에 알고 보면 순정파인) '딘'과 (순수하고 스마트하며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 '샘'이라는 형제 캐릭터가 발휘하는 힘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듯. 이들 형제가 새로운 악마를 만나고 새로운 여인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악마를 퇴치해 나가는 과정도 궁금하지만 이제는 이들이 나와서 서로 티격태격 하며 말장난을 거는 장면만 나온다 하더라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을 것만 같게 생겼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인지 첨엔 그저그런 킬링타임용 미드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왜인지 나도 모르게 전철만 타면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있다는..


+a
+ 16화에는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여주인공 트리시아 헬퍼가 등장. (알아보는 배우가 생겼다. 흐뭇...)


++ 검색해 보니 이 드라마의 감독은 킴 매너스, 필립 스그리시아, 로버트 싱어, 마이크 롤, 스티브 보이엄 등 무려 5명이다.(그래도 시즌 1편보단 4명 줄었다.;;) 이 드라마에서 제일 피곤한 건 역시 '딘'과 '샘'이겠군...

+++ 가장 연출이 두드러졌던 에피소드는 장난을 좋아하는 악마 트릭스터가 나왔던 15회인데 형제가 악마의 장난에 놀아나 서로 모함하고 바비 아저씨 앞에서 서로를 모함하고 고자질하는 모습을 표현한 편집이 특히 익살스럽더라는. 사실 다른 편에 비교했을 때 너무 튀는 에피도스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지만.

++++ 개인적으로 샘의 아동틱한 헤어스타일을 좀 바꿔주고 싶다는 바람이... 

 

<수퍼내추럴> 시즌별 리뷰

시즌 1 mission :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라!
리뷰 :
2012/01/21 - [신씨의 culture 리뷰] - [미드] 수퍼내추럴 시즌 1: 꽃미남 형제의 귀신 찾아 떠나는 여행, 은근 매력있어!

시즌 2 misiion : 노란눈 악마를 처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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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개봉 : 2012.02.09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제레미 어바인 / 베네딕트 컴버배치 / 톰 히들스턴

아버지가 사온 ‘조이’를 만난 순간부터 운명처럼 함께 했던 소년 알버트. 그는 ‘조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피를 나눈 형제처럼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고 ‘조이’는 기마대의 군마로 차출되어 알버트 곁을 떠나게 된다. 혼돈으로 가득한 전장의 한 복판에서도 ‘조이’는 알버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 희망은 ‘조이’가 전쟁 속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과 웃음을 가져다 준다. 한편, 알버트는 ‘조이’를 찾기 위해 입대를 감행하게 되는데...

초반보다 후반이 별미

영화의 초반, 이 영화는 ET와 같은 비인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교감과 우정을 그린 아동영화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중반 전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동안에는 살짝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는 달랐다. 그의 단 하나의 이름 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후회없도록 만들만큼 그의 솜씨는 유려하고 담담해 결국은 내 마음을 (또다시!) 흔들고 말았다.




아군과 적군, 인간과 동물이 따로 없는 전쟁터

요즘 전쟁영화를 보면 이제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테크놀로지의 전시장과 같은 역할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의 참혹함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아 내어 치를 떨 만큼 전율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전쟁에 휘말린 가족애를 절절하게 그림과 동시에 전쟁의 허무함을 드러낸 수작이었으며 가장 생생하게 전쟁을 (기술적으로 잘) 묘사한 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되었다. 물론 그 영화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했지만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철학을 담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멍청한 발명품이 바로 '전쟁'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영화를 즐겨 만드는 그가 이 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이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전쟁에 인간과 함께 참가하였으며 전장에서 수없이 쓰러져 간 '말'이라는 동물, 즉 '워 호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 영화는 점차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시점에서만 정당성을 주장하는 수단으로 그려지길 거부하는 듯 하다. 전쟁에서는 옳고 그른 이념이 따로 없고 그 안에서 피해자는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는 설정은 얼마 전에 개봉한 강제규 영화 <마이 웨이>에서도 보았다. 그러나 이제 전쟁의 희생양은 인간 뿐이 아니라 동물도 포함된다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조이'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절대 모른다. 그저 주인이 그립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할 뿐이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비단 동물한테만 있을까. 하지만 전쟁에 동원된 인간은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탈영한 어린 독일군 형제는 붙잡혀 총살 당하고 알버트의 고향 친구 '앤드류'는 참호로 퇴각하여 돌아오는 병사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래서 전쟁터를 가로질러 끊임없이 질주하는 조이의 모습은 참호 속에서 웅크린 병사들의 모습과 대조되어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역시 인간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리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잊지 않는다. 전쟁터를 질주하던 조이가 철조망에 갇혀 쓰러졌을 때 관객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인간 고유의 선한 본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군과 독일군에서 한 사람씩 나와 조이를 휘감은 철조망을 끊는 동안 두 사람은 통성명을 하고 고향 이야기를 하고 일을 분담하고 서로의 처지를 묻고 행운을 빌어준다. 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면 이토록 평화로운 사람들이 단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토록 무분별한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것일까. 자갈밭을 가는 조이와 알버트를 응원하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씨와, 비록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살인병기였지만 기적의 말 '조이'를 되찾으라며 돈을 걷어준 병사들의 마음씨가 무어 다를까. 이렇게 인간은 홀로 있을 때엔 한없이 선하지만 거대한 명분 앞에서는 필요에 따라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가.  



'이름 붙인다는 것'의 의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인간이 '이름'에 집착하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소중한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주곤 한다. 조이를 처음 만난 소년 알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거위에게 '해롤드'라 이름을 붙여준 알버트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에서 조이를 만나 '프랑소와'라 이름붙여 주었던 소녀 에밀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가문의 구성원들의 성정을 이름으로 평가할 정도로 인간은 어떠한 존재를 기억하는 데에 이름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전장에서 대포를 끄는 조이에게 한 병사가 이름을 붙이자 옆에 있던 장교는 '금방 죽을 것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름은 인간이 상대에게 정을 주고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알버트는 주지의 아들에게 함께 드라이브를 했던 소녀의 이름을 묻고 자신에게 기꺼이 조이를 다시 넘겨준 할아버지에게 손녀의 이름을 묻는다. 아마도 고향 데본의 그 소녀와 조이의 친구였던 에밀리를 알버트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전쟁에 휩쓸리는 동안 조이는 이름을 잃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 말에게는 이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소와'라 불리고 또 다른 어딘가에선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듯이. 하지만 '조이'가 다른 말과 다름을 입증하는 순간은 바로 알버트가 조이를 부를 때 내는 새소리에 반응할 때였다. 이처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즉 인간의 입으로 소리내어 하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행위보다는 소년과 말 사이에 싹튼 교감, 약속, 신뢰, 추억과 같은 것들이 훨씬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용기

이 영화는 또한 '용기'를 재정의한다. 수많은 전쟁에 참여해 표창을 받은 알버트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 하지만 그저 동네 유지에게 무시당하는 절름발이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들인 알버트는 그의 아버지가 용기가 없어 술을 마시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적군을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가 바로 '용기'라고 말한다. 또한 에밀리의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내려다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날아가는 '용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탈영했던 독일군 형제는 적발되어 총살당하기 직전 '실수였냐'는 물음에 '약속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철조망에 갇힌 조이를 풀어주기 위해 백기를 흔들며 적진을 향해 걸어간 한 병사였다.
그동안 '용기'는 전쟁터에서 진격할 때 앞장서며 적군을 무찌르는 데 거침이 없으며 후퇴할 줄 모르는 집념을 일컫는 말로 쓰여 왔다. 하지만 <워 호스>에서 말하는 '용기'는 가족을 위해 옳은 선택을 내리고 내 안위가 위협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신념을 말하고 있다. 점프를 하지 못했던 조이가 탱크를 뛰어 넘어 미친 듯이 달려 갈 때, 그리운 집과 알버트를 향해 질주하는 조이의 모습이 바로 용기있는 행동이요, 임대료를 내기 위해 조이를 길들여 최선을 다해 자갈밭을 갈아내는 알버트의 모습이 바로 용기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용기는 거대한 명분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때 절로 발휘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무리

물론 곳곳에서 작위적인 설정과 감상이 이어지는 듯한 감은 없지 않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그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안에 '냉소'와 '좌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갖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드러내놓고 테크놀로지를 자랑하거나 억지 감동을 자아내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전쟁을 겪어내는 한 마리의 동물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전쟁을 보여주고 그 안의 인간들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노을이 비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알버트의 가족이 다시 만나 포옹하는 장면은 한없이 동화적인 비주얼의 실루엣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말없이 그저 서로를 안는다. 대사 한 마디 없지만, 또 그들의 해피엔딩은 너무나 평화롭고도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지만 이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상적인 인간사였을 것이다. 바로 그 이상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가족'으로 평화롭게 머무는 세상이다.




+ 어떻게 말을 이 정도로 훈련시켜 영화에 출연시킬 수 있을까.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 뿐만 아니라 애절한 눈빛연기까지 손색없는 연기력을 보여준 '조이'. 동물연기상이 아니라 남우주연상은 거뜬히 받아야 하는데.. ㅋㅋ
 

++ 한 가지 불만은.. 왜 영국, 독일, 프랑스인 모두 영어를 쓰나...;; 아무리 영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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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감주 (즈라더) 2012/02/27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전부 영어쓰는 거야 헐리우드에선 당연한...

  2. jeenee 2012/03/16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베니도 언급해줘. ㅋㅋㅋ

영화 <하울링>
개봉 2012.02.16
감독 : 유하
출연 : 송강호, 이나영
등급 : 15세 관람가

승진 때마다 후배에게 밀리는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 어느 날 그에게 고과도 낮은 분신 자살 사건과 함께 순찰대 출신의 새파란 신참 여형사 ‘은영(이나영)’까지 파트너로 떠맡겨진다. 상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조사 결과 이는 정교하게 제작된 시한벨트발화장치에 의한 계획된 살인임을 알아낸다. 상길은 승진 욕심에 상부에 보고도 않은 채 독단적인 수사에 나서고 은영은 사체에서 발견된 짐승의 이빨자국에 주목하지만 상길은 은영의 의견을 무시할 뿐이다. 그러던 중 짐승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은영은 지난번과 이번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독 수사를 감행하는 상길과 어쩔 수 없이 상길을 따라야 하는 은영. 마침내 두 사람은 피해자들의 몸에 공통된 이빨자국이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의 것임을 그리고 피해자들이 과거 서로 알던 사이였음을 밝혀 내는데……

* 스포일러 유의

단순히 동물 영화라고 말하기엔
유하 감독님, 나름대로 센세이셔널한 작품세계를 보이시던 분이 갑자기 동물영화라니, 의외다 싶었다. 동물영화라고 하니 <마음이>와 <백구>와 같은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그만큼 동물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취향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물론 이 영화 <하울링>의 주인공은 늑대개다. 그만큼 동물의 연기가 도드라지는 작품이었지만 역시 영화는 인간과 동물이 사회로부터 받는 상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내와 이혼 후 사춘기 아들, 딸을 키우며 승진에서도 자꾸 밀리는 형사 상길(송강호)와 이혼한 남편 이외에 친구나 친척이 없고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은영(이나영)의 만남. 예상대로 이들은 첫만남부터 삐걱거린다.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동물의 습격으로 보이는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것. 한방 터뜨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비밀수사를 진행하는 상길과 성희롱과 성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은영은 일에 임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그리고 특유의 여성적 섬세함으로 사건에 접근해 가는 은영 덕분에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늑대개 역시 사람에 의해 상처를 지닌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된 은영과 늑대개가 서로 교감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간지러운 설정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신이 간직한 상처를 극복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헤어진 아내와 남편에 대한 원망, 비뚤어진 채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모에 가진 증오, 어른들 손에 '애들장사'에 팔려간 소녀들이 받는 상처, 마음과 몸에 상처입은 딸을 지켜 보아야 하는 아비의 슬픔, 인간의 분노 때문에 잘못 길러진 짐승 등 행복하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누구에겐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주어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딸이며 아빠이거나 친구임에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게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씁쓸한 일이 아닐까. 내 딸을 키우기 위해 다른 이의 딸을 팔아넘기는 짓 따위를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 그에 비해 자신에게 모든 마음을 열어준 주인 소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늑대개 '질풍'이 또다시 인간에 의해 희생당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더 아프다.  


송강호보다 이나영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누구나 송강호가 이 영화의 메인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상처받은 등장인물(견 포함)들의 대표격인 '은영'(이나영)이다. 이나영은 남성위주의 조직 사회에서 홀로 싸운 외로운 존재였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노리개가 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홀로 분노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이자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잘못 키워진 한 생명에 동정심을 갖게 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의 완벽한 주인공은 바로 이나영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시종일관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움직이던 이나영은 마지막 홀로 범인들의 아지트를 덮치는 장면에서 모든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 때까지 이나영은 영화 내내 감정을 절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때의 폭발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의외로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나 이나영의 캐스팅이 절묘하다고 느껴졌던 장면은 이나영의 서글서글하면서도 사연이 많아 보이는 그 큰 눈이 늑대개와 기싸움을 벌이는 순간이다. 바로 이 때만큼은 이나영이 정말 눈으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외계인이라도 좋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유하 감독님의 답변을 들어 보니 사모님께서 이나영을 적극 추천하셨다고. ㅎ

물론 그녀의 연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뒷받침해 주는 송강호가 전해주는 연륜도 만만치 않은.


유하 감독님과의 대화
영화가 끝난 후 유하 감독님과의 문답 시간이 이어졌다. 감독으로서 개봉 이전에 관객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긴장되는 일일까. 배우에 대한, 영화 속 대사에 대한, '늑대개'를 포함한 동물에 대한 느낌과 감상 등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유창하진 않지만 조근조근 진실되게 대답하는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그저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이의 우직함이 느껴졌다. 질문을 하면 감독님이 직접 쓴 책과 <하울링>의 원작소설을 선물로 준다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역시 부끄러워 그저 다른 분들의 문답을 듣고만 있었다.


오옷! 이 사진 너무 예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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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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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티고네>

일시 2012/02/02~2012/02/26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관람시간 90분
출연 박완규/박윤정

처참하게 죽은 채 들판에 버려진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 앞에서 안티고네가 몸부림치며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녀는 오빠의 주검을 정성껏 손으로 흙을 뿌려 묻어주고 또다시 고통스럽게 오열한다
. 

전쟁의 와중에 테바이의 새로운 절대 권력자가 된 크레온. 그의 수하들이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수습하던 안티고네를 발견해 끌고와서는 크레온 앞에 내동댕이친다. 
크레온은 조국의 편에서 적과 맞서 싸우다 죽은 에티오클레스는 성대하고 장례를 치러주고, 조국을 향해 칼을 겨눈 에티오클레스의 동생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그대로 들판에 버려둔 채 들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는 명령을 공포했다. 
이제 명령을 어켜 붙잡혀온 안티고네에게 크레온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준법 의무를 내세우며 준엄한 처벌을 내린다. 허나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조국을 향한 저항의 당위성과 혈육으로서의 아픔을 외치며 크레온의 부당함에 온몸으로 항거한다. 
퇴로가 없는 우리에 갇힌 투견들과 같이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대립은 극단적으로 치닫고, 결국 그 싸움은 당사자는 물론 그들과 관계된 모든 이들의 잔혹한 파멸로 끝을 맺는다.


오랜만에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소포클레스의 원작이라는 정보 외에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제목 <안티고네>.


공연이 시작되기 5분 전에 입장을 시켜 주는데 극장 안이 조금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무대를 중앙에 놓고 관객석이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는 식이다. 관객들이 착석하는 도중에는 가운데에 있는 철창 안팎으로 이루어진 세트에서는 배우가 이미 연기를 벌이고 있었다.


또한 내가 앉은 객석의 맨 상부에는 배우가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 보이는 마네킹처럼 보이는 석상도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반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 얘긴 리뷰에서 밝히지 않는 게 좋을 듯. ㅎ)

'안티고네'
극은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괘종시계가 울릴 무렵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잡혀와 철창에 갇히게 된다. 그녀의 죄목은 들판에 버려져 짐승의 먹이가 되게 놔두라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에 흙을 덮어준 죄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법을 어겼고 국가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지닌 크레온과 설전을 벌이게 된다는 게 이 연극의 주된 내용이다. 원작을 읽어 보지 않았을 뿐더러 신화에도 별 관심이 없는지라(ㅡㅜ) '안티고네'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이해조차 없었다. 연극을 보고 난 이후 부랴부랴 관련 내용을 찾아 보았다.
그녀,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찔러 죽이고 어머니인 줄 모르고 어머니와 결혼해 낳은 딸이다. 태생부터 비극적인 그녀는 아버지를 잃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오빠의 시체를 마주하게 된다. 오빠의 시체에 흙을 덮어준 죄로 감옥에 들어간 안티고네는 테베시의 시장이자 약혼자의 아버지인 크레온에 맞서 온몸으로 항거한다. 

명분은 그녀에게도, 크레온에게도 있다. 모두가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의 존엄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법은 위압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법이란 것이 사람에게 공평치 않은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는 불합리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법을 어긴 댓가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 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양심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가.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싸움이 커지는 동안, 안티고네의 여동생과 그녀의 약혼자가 싸움에 끼여들고 철창 안에서 오가는 고함소리와 몸짓은 점점 격해 진다. 철창 밖에 띄엄띄엄 둘러선 군중들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비난하거나 놀라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시끄럽게 떠든다.

법질서와 개인의 양심의 싸움
'법'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부러진 화살>에서 '법'의 역할을 부르짖었던 주인공 김경호 교수(안성기)의 사법부와의 투쟁도 함께 떠오른다. 법이란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해 제정된 것이므로 때에 따라서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조정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수가 공감을 해야 하며 양심에 의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융통성'이란 것도 어디까지 인정돼야 할 것인가. 끝까지 법의 준엄함을 따져 물었던 크레온의 완고함은 결국 등장인물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고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다시 연극의 처음처럼 괘종시계가 울리자 넋이 나간 듯한 크레온은 "9시구나. 회의를 준비할 시간이야."라고 읊조린다. 안쓰럽지만 그게 그의 운명이라면, 하는 생각과 함께 한숨이 푹 새어나오는 결말이다. 언제든 또다른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싸움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열정어린 배우들의 연기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매 장면마다 집중하기는 다소 힘든 것이 사실이다. 중언부언하는 듯한 대사들도 조금 과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가 뿜어내는 열기만큼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온 몸으로 토하듯 격렬하게 내뱉는 대사들은 독하고 쓰고 냉혹하면서도 뜨겁다. 크레온 역의 박완규라는 배우는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열변을 토하고 안티고네역의 박윤정 역시 그 에너지에 팽팽하게 맞선다.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렬한 두 배우의 기싸움은 소포클레스의 원작이라는 소재만큼이나 오래된 연극이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 하다.



연극 자체가 주는 감상도 그렇지만 '배우'라는 존재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되는 듯한 기분이 더 오래가는 작품. 가끔은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만나 자극을 받는 시간이 필요할 듯. 그럴 때 대학로 소극장, 특히 흥미 위주의 가벼운 작품들보다도 고루함과 진중함을 미덕으로 삼는 이런 고전 연극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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