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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다큐멘터리'에 해당되는 글 365건

  1. 2012/05/14 [영화 리뷰] 다크 섀도우 : 아동용도 아닌 것이 성인용도 아닌 것이.. (스포)
  2. 2012/05/07 [영화] 은교 : 늙은 시인의 사랑 이야기 (스포)
  3. 2012/05/03 [영화] 코리아 (2012) : 우직하고 사심없는 감동, 2% 부족하지만
  4. 2012/04/26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 우리나라 SF의 한계와 가능성, 장단이 명확한 영화 (4)
  5. 2012/04/15 [영화] 배틀쉽 : 진부함의 끝. 그런데 왠지 싫지 않아 ;; (2)
  6. 2012/04/11 [영화] 이창 (1954) : 히치콕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재발견
  7. 2012/03/31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_ 비극마저 웃게 만드는 빛나는 유머
  8. 2012/03/30 [영화] 디센던트 : 유쾌함, 진심으로 극복하는 가족의 위기
  9. 2012/03/24 [영화] 건축학개론 : 공간, 사람, 추억 모두 함께 나이들어 간다 (2)
  10. 2012/03/22 [영화] 크로니클 (2012) : 신선한 듯 아닌 듯, 욕심없는 연출이 돋보이는 (청소년) 오락영화
  11. 2012/03/05 [영화] 러브픽션 : 로맨틱코미디는 역시 캐릭터(배우)+시나리오빨
  12. 2012/02/27 [영화] 워 호스 (스티븐 스필버그) : 전쟁터에서의 용기를 재정의하다 (4)
  13. 2012/02/24 [영화] 하울링 (유하) : 외로운, 버려진 존재들 간의 분노와 교감
  14. 2012/02/05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_미워할 수 없는 그 시절 꼰대들의 이야기 (4)
  15. 2012/02/04 [영화] 댄싱퀸 : 황정민, 엄정화의 매력 대폭발
  16. 2012/01/30 [영화] 부러진 화살 (정지영): 할 말은 하는 주인공처럼 똑 부러지는 영화 (2)
  17. 2012/01/25 [다큐] 오래된 인력거 (이성규): 35년 인력거꾼의 눈물이 불러일으키는 관객의 죄의식
  18. 2012/01/22 [영화] 자전거 탄 소년 (다르덴 형제): 위태로움을 희망으로 바꾼 모성애의 힘
  19. 2012/01/17 [영화] 엘라의 계곡 (폴 해기스): '미국은 지금 도움이 필요해요', 이 영화의 고백 (2)
  20. 2012/01/15 [영화] 이브의 모든 것 (1950): 여성=여배우의 욕망의 뒷면을 비추는 고전

 

 

<다크 섀도우>

감독 : 팀 버튼

출연 : 조니 뎁 / 에바 그린 / 미셸 파이퍼 / 벨라 히스코트 / 클로이 모레츠 등

 

※ 스포 주의

 

팀버튼과 조니 뎁의 만남은 언제나 흥미롭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팀버튼이 조니뎁의 캐릭터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지더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때도 그걸 좀 느꼈는데 <다크 섀도우>를 보니 더욱 그렇다. 물론 팀버튼은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동화 속 나라를 완벽하게 스크린 안에 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감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의 작품이 거듭될수록 영화의 비주얼과 캐릭터가 강화되는 반면 스토리나 메시지는 조금씩 심심해 지고 있다. 

 

 

 

 

배우 보는 맛

 

하지만 역시 그의 영화를 통해 만나는 배우들의 매력 만큼은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만큼 강렬하다. 팀 버튼은 다른 것보다도 배우들을 잘 고르는 듯. 그리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팀 버튼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배우들같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마치 장진 사단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정재영, 신하균 등등) 조니 뎁은 더 말해 무엇하랴. 그리고 팀버튼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주연급 조연 헬레나 본햄 카터의 미친 존재감도 역시 열외.  

<다크 섀도우>에서 새롭게(혹은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팀 버튼의 타고 난 배우 복(福)이 드러나는데 콜린스가 저택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주인으로 나온 미셸 파이퍼는 물론이요, 그녀의 한껏 비뚤어진 딸 캐롤린으로 나온 클로이 모레츠도 될성 부른 대배우의 떡잎을 보여주는 듯. 무엇보다 대박이었던 건 마녀로 나온 에바 그린!! 언뜻 보면 청순한 얼굴상인데 그 큰 눈을 매섭게 치켜 뜨니 악랄한 마녀 얼굴이 딱이더라는 ;; 특히 깨져 부서지는 흰 얼굴에 각기 귀신 흉내내는 모션이 가관이었다. 콜린스의 일편단심 연인으로 등장하는 벨라 히스코트라는 여배우도 아이 같은 외모와 달리 낮은 톤의 품위있는 목소리가 매력적.

 

 

 

 

 

 

About Blood

 

세트와 소품 등을 통해 영화 전반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핏빛 비주얼은 섹슈얼하면서도 질긴 연대의 상징으로서의 피(blood)를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 '피'라는 것에 대해 인간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강박 같은 것에 대한 전복도 읽히는데,  영화의 초반 콜린스의 내레이션을 통해 피를 어떻게 타고 나느냐(어느 부모 밑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가난할 수도,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선천적 조건으로서의 '피'를 언급한다. 하지만 '피'로 맺어진 대표적 관계인 '가족'의 의미가 이 영화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를 보면 콜린스의 내레이션은 로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을 버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거부하는 딸의 모습은 '피'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한편 영원히 늙지 않는 불멸을 꿈꿨던 호프만 박사는 콜린스의 피를 탐내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콜린스는 조세트의 목을 깨물어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로 만듦으로써 둘의 사랑을 완성한다. 결국 인간이 집착하는 '피'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거나 절대 바꿀 수 없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통해 충분히 변경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배제되어 있는 무조건적인 집착과 오만함이 얼마나 허무하고 위험한 것인지 콜린스가의 몇몇 어른들과 마녀 안젤리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듯.

 

결론 삼아 정리하자면 <다크 섀도우>는 고전적인 스토리라인을 가공하되 팀버튼다운 비틀기식 유머가 간간이 비어져 나오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동원한 캐릭터 재해석을 통한 재미를 전달하는, 지금까지의 그의 영화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비주얼과 크로테스크한 매력이 넘치는 볼거리들로 무장되어 있지만 마치 잔혹한 그림형제의 동화 원본을 보고 난 후의 찜찜함도 함께 선사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좀 민망하고 그렇다고 성인용 스토리도 아닌 것이...

 

 

팀 버튼의 다음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할지... 이제 조금 고민해 봐야겠다.

 

+ 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음악들~

   70년대 미국 컨츄리 음악과 데스락을 오가는 배경음악은 또다른 재미 요소다.

   그 중에서도 팀 버튼의 영화와 앨리스 쿠퍼의 궁합은 단연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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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감독 : 정지우

주연 :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 스포일러 주의

 

늙은 시인.

 

누구에게나 '처녀'로 표현되는 영감의 대상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창작을 하는 예술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그야말로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다. '은교'는 그러한 존재의 대명사라 일컬을 만 하다. 비록 흰 목과 매끈한 다리, 가는 발목에서부터 시작된 호기심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할지언정 은교는 늙은 시인 이적요를 다시 젊어지는 꿈을 꾸며 창작열을 태울 수 있도록 만든 뮤즈가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늙은 시인은 자신의 나이든 육체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기쁨이 되지 못할까 다가서지 못하고 남은 생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자신을 파멸시켜 가고 만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십대 소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젊은 제자에게 돈과 명성 모든 걸 내주었으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은 제자에 대한 분노는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그 죄책감 때문에 남은 생을 지옥처럼 살아갈 것이다. 

 

 

 

 

젊음.

 

한 편 젊음은 위험하고 어리석으며 모자라고 탐욕적이다. 여물지 못한 손과 머리로 글을 쓰면서 늙은 선생 덕분에 소설가가 되고 팔자가 피게 되었지만 젊은 서지우의 속마음에는 늙은 시인의 껍데기로 살아 간다는 자격지심이 늘 자리하고 있다. 늙은 시인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우월한 단 한 가지는 바로 젊은 몸뚱아리 뿐.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도 같다고 여겼던 늙은 시인의 뮤즈를 자신의 몸뚱아리로 범하는 것으로 늙은 시인을 이기려고 한다.

 

처녀, 어린 아이, 은교.

 

어린 '여자' 은교는 거침이 없고 순수하고 맑으며 눈치를 보지 않는다. 서지우처럼 돈과 명성을 탐하지 않고, 나이든 존재에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다만 자신에게 따뜻한 존재를 따를 뿐이다. 그저 자신에게 상냥하고 친절하며 가르침을 주고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는 사람을 사랑해 버리는 백지 상태와도 같은 은교는 어린아이와 동일한 존재였기에 늙은 시인으로 하여금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를 떠올리게 하고 문학적 상상력이 꿈틀대도록 만들 수 있었다. 

 

 

나이든 수컷과 젊은 수컷 간의 자존심 싸움은 결국 비극으로 끝이 난다. 결국 아무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서지우만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늙은 시인은 꿈과 상상 속에서 얻은 젊은 육체를 가지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렇게 행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추한 욕망에 사로잡힌 한 늙은이가 아니라 나이를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혹은 욕정)을 용납하지 못하는 '공대생'과 같은 사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칠십 먹은 노인과 여고생의 관계는 사랑이 아닌 추문에 불과하다고, 거울이 모두 똑같은 거울이지 선물로 받으면 뭐가 다르냐고 따지는 미성숙한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늙은 시인과 은교가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 늙은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의 세상에서 은교는 이 공대생들의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늙은 시인은 그런 은교가 염려되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끝내 묻고 말았을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 등뒤에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은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을 꼭 다문 채 숨죽여 흐느끼는 늙은 시인의 표정을 카메라는 오래도록 비춘다. 그 늙은 눈물이 어찌나 가슴아프던지..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닌 것처럼, 나의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사람은 왜 늙기 전에는 우리가 젊다는 것을 고마워 할 줄 모르고 나도 늙어가고 있음을 외면하고 싶어할까. 은교가 자신에게 키스하려는 서지우에게 그 이유를 묻자 서지우는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또한 은교는 서지우와 섹스를 하며 여고생이 남자와 자는 이유가 '외로워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늙은 시인에게는 아무도 '외롭지 않느냐'고 묻지 않는다. 늙음과 외로움은 늘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혹은 나이가 들면 외로워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일 터이다.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이렇게 '별'을 '별'로 보지 못하는, 가슴과 본능 안에서 시를 쓰지 못하는 '공대생'의 관념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수많은 서지우들이,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과 슬픔, 흰 발목과 가슴, 젊음에 대한 예찬과 갈망을 시로 쓰고 행복감을 느끼는 시인이 될 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세 배우의 파격 노출씬,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고 나니 좋은 점이 단순히 노출씬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행간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ㅎㅎ 사실 야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거 아니냐며. 그저 배우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만 계속 들 뿐.

 

++ 사실 놀라웠던 장면은 배우들의 섹스신이 아니라 서지우가 탄 차의 교통사고 장면이었다. 오만한 젊음의 철저한 '파멸'을 보여 듯한 적나라한 사고 과정 묘사가 인상적이라는.

 

++ 소설 속 대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문어체 대사가 가끔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문학'적인 느낌 덕분에 좀 상쇄되는 듯. 영상이 참 예쁘다. 특히 은교와 젊은 박해일이 함께 달려가거나 서로 간지르는 장면 참 이쁘다. 저런 게 '젊음'이지 싶고. (아놔. 노인네처럼ㅡ.ㅡ;;)

 

 

 

 

 

 

이런 느낌의 화보들 너무 좋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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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연출 : 문현성
주연 : 하지원, 배두나 

하나가 되는 것부터 우리에겐 도전이었다 

 1991년 대한민국에 탁구 열풍을 몰고 온 최고의 탁구 스타 ‘현정화’(하지원). 번번히 중국에 밀려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던 그녀에게 4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 단일팀 결성 소식이 들려온다. 금메달에 목마른 정화에겐 청천벽력 같은 결정! 선수와 코치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초유의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다. 

 순식간에 ‘코리아’라는 이름의 한 팀이 된 남북의 선수들. 연습 방식, 생활 방식, 말투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남북 선수단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하고, 양 팀을 대표하는 라이벌 정화와 북한의 ‘리분희’(배두나)의 신경전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대회는 점점 다가오지만 한 팀으로서의 호흡은커녕 오히려 갈등만 깊어지고, 출전팀 선발은 예상치 못한 정국으로 흘러 가는데… 

 46일간의 뜨거운 도전이 시작된다!



있을 거 다 있는데 좀 심심하네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 영화 <코리아>는 잔꾀 없이 우직하게 나아가는 영화이다. 예전 <킹콩을 들다>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로 이어지는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한 영화의 계보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코리아>라는 제목과 포스터의 비주얼만 보아도 우리는 영화의 내용과 감상 포인트를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너무나도 정직하고 순수한 (목표하는 바가 너무나도 명징한) 이 스포츠 영화가 오히려 일부 관객들에게는 불편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반도>를 연상케 하는 애국심 자극용 제목도 그렇고 (물론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제목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장 적합한 제목이라는 게 이해가 된다만) 지고지순한 스토리 라인이 단조로워서 딱히 꼽을 만한 매력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탁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가진 긴장감이나 존재감을 살려주기보다는 철저히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 주는 감동은 이미 관객에게 익숙한 종류의 것이다. 스토리는 충분히 드라마틱했으나 세련되지 못했다는 인상은 조금.

 

하지원. 처음부터 호감형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신뢰감을 주는 배우로 자리잡은 듯. 


그러나 역시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 코드는 존재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에 더해진 남북의 화합 코드는 비상한 긍지와 자존감의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배우 하지원, 배두나가 완벽하게 재현해 낸 현정화, 리분희 선수의 액션만 보아도 이 영화가 얼마나 순수한 이상과 열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한다. (싱크로율 100%란 표현은 이런 때에 쓰는 것!!) 특히 <더킹 투하츠>에서 북한 여성으로 나오는 하지원이 부산사투리와 표준말을 오가고 상대역인 배두나가 낮은 목소리로 평양사투리를 시크하고 읊조리는 장면을 볼 땐 묘한 재미가 있다. 또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남북한 남녀 선수 간의 러브 스토리도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기도. 좀더 애절하게 몰고 갈 수 있었겠지만 심각하게 보이길 원치 않았던 듯. 무엇보다 북한의 유순복 선수역을 맡았던 한예리의 수더분한 인상과 연기가 훨씬 현실적이면서도 가슴에 와 닿는 캐릭터로 남았다.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남북 관계를 드라마틱한 구도 안에 담아 스포츠 정신을 통한 화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지점에서만 보더라도 의미가 있었던 영화. 사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특히 젊은 관객이라면 더더욱 지나쳐 버리기 쉬운 역사 속 한 장면이니까.  



사상만 가로놓여 있지 않다면 저렇게 같이 얘기만 해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아가씨들인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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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

연출 : 임필성 / 김지운 감독
출연 : 류승범, 고준희, 송새벽, 배두나, 봉준호, 윤제문, 진지희, 이영은, 류승수, 송영창, 김강우, 김규리, 김서형 등등... 

 인류멸망보고서 1. 피조물인 인간, 신의 영역을 넘보다! <천상의 피조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미래. 천상사의 가이드 로봇 RU-4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제조사 UR은 해체를 결정하지만 그를 인명스님으로 부르며 숭배하는 승려들은 반대한다. 해체 직전, 일촉즉발의 순간, UR의 엔지니어 박도원(김강우)이 상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명의 앞을 막아 서는데…

인류멸망보고서 2. 욕망의 끝은 섬뜩한 종말일지니…<멋진 신세계>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연구원 윤석우(류승범)는 소개팅 약속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 수거하지 않고 한번에 처리한 후 집을 나선다.킹카 (고준희), 맛있는 고기 요리, 즐거운 클럽. 온갖 유희 끝 그녀와의 달콤한 키스 현장을 덮친 고교생들을 괴력으로 응징한 석우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온다. 거리를 뒤덮은 좀비의 물결, 광우병도 조류독감도 아닌 괴 바이러스의 정체를 캐는 매스컴의 호들갑도 무색하게 서울의 거리는 멸망으로 치닫는데…

인류멸망보고서 3. 그날 이후, 살아있음을 기뻐하라! 인류, 제2의 탄생 <해피 버스데이>

당구광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셔버린 초등학생 박민서(진지희)는 정체불명의 사이트에 접속, 당구공을 주문한다. 하지만 2년 후 당구공 모양의 괴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고 임박한 멸망에 민서 가족은 오타쿠 삼촌(송새벽)이 설계한 지하 방공호로 대피한다. 그리고 7년 후, 엄청나게 밝은 광채에 홀려 민서(배두나)는 용감하게 지상으로 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은근히 SF영화가 꾸준히 나온다. <예스터데이>, <세기말> 등등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런 영화들을 전부 챙겨봤던 것도 아닌데 왜 <인류멸망보고서>를 보고 우리나라 SF 영화의 한계가 팍 느껴졌을까? 내가 느끼는 우리나라 SF 영화의 한계란 대체 뭐지? 자본의 한계? 상상력의 한계? 스토리텔링의 한계? ... 이 모든 한계를 담고 있는 듯한 영화. 




이 영화는 우선 옴니버스식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영화 <멋진 신세계>, 세 번째 영화 <Happy Birthday>는 임필성 감독이, 그리고 두 번째 <천상의 피조물>은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비주얼이 가장 훌륭한 건 역시 김지운 감독의 작품.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길에 이른다는, 러프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고급스러운 플롯의 영화이다. 미래 시대의 절의 구조, 주거시설, 기후변화를 고려하여 만들어졌다는 승려의 복장 등 세트와 미술 작업이 꼼꼼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내용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고자 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용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간의 자만심은 이미 기존의 SF영화들에서 숱하게 다루어진 소재라는 점에서 좀 진부하다. 모든 디테일한 설정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 설정이 그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루함만을 유발한다는 게 함정. 로봇 회사인 UR의 사장으로 출연하는 송영창과 로봇 수리공 김강우, 그리고 로봇 인명(목소리 연기는 박해일이 했다는)이 벌이는 '종교'와 '신'과 '인간의 온전함'에 대한 토론은 받아 적으면 훌륭한 철학 텍스트가 되겠으나... 영화 대사로 나열되기에는 좀 벅찬 감이 없지 않았다는. 법당에서 고차원적인 대사가 오가는 장면에서 한적한 극장 구석에서는 곤히 잠든 아저씨 관객의 숨소리가 들려오더라. ;; 

하지만 생각해 볼 지점은 던져준다. 아주 오랜 옛날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인간들을 신(하나님)이 벌했던 것과, 인간의 고유 영역인 '사고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로봇을 처단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란 존재의 자유 의지를 허락한 '신'과 로봇의 자유 의지를 허락하지 않는 인간 간에는 여전히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결국 인간은 신도 따라가지 못하고 로봇을 끌어안지도 못 하고 그 사이에서 인간 고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자멸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 생각을 조금만 더 발전시키면 시나리오 하나 나올 듯.) 마지막 장면 김강우는 버려진 강아지 로봇을 주워다 수리하면서 자신의 팔에 심겨진 칩을 꺼내 강아지에게 이식한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갈빗대를 꺼내어 이브를 만든 아담이나(물론 아담 몰래 그렇게 한 건 하나님이지만) 태초에 '빛'을 만든 하나님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존재를 창조한다는 행위 자체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무언갈 만드냐고? 외로우니까. 심심하니까. 내 곁에 누군가 있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주체는 피조물들에게 '동정심'과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만든 인간이 나에게 도전하고, 여친이나 애완견이 내게 대들어서 화가 나서 그들을 없애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창조자의 감정의 흐름을 정리해 본다면 '심심함' -> 필요성에 의한 창조 (재미, 욕구 충족) -> 만족감 -> 분노 (자존심 상함 혹은 괘씸함) -> 후회나 자책감, 자성, 반성 등..  뭐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아, 그러고 보니 신이고 인간이고 다 참 유치하네. 

결국은 모든 것이 '욕망'의 문제인 것이다. 고기를 끊임없이 삼키고 끈적하게 키스하는 <멋진 신세계>의 남녀 주인공의 모습, 엄마 아빠가 도륙을 당한 판국에도 화장실에 숨어들어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누나의 배설욕과 고장난 강아지 로봇을 고치기 위해 새벽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천상의 피조물> 속 소녀(조윤희)의 이기적인 행동까지... 인간이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들은 언제나 제 3자를 불쾌하게, 혹은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면이 있다.


이 스틸 한 장만 보고도 시나리오 몇 편 나올 것 같아.  

음.. 어쩌다 (간만에) 리뷰가 또 산으로...ㅡ.ㅡ;; 다시 리뷰로. 

 <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공통적으로 발상은 좋았으나 스토리가 없는 소품으로 느껴졌다. 탐욕스럽게 먹을 것을 좇지만 밖으로 배출하는 것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인간들의 무성의함이 결국 인류 멸망을 가져오게 된다는 발상도 좋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당구공이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에 의해 괴행성이 되어 지구로 돌진해 와서 문명이 박살난다는 상상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영화 자체에 힘이 없다는 게 문제. 아..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나라 SF의 문제가 아니라 '옴니버스'라는 포맷이 가진 한계, 아니 특징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재밌었던 건 영화에 짬짬이 등장하는 깨알같은 카메오와 단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90분 토론에 등장한 봉준호 감독과 윤제문. 그들의 쇼가 나오는 스튜디오 시퀀스는 정말이지 시니컬하면서도 통쾌하고 신나게 웃겼다. 아... 차라리 이 영화가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했더라면 더 애정어린 눈으로 보았을텐데... 암튼 <멋진 신세계>의 90분 토론과 <해피 버스데이>에서 지구상의 마지막 뉴스를 방송하는 스튜디오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살린 듯 하다. 내용은 없어도 재기발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게 나의 총평이랄 수 있겠는데 영화라는 게 꼭 내용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좋은 측면에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내게 좋은 영화로 기억될 예정이라는.

음... 생각해 보니 좋은데?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로봇 '인명'의 표정이 그야말로 예술임. 

좀비로 변한 류승범. 다시 볼수록 정말 돈 많이 든 영화였구나.. ㅠㅠ 

 어맛, 고준희 옷 예뻐라~ <건축학개론> 같은 (무난한) 역할보단 <해피 버스데이>의 단역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 고준희.


각성하는 '로봇' 나오는 영화 
 


아이,로봇 (2004)

I, Robot 
8.9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출연
윌 스미스, 브리짓 모나한, 알란 터딕, 제임스 크롬웰, 브루스 그린우드
정보
액션, 미스터리, 스릴러, SF | 미국 | 110 분 | 2004-07-29

로봇을 더 이상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건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8.2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케어 둘리아, 개리 록우드, 윌리암 실베스터, 다니엘 리치터, 레오나르드 로시터
정보
SF, 어드벤처 | 영국, 미국 | 139 분 | -

정말 로봇이 이 정도 수준 된다면... 공포스러운 게 당연하겠지.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을까봐 무섭다면, 컨트롤할 자신이 없다면 만들지 않으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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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한비광 2012/04/29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들렀습니다...그나마 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있는 영화평을 보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모든 영화가 재미있을 필요도 없고 다수를 위한 영화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천상의 피조물에서 마지막 장면...전 로봇의 대사와 연관성을 생각했습니다...인간은 태어날때부터 해탈해 있다..오히려 기계화되어가는 인간의 씁쓸한 모습...그걸 로봇이 오히려 위로하려고 했던건 아닐지...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5/03 0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간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을 왜 자꾸만 환경을 탓하고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욕심내는지... 그것을 꾸짖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만든 로봇이라는 설정이 아이러니하죠. ㅎㅎ

  2. BlogIcon 한비광 2012/04/29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더 멋진 신세계에서는 단지 특정한 병을 예로 든게 아닌 식생활과 정부의 아니한 대처로 인해 후순환 되어가는 식생활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통찰하여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음식쓰레기에 포함된 플라스틱이나 종이류, 그걸 먹은 소, 다시 더러운 도축과정을 보여주며 마지막에 탐욕스럽게 먹고있는 인간...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5/03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쓰레기가 돌고 돌아 다시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정말 끔찍했어요. 광우병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병이겠죠.
      암튼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전해준 영화들이었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

 

<배틀쉽>

감독 : 피터 버그
출연 : 테일러 키취, 리한나, 브룩클린 데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바다에서 시작된다!

전 세계 해군들이 한데 모여 훈련하는 림팩 다국적 해상 훈련. 해상 합동 훈련 첫날,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정체불명의 물체가 발견되고 쉐인 함장(리암 니슨)은 수색팀을 파견한다.

괴물체에 접근한 하퍼 대위(테일러 키취)가 몸체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엄청난 충격과 함께 괴물체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거대한 장벽을 구축한다. 레이더도 통하지 않고, 부딪히는 순간 모든 걸 파괴시키는 엄청난 위력의 장벽을 시작으로 지구를 향한 대규모 선재 공격을 감행하는 외계의 존재들!

목적 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의 엄청난 공격에 평화롭던 지구는 순식간에 초토화 되기 시작하고, 이들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육해공을 넘나드는 전 세계 연합군의 합동 작전이 펼쳐지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존재와 전 세계 다국적 연합 군함의 전면전이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시작된다!

 

진부함의 끝. 그런데 왠지 싫지 않아... ;;

<아마겟돈> 이후로 무수히 쏟아져 나온, 중고등학생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잇는 최신작!
정도면 이 영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구가 될 듯.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과 고립된 채 맞서 싸우는 주인공. 그 주인공이 사회로부터 별종 취급을 당하던 괴짜였으나 위기 속에서 용맹함과 저돌적인 똘끼가 진가를 발휘하여 결국 인류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는... 그냥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엄청나게 진부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꽤 볼 만 했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 하나. 지치지 않고 이런 영화를 찍어내는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확인하는 의미 정도라고나 할까. 스케일과 정교한 CG 만큼은 입을 벌리고 볼 만 하지만 스토리고 캐릭터고 다 집어 던지고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영화의 뚝심이 감탄스러울 정도. 영화에서 줄창 이어지는 스펙터클과 비주얼보다도 영화 초반에 남자 주인공인 '알렉스'(테일러 키취)가 '샘'(브룩클린 데커)을 보고 반해 치킨 브리토를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10분 정도가 오히려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피터 버그 감독의 데뷔작이 <베리 배드 씽>, 주요작품이 <핸콕>이었다는 걸 알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그냥 이 분은 블록버스터보다는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액션 코미디를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싶더라는.



'제 3의 적' 앞에서는 화해만이 살 길

태평양은 과거에 일본과 미국이 세계대전에서 피터지게 싸웠던 곳. 영화에서도 림팩 해상훈련에 참가한 미군, 일본군 대표로서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알렉스와 나가타(아사노 타다노부)는 서로에게 적대심을 갖는다. 미국은 일본이 얍삽하고 치밀하다고 비꼬고 일본은 미국이 융통성없고 동양문화에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 3의 적(외계인)이 나타났을 땐 한 때 적이었던 그들이 서로 화해하고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내게 된다는 영화의 주요 골자를 보며 내부 단합을 다지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입이라는 설정만큼 유용하고 간편한 게 없구나 싶었다. 마치 요즘 드라마 <더킹투하츠>에서 남한과 북한이 'M'이라는 다국적 군사복합체 회사를 이끄는 싸이코(윤제문)의 공격에 맞서 힘을 합쳐 싸우듯이. 

그러나 태평양 연합군을 위협하는 외계인들 치고는 그 존재감이 너무 미약했다는 것도 좀 아쉽다. 물론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최첨단 무기들은 등장하지만 외계인이라는 생명체 자체에 대한 비주얼적 상상력은 빈약 그 자체였는데 <아메리칸 싸이코>에서 크리스천 베일 같은 싸이코 패스 한 명이 주는 공포보다도 외계인 십 수명이 갖는 존재감이 미미하더란 것. 외계인이 극단적으로 악해 보이거나 카리스마가 없으니 긴장감이 확 떨어질 수 밖에. <디스트릭트9> 이후로 더이상 영화 속에서 정말 쇼킹한 (생김새의) 외계인을 만나보기란 어려워 진 듯. 외계물체가 내는 주파수 높은 소음이나 <우주전쟁>에서 문어발 우주선이 내던 금속성 사운드도 식상하고 언제나 지구인보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도 좀 김이 샌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돈이 아깝진 않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시나리오고 캐릭터고 다 팽개쳐도 그 정도 스펙터클이면 영화 본 보람이 없진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결말도 뻔하고 새로울 것 하나도 없고 기대도 안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영화를 볼 땐 꼭 두 시간 동안 온 몸에 힘 빡 주고 보게 되더라는. 그리고 한국 영화 관객으로서 그런 영화는 일 년에 한 편쯤은 보고 넘어가 주는 게 당연한 듯 뭐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고나 할까... 허허.

+ 요런 스펙터클. 솔직히 아직까진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잖아. 사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그 이상 기대하는 것도 없고. 

++ '리한나'는 영화에서 자세히 처음 봤는데 엄청 매력있게 생겼네. ;; 이참에 앨범까지 덩달아 찾아 듣고 있다.
반면 남자 주인공인 테일러 키취는 어쩜 그리 매력이 없어!! 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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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감주 (즈라더) 2012/04/15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한나는 본래 가수지요. +_+
    리한나의 대표곡들은 아마 거리를 지나다 한 번쯤 들으셨을 겁니다.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4/15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게요. 가수인 건 알았지만 비슷한 이미지의 여가수들이 많아서 별 관심이 없었거든요 ㅎㅎ 이래서 가수들이 연기를 하고 싶어하나봐요 ㅋ

<이창>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사진 작가인 제프리스는 촬영 도중 다리가 부러져 휠체어에서 꼼짝할 수 없는 처지이다.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그는 자신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뜰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날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한 사람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을 본 그는 이를 모델인 애인 리사와 친구인 형사 도일에게 말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의심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리사와 간호부 스텔라는 그의 지시에 따라 범행의 증거를 찾아 나선다.

발랄함 + 로맨스 + 서스펜스를 한 번에 갖춘 작품.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라고는 깁스를 한 다리 때문에 창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하는 주인공 남자(제프리, 제임스 스튜어트 분)의 작은 아파트와 건너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창문 속의 인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전부. 카메라는 주인공의 방 안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으며 오로지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리사, 그레이스 켈리 분), 가정부가 나누는 대화로 모든 살인사건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관객은 제프리가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건너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행위에 동참하다가 조금씩 수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한 중년남자가 정말 아내를 죽였을까를 궁금해 하다가 종내는 제프리의 여자친구 리사가 건너편 아파트에 주거침입 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그 사이 중년남자가 집으로 돌아올까봐 가슴을 졸이게 된다. 특히 리사가 연행된 이후 어두운 방에 혼자 남겨진 제프리의 방을 향해 다가오는 중년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장면은 이 영화 절정의 서스펜스를 맛볼 수 있는 부분! 

맙소사. 이러한 가슴졸임과 극도의 긴장감을 그야말로 대사빨, 즉 등장인물들의 말빨로만 빚어내는 연출력이라니! 서스펜스의 대가 히치콕의 명성을 다시한번 실감케 한 작품. (여지없이 그는 작품 속에 본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관음증 VS 호기심

이웃을 관찰하는 주인공 제프리의 행동은 오늘날 같으면 범죄로 취급받아 마땅한 행동이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나름대로 이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인 양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외로워 보이는 독신 여성이 자살할까봐 걱정하기도 하고 기르던 개가 죽어 슬퍼하는 부부의 눈물에 안타까워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 아래, 옆으로 이웃해 살고 있지만 서로의 일에 무관심한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이웃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가진 제프리 덕에 묻혀질 뻔 한 살인 사건이 해결되었으니 그 정도 '인간적인' 관음증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도 좋지 않겠느냐... 하는 감독의 메시지로 읽히기도. 바로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것이 요즘 도시 사람들의 생활이란 점을 상기해 본다면 그래도 누군가 나를 관찰해 주고, 위험에 빠졌을 때 경찰에 연락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고마워 해야 할 노릇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좀 서글프면서도 섬찟한 도시 인생. ㅠ

히치콕의 여성 캐릭터의 재발견, '리사'

심각한 살인사건이지만 제프리와 여자친구 리사가 티격태격하거나 가정부의 거침없는 입담을 보는 순간 만큼은 이 영화가 스크루볼 코미디인가 싶기도 할 만큼 대사가 찰지다. 또한 주인공의 끈질긴 집착과 호기심이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도 싶지만 모든 것은 그의 직업이 기자라는 점에서 명분을 얻는다. (빈틈이 없어!)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그를 사랑하는 여자친구 리사의 캐릭터인데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된장녀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남자의 가치관과 관심사에 완벽히 일체되는 경지를 보여주고 만다. 과연 저 여자가 날 위해 삶의 일부분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만)이 특별하다'고 믿는 남성의 우월감과 의구심을 확실하게 해소해 준다는 설정이 꽤 멋지다. 다리를 다쳐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 남성이 몸을 움직이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해, 아니 오히려 그를 넘어서는 여성 특유의 수완과 재치, 상상력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니. 그의 영화를 다 보진 못했지만. 리사는 그의 다른 영화 속에 나오는 금발 여인들과 전혀 다른 여성상인 듯.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쪽 다리에 깁스를 한 남자 친구가 잠든 사이 슬쩍 패션잡지를 꺼내 드는 리사의 모습과 '리사...'라는 가사의 음악이 겹쳐지는 장면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이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했더라면 얼마나 잘 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히치콕은 서스펜스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여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희귀한 감독이 아니었을까... 아, 정말 히치콕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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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 1%의 우정>
감독 : 올리비에르 나카체 / 에릭 토레다노
출연 : 프랑수아 클루제 / 오마 사이

상위 1% 귀족남과 하위 1% 무일푼이 만났다. 2주간의 내기로 시작된 상상초월 특별한 동거 스토리

하루 24시간 내내 돌봐주는 손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전신불구의 상위 1%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어느 날 우연히,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를 만나게 된 그는 거침없이 자유로운 성격의 드리스에게 호기심을 느껴 특별한 내기를 제안한다. 바로 2주 동안 필립의 손발이 되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자신을 간호하며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것. 참을성이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 볼 수 없던 드리스는 오기가 발동해 엉겁결에 내기를 수락한다. 이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극과 극, 두 남자의 예측불허 기막힌 동거가 시작 되는데…

 

비극도 웃게 만드는 빛나는 유머

'장애', '죽음' 등 우리가 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영화 안에서는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내는 것이 가능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상위 1%와 하위 1%의 두 인생이 만나 진심으로 우정을 나누게 되어 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냥 언뜻만 보아도 지금까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두 명의 남자는 자신들의 삶에 나타난 서로의 존재에 호기심을 느끼고 아픔을 치유해 주며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에서 주로 웃음을 주는 것은 흑인으로 그려지는 드리스( )이다. 전신마비에 걸린 남자에게 못된 농담과 장난을 하나 싶지만 그는 필립( )의 말마따나 그를 유일하게 정상인 취급하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글도 잘 모르고 예술은 더더욱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도울 줄 알았던 드리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그의 숨겨진 재능과 심성을 발견하고 세상에 좀더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필립. 제목의 부제에 달린 '1%'란 말은 상류층 1%와 하류층 1%가 만났다는 의미에서 쓰였겠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없는 1%를 채워주는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분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필립의 모습을 본 드리스는 좀더 진지하게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고, 필립은 자신의 장애가 부끄러워 사고 이전의 사진을 펜팔 여성에게 보냈지만 결국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여인의 마음과 마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 영화 속에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은 바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대립이다. 필립과 오페라를 함께 보러 간 드리스가 나무 분장을 한 가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거나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전화 안내 방송 멘트를 흉내내는 등의 가식없는 행동은 '못 배운 티'를 내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경멸하는 부류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우리나라의 몇몇 미성숙한 컨텐츠들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필립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교향악단 앞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는 드리스의 모습은 주변의 모든 점잔빼던 사람들을 춤추게 만든다. 예술에 대한 기호와 엄격함, 자부심이 남다른 프랑스 관객들에게도 가장 큰 카타르시스와 신선함을 안겨준 장면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필립'과 '에브댈'도 지금 각각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의 애버 애프터식 마무리도 가슴 찡하다. 신분의 격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너무나도 다른 태생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 긍정적인 기운과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지를 경쾌하게 그린 영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정심 같은 것도 왠지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언터처블 : 1%의 우정 (2012)

Untouchable 
9.2
감독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톨레다노
출연
프랑수아 클뤼제, 오마르 사이, 앤 르 니, 오드리 플뢰로, 클로틸드 몰레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프랑스 | 112 분 | 2012-03-22

 


한핏줄 영화들 


씨 인사이드 (2007)

The Sea Inside 
8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벨렌 루에다, 롤라 두에냐스, 마벨 리베라, 셀소 부가요
정보
드라마 |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 125 분 | 2007-03-15
다운로드

전신마비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 조금 우울하긴 하지만... 장애인의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끔 한다.

 


버킷리스트: 죽기전에 꼭 하고싶은 것들 (2008)

The Bucket List 
8.9
감독
롭 라이너
출연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션 헤이즈, 비벌리 토드, 롭 모로우
정보
드라마, 코미디 | 미국 | 96 분 | 2008-04-09

신분, 아니 소득차를 뛰어넘은 두 노인네의 우정. '우정'이란 그 어디에서든 '오픈 마인드'만 있다면 성립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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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2012)

The Descendants 
8.1
감독
알렉산더 페인
출연
조지 클루니, 쉐일린 우들리, 아마라 밀러, 주디 그리어, 매튜 릴라드
정보
코미디 | 미국 | 115 분 | 2012-02-16

 

뜻하지 않은 아내의 사고!

그 동안 몰랐던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

잘 나가는 변호사 맷(조지 클루니). 그의 아내가 어느 날 보트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아내의 사고에 절망한 맷은 막내 딸과 함께 기숙사에 있는 큰 딸 알렉산드라(쉐일린 우들리)에게 엄마의 상태를 전하러 가지만, 그간 일에 매달려 가족에게 소홀했던 사이 부쩍 커버린 딸들과의 소통이 법정에서의 변론보다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딸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맷에게 고백하는데…

평온하다고 생각했던 한 남자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딜레마!

그의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누군가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과 절망,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남은 가족들의 적응기를 다룬 영화는 많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남의) 가족에 닥친 슬픔은 멀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일이기도 하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영화 <디센던트> 역시 아내가 살아있었을 때 미처 몰랐던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기존에 '죽음'을 다루었던 영화들과 다른 점은 극중 배경이 바로 '하와이'라는 점이다.

'하.와.이.'. 365일 야자수가 푸르게 우거져 있는 이미지의 휴양지, 모두가 언제나 훌라춤을 추며 요들송을 부르고 보트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은 바닷가가 단박에 떠오르는 섬. 하지만 그 곳에도 생로병사가 존재하고 가족 간의 갈등과 오해가 끊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 살아가고 사건, 사고도 가끔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내의 혼수상태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간 몰랐던 가족 간의 오해와 비밀이 밝혀지면서 맷(조지 클루니)과 딸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가족의 비극을 그리는 데에 그 배경이 '하와이'로 설정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꽃남방을 입고 슬리퍼에 반바지를 걸친 사람들이 등장해 '죽음'과 '불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풋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하와이에도 슬픔이란 것이 있다!'라고 극중 주인공은 주장하지만 그래도 영화에 담긴 하와이라는 대상의 특성들은 관객의 기대를 심하게 흔드는 대신 그 땅의 역사와 그 곳의 주민들, 성향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죽음이란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느냐에 따라 남아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좀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는, 몰랐던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는 긍정적인 기회.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 유쾌해 진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쨌든 남은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다가 바람 피운 사실을 알고 화를 내는가 하면, 커가는 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 하기도 하는 맷의 모습은 가정에서의 위치를 잃어버린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장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그는 솔직하면서도 어른스러운 태도로 위기에 대처해 나간다. 특히 반항적인 큰 딸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듯 싶다가 엄마의 내연남을 찾아가 복수 아닌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딸과 묘하게 협력하게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역시 가족 간에 이해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알렉산더 페인의 유쾌한 연출은 가족이 앞으로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관객을 안심시켜 주는데에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오랜만에 진지한 역할을 벗어난 조지 크루니의 코믹 연기도 볼 만하다. 은발의 꽃중년도 귀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지 클루니의 영화를 보면서 가끔 깨닫곤 한다. ;;

 

 


 

'조지 클루니' 관련글

2010/03/14 - [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다큐멘터리] - [영화] 인 디 에어 (2009, 제이슨 라이트먼)_내 배낭, 무얼로 채워야 하나 

 

 이 영화 보고 나니 생각나는 영화들


아들의 방 (2001)

The Son's Room 
7.8
감독
난니 모레티
출연
난니 모레티, 로라 모란테, 야스민 트린카, 쥬세페 산펠리체, 소피아 비글리아
정보
드라마 | 이탈리아 | 96 분 | 2001-11-02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로를 다독이는 부부의 모습.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Little Miss Sunshine 
8.9
감독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출연
그렉 키니어, 토니 콜렛, 스티브 카렐,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1 분 | 2006-12-21

미스 리틀 선샤인에 출전하는 막내딸을 위해 온 가족이 출동하여 길을 떠나는 골때리는 로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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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개봉: 2012. 3. 22
감독 : 이용주
주연 :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어쩌면…사랑할 수 있을까?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던 스무 살, 건축학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함께 숙제를 하게 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순진한 승민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고백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작은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다시…사랑할 수 있을까? 15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서른 다섯의 건축가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불쑥 나타난 서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달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 함께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 스포일러 주의

아, 폭풍 회춘!


오랜만에 본 멜로 영화. 덕분에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기분에 젖었다. 영화를 보고 극장문을 열고 나오며 영화 속에 등장했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찾아서 다운받아 들었다. 아... 이런 거 보면 참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데 어째 감성만큼은 그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단 말이야...

30대 초중반이라면 이 영화에 더 빠져들 수 있을 듯 하다. 90년대 중반을 수놓았던 전람회, 015B, 마로니에의 노래들과 CD플레이어, 삐삐, 힙합바지, 공중전화, 펜티엄 등등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것들이 첫사랑에 대한 추억과 함께 스크린 안에 고스란히 되살려 지니 보는 것만으로도 회춘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테니. 그리고 '건축'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또한 오묘하게 첫사랑과 맞아 떨어진다. 세월이 지나면 더욱 아련해 지는 첫사랑처럼, 사람이 오래 산 흔적이 남은 낡은 집 위에 또다시 새로운 집을 지어 올리듯 우리는 추억에 추억을 또 쌓아올리며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굳지 않은 수돗가 시멘트 바닥에 남은 여섯 살 서연의 발자국도 벽돌담에 남은 키를 재던 자국도, 승민의 발길질에 찌그러진 쇠문도 그 안에 사람의 모든 기억을 담은 채 사람과 함께 늙어갈 테니까.


함께 나이들어 가는 존재들에 대한 애가(愛歌)

'건축', 그보다 나아가 '공간'이란 개념을 이토록 따뜻하게 보여줬던 영화가 또 있었던가. 영화의 문을 여는 건 서연이 사용했던 오래된, 그러나 따뜻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에서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보기, 가까운 곳으로 여행 떠나보기 등의 과제를 하며 두 주인공 남녀가 가까워 지는 과정은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감정과 추억을 새로 깃들게 한다는 것으로 그려져 무척이나 로맨틱한 은유가 되었다. 또한 한 때 희망했던 '강남'의 아파트가 아닌 바닷가가 내려보이는 고향집을 선택한 서연의 현재도 아버지를 향한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어 따뜻하게 느껴진다.  추억을 함께 쌓았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함께 집을 짓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이지 않은가! 물들의 대화 중에 나타나는 '강남'과 '강북'에 대한 선입견과 환상들, 그리고 서울이라는 낯설고 외로운 공간에서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어린 서연이 '나만의 공간'에 집착하거나 강남을 선망했던 이유도 씁쓸하면서도 충분히 공감 가능한 부분이었다. 


영화는 건축을 말없이 늙어가는 사람처럼 세월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대상으로 의인화한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실제로 승민의 어머니와 서연의 아버지는 각각 그들의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 포기했으나 이제는 늙고 병들거나 외롭게 남겨진, 오래되면 허물고 새로 지어 올려야 하는 유물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승민의 엄마가 스펠이 틀린 게스 티셔츠 입고 있는 부분에서 울컥!할 뻔.) 그 버려진 공간을 딛고 다음 세대들은 그 곳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다. "10년 후 우린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의 답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꽃과 나무는 그저 정성스레 심고 가꾸는 존재들이다. 이렇게 주인공의 부모 세대와 승민과 서연,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집'이라는 공간, 그들이 함께 들었던 노래, 심었던 꽃과 나무 모든 것은 기억과 함께 시간이 흐르는 대로, 어려운 질문은 접어둔 채 순리에 따라 성장하고 나이들어 가는 존재들이다.



보는 재미도 쏠쏠


영화 보는 잔재미들도 알뜰살뜰 챙긴 이 영화, 야무지다. 어린 승민-서연을 연기한 이제훈-수지의 풋풋함, 어른 승민-서연을 연기한 엄태웅-한가인의 적당히 알 것 아는 성인들 간의 대화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고, 승민에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 재수생 친구 '납뜩'이(조정석)의 연기도 꽤 찰지다. 어설프게 공유를 닮았는데 90년대 중반 무스 바르고 힙합바지입은 채 친구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는 연기가 아주 일품. ㅎㅎ 공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영화답게 주인공들이 만나는 카페나 레스토랑, 마지막에 함께 완성한 집도 무척 아름답다.  (한가인이 제주도에 지은 그런 집 욕심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첫사랑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솔직히 나의 첫사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첫사랑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과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명확하지만 그 때 그 감정이 살아있을리 만무한 것을 보면 첫사랑은 그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감정을 한 때 가졌다는 것, 내 작은 역사에도 한때 촉촉하니 홍조를 띠고 설렘에 잠못들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자체가 '첫사랑'에 대한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종류가 아닐까.
영화를 보며 아주 작은 오해 때문에 무너져 버린 그들의 사랑을 보고 안타까운 기분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사랑'이란 건 살아가는 것에 비해 어쩌면 정말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솔직히 말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강남에서 사는 것을 꿈꾸었던 (속물 근성 다분했던) 소녀가 의사와 이혼한 위자료로 대궐같은 집을 짓고 첫사랑까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산다면 그건 좀 너무 하지 않겠나. 

어쨌든 오랜만에 그 시절에 대한 추억도 떠올려보고, 배우와 공간을 보는 재미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영화로 꼽아두어야지.



+ 수지, <드림하이> 때보다 연기가 많이 늘었다. 꽤 오랫동안 '첫사랑 그녀'의 롤모델로 군림할 듯.
++ 한가인, 조금 나이보다 들어보이게끔 분장해서 그랬을까 꽤 아름답게 나이들어 갈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현실 속으로 들어온 올리비아 핫세를 보는 듯한 기분.
+++ 엄태웅, 언제나 여배우들에게 묻혀가는 듯한 역할을 맡는 배우. 하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럽도 불만 없다.
++++ 이제훈, 볼 때마다 느끼지만 박해일을 닮았다. 숫기없는 대학생 연기를 보고 있자니 <국화꽃 향기>가 떠오르더라는.
+++++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이 곡을 사용하기 위해 시대 배경을 그 때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영화
<동감> 시간과 공간, 캠퍼스의 추억 등등..
<번지점프를 하다> 한가인이 매운탕 얘기할 때 이은주가 숟가락 얘기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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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uneywoo.tistory.com BlogIcon 주니우 2012/03/25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화를 보면서 '신씨'님과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크로니클>
개봉 : 2012.3.15
감독 : 조쉬 트랭크
출연 : 데인 드한, 알렉스 러셀, 마이클 B.조던


평범한 고교생 친구 앤드류와 맷, 스티브는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땅굴에서 무언가를 본 이후 그들에게 생긴 작은 변화를 알게 된다.

작은 손짓만으로 물건을 이리 저리 움직이거나, 포크로 찔러도 다치지 않는 등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 어릴 때 한번쯤은 꿈꿔왔던 슈퍼 파워를 갖게 된 이들은 사람들을 놀래키는 장난을 하는 등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에 심취한다. 장난에 장난을 이어가던 중 우발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게 된 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그들의 슈퍼파워는 점점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간다. 그러던 중 앤드류가 이상행동을 보이며 점점 공격적으로 변한다. 특별하지만 위험한 그들의 능력에 도시는 점차 혼란에 휩싸이는데…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청소년) 액션 활극을 보았다. 딱 기대했던 만큼의 명랑 영화.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된 청소년 3명이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와 유대 형성의 과정들이 보여지고 나름대로 현실감도 있었다. 투명 망토를 걸치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남자 초등학생한테 물으면 열에 아홉이 '여탕을 훔쳐보겠다'고 말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충실하게 시나리오에 반영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스파이더맨>처럼 우연히 영웅이 된 소년이 겪는 군중 속의 고독과 정체성에 대한 번민을 깊이 다루지는 않았다. 그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이 갑작스런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비뚤어진 자존감과 증오를 다스리지 못해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조금 스피디하게) 다룰 뿐. 덕분에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주인공 소년의 심리가 점차 악을 향해 가는 과정도 꽤 설득력있게 점진적으로 묘사되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꽤) 사실 각 등장인물의 관계 변화를 진지하게 이끌어 나가기에는 8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다소 짧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감독이 욕심을 과하게 부리지 않은 듯, 영화는 산뜻하게 전개, 클라이막스를 거친다.




이 영화의 모든 스토리는 카메라에 찍히는 장면으로만 보여진다. 자신의 모든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로 한 주인공 소년의 시점 샷으로부터, 그 카메라를 주고 받는 사람들 사이로 시점이 옮겨 다니고 급기야 소년이 카메라를 공중부양 시키는 덕에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불편함 없이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카메라를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배우들의 액션 때문에 실제 십대들의 적나라한 학교생활을 지켜보는 듯한 실제감도 들고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렇듯 인물이 찍는 카메라 영상을 영화의 메인 소스로 활용하여 실제감을 전달하는 기법은 <클로버 필드>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 기타 다른 영화들에서 수없이 변주되어 온 설정이지만 그다지 진부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언제부턴가 실제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의 삶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 가능해 지지 않았던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보기에 좋은 영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악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초능력 인간을 다루는 영화들이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선'보다는 '악'으로 발전하기 쉬운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기도.  


+ 남자 주인공 3명이 모두 듣보잡 배우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 (내가 나이든 탓인걸까..;;)
   그 중에서도 알렉스 역의 데인 드한이란 배우는 에드워드 훨롱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맙소사, 나이 인증..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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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픽션>

개봉 : 2012.02.29
감독 : 전계수
출연 : 하정우, 공효진

“내 과거의 사랑은 비록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아직도 사랑은 유효하다”

 완벽한 여인을 찾아 헤맨 나머지 31살 평생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소설가 구주월(하정우). 그런 그의 앞에 모든 게 완벽한 여인 희진(공효진)이 나타난다. 첫 눈에 그녀의 포로가 되어 버린 주월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희진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주월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희진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내 사랑, 널 위해서라면 폭발하는 화산 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아”

 드디어 시작된 그녀와의 연애!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주월은 끓어오르는 사랑과 넘치는 창작열에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괴상한 취미, 남다른 식성, 인정하기 싫은 과거 등 완벽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희진의 단점이 하나 둘씩 마음에 거슬리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 도대체 내가 몇 번째야?”

 하나부터 열까지 쿨하지 못한 이 남자, 모든 고비를 이겨내고 평생 꿈꿔왔던 연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아~ 재밌었다'로 끝나지 않고 '도대체 이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하고 궁금해지도록 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이 영화가 그런 영화에 속할 텐데 나는 <러브픽션>의 전계수 감독의 전작 <삼거리극장>을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다. (내손을 거쳐 간 몇 안 되는 한국영화 중 한 편이었기 때문에.. 흙.)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오래된 극장에서 오슬오슬 피어 올랐던 <삼거리극장>의 음습한 비주얼은 <러브픽션>의 첫장면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과장된 성우 연기와  더빙 영화 특유의 신음(?)소리, 앤틱한 분위기, 웃기긴 한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모호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러브픽션>은 끝까지 줄곧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소재란 있을 수 없다. 다만 배우와 새로운 캐릭터가 있을 뿐. 그런 의미에서 하정우와 공효진을 커플로 묶어 구경할 수 있게 된 한국 영화 관객은 행복한 존재들이라고 할 밖에.  비록 그들의 연애사는 진부하고 중간에 지루할 뻔 하기까지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방울방울'스러운 영화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건 모두 이 두 배우의 힘과 톡톡 튀는 시나리오 덕분일 게다. 겨털을 기르는 취향을 가진 애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털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난 모자도 '털'모자만 쓰고 만두도 '털'보 만두만 먹고 성격도 '털털'하단 소릴 들어. 게다가 우리집 티비도 디지'털'이야~'라는 멘트를 좔좔 읊어대는 캐릭터 '구주월'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오직 하정우, 소녀 시절 흰 타이즈 입고 참외같은 똥을 쌌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 앞에서 늘어놓는 여자 '이희진'을 소화할 수 있는 여배우는 오직 공효진뿐이라는 걸 감히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어떠한 역할을 맡아도 싱크로율 100%를 보이는 하정우이지만 특히 찌질하고 소심하면서도 순수해서 미워할 수 없는 '남동생' 같은 남자친구 역할이 정말 그에겐 딱 어울린다. 공효진 역시 묘하게 현실감을 주면서 부담감은 줄여주는 외모를 통해 진짜 대충, 힘 안 들이고 하는 것 같은데도 너무 리얼하게 보이도록 연기하는 재주를 지닌 여배우. 이 두 배우와 엽기적인 시나리오 조합이라니, 주목하지 아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연애편지가 이 정도는 되어야 가슴벅찬 리플라이를 기대해 볼 수 있잖겠소!



로맨틱 코미디의 성격은 주인공들이 가진 직업에서 절반은 결정된다. 극중 소설가인 구주월은 베르테르의 '로테'나 단테의 '베아트리체' 같은 여신포스의 뮤즈를 갈망하지만 결국 현실 속에서 겨털을 기르는 엽기녀를 사랑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단순한 고민거리에 그쳤을 번뇌를 소설가인 그는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의 영감, 고민, 환희를 한데 버무려 제 2의 컨텐츠로 발현시킨다. 현재 여자친구와 친구들, 전 여자친구까지 감자탕집 주인으로 등장시키는 그의 소설은 영화 속에서 단순히 웃음을 주는 영화 속 영화같은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가 혹은 예술가들의 일련의 창작활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일부분 드러내보이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 전계수 감독의 실제 사랑 이야기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도 감히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애'라는 행위는 인간에게 실로 다양한 부분에서 다양한 모양새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결국 사랑에 대한 결론은 영화 감독이든 소설가이든 그 누구든 동일하게 내리는 것 같다. 나만의 연인, 내 영혼의 뮤즈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채식주의자가 감자탕이나 삼겹살 같은 것을 먹어야만 하는 것만큼의 용기와 결단력과 희생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 그러나 누구에게든 완벽한 뮤즈란 없으며, 겨털을 기르는 엽기녀일지언정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나의 유일무이한 뮤즈일 뿐이라는. 또한 완벽한 누군가가 내게 '뮤즈'가 되어주길 바라지만 말고 내가 그녀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 위해 역으로 더욱 힘써야 그 사랑이 유지될 수 있다는.... 음... 이런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도 역시 누가 나와서 어떻게 대사를 읊느냐에 따라 달라지나니.. 앞으로도 로맨틱 코미디는 그냥 내용 다 떠나서 배우를 보고 선택하면 되겠다는 다짐만 다시 한번..

사랑이 심드렁해지는 순간, 생각만 해도 슬프..


 + 술자리에서의 아슬아슬한 농담과 유치한 말다툼은 잠시 홍상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도.
 

++지진희도 은근한 사차원 배우 중 한 명.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영화에 저런 역할로 특별출연한 걸까. ㅋ 너무 좋아.

하정우의 찌질남 연기 BEST 3!

1. <멋진 하루> : 이 영화와 <러브픽션> 단 두 편만으로 하정우라는 배우의 퍼즐이 맞춰진다고 하면 오버일까.  
    2009/05/10 - [신씨의 culture 리뷰] - [영화] 멋진 하루 (2008, 이윤기)_아, 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였다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강렬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이웃집 찌질이의 고자질 크리!
    2010/01/19 - [신씨의 culture 리뷰] -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 홍상수)_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면 되는 홍상수 영화

3. <구미호 가족> : 아... 비주얼까지 이 정도면 정말... 난 이 영화 보고 하정우가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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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

개봉 : 2012.02.09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제레미 어바인 / 베네딕트 컴버배치 / 톰 히들스턴

아버지가 사온 ‘조이’를 만난 순간부터 운명처럼 함께 했던 소년 알버트. 그는 ‘조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피를 나눈 형제처럼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지고 ‘조이’는 기마대의 군마로 차출되어 알버트 곁을 떠나게 된다. 혼돈으로 가득한 전장의 한 복판에서도 ‘조이’는 알버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이 희망은 ‘조이’가 전쟁 속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과 웃음을 가져다 준다. 한편, 알버트는 ‘조이’를 찾기 위해 입대를 감행하게 되는데...

초반보다 후반이 별미

영화의 초반, 이 영화는 ET와 같은 비인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교감과 우정을 그린 아동영화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중반 전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동안에는 살짝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는 달랐다. 그의 단 하나의 이름 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이 후회없도록 만들만큼 그의 솜씨는 유려하고 담담해 결국은 내 마음을 (또다시!) 흔들고 말았다.




아군과 적군, 인간과 동물이 따로 없는 전쟁터

요즘 전쟁영화를 보면 이제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테크놀로지의 전시장과 같은 역할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의 참혹함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아 내어 치를 떨 만큼 전율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는 전쟁에 휘말린 가족애를 절절하게 그림과 동시에 전쟁의 허무함을 드러낸 수작이었으며 가장 생생하게 전쟁을 (기술적으로 잘) 묘사한 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되었다. 물론 그 영화는 화려하고 스펙터클했지만 단순한 오락영화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철학을 담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멍청한 발명품이 바로 '전쟁'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영화를 즐겨 만드는 그가 이 번에 선택한 소재는 바로 ''이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전쟁에 인간과 함께 참가하였으며 전장에서 수없이 쓰러져 간 '말'이라는 동물, 즉 '워 호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 영화는 점차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시점에서만 정당성을 주장하는 수단으로 그려지길 거부하는 듯 하다. 전쟁에서는 옳고 그른 이념이 따로 없고 그 안에서 피해자는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는 설정은 얼마 전에 개봉한 강제규 영화 <마이 웨이>에서도 보았다. 그러나 이제 전쟁의 희생양은 인간 뿐이 아니라 동물도 포함된다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조이'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절대 모른다. 그저 주인이 그립고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할 뿐이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비단 동물한테만 있을까. 하지만 전쟁에 동원된 인간은 전쟁터에서 도망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탈영한 어린 독일군 형제는 붙잡혀 총살 당하고 알버트의 고향 친구 '앤드류'는 참호로 퇴각하여 돌아오는 병사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래서 전쟁터를 가로질러 끊임없이 질주하는 조이의 모습은 참호 속에서 웅크린 병사들의 모습과 대조되어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역시 인간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리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잊지 않는다. 전쟁터를 질주하던 조이가 철조망에 갇혀 쓰러졌을 때 관객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인간 고유의 선한 본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군과 독일군에서 한 사람씩 나와 조이를 휘감은 철조망을 끊는 동안 두 사람은 통성명을 하고 고향 이야기를 하고 일을 분담하고 서로의 처지를 묻고 행운을 빌어준다. 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면 이토록 평화로운 사람들이 단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토록 무분별한 전쟁을 벌여야만 하는 것일까. 자갈밭을 가는 조이와 알버트를 응원하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씨와, 비록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살인병기였지만 기적의 말 '조이'를 되찾으라며 돈을 걷어준 병사들의 마음씨가 무어 다를까. 이렇게 인간은 홀로 있을 때엔 한없이 선하지만 거대한 명분 앞에서는 필요에 따라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가.  



'이름 붙인다는 것'의 의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인간이 '이름'에 집착하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소중한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주곤 한다. 조이를 처음 만난 소년 알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거위에게 '해롤드'라 이름을 붙여준 알버트네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에서 조이를 만나 '프랑소와'라 이름붙여 주었던 소녀 에밀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 가문의 구성원들의 성정을 이름으로 평가할 정도로 인간은 어떠한 존재를 기억하는 데에 이름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전장에서 대포를 끄는 조이에게 한 병사가 이름을 붙이자 옆에 있던 장교는 '금방 죽을 것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름은 인간이 상대에게 정을 주고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정을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알버트는 주지의 아들에게 함께 드라이브를 했던 소녀의 이름을 묻고 자신에게 기꺼이 조이를 다시 넘겨준 할아버지에게 손녀의 이름을 묻는다. 아마도 고향 데본의 그 소녀와 조이의 친구였던 에밀리를 알버트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전쟁에 휩쓸리는 동안 조이는 이름을 잃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 말에게는 이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소와'라 불리고 또 다른 어딘가에선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듯이. 하지만 '조이'가 다른 말과 다름을 입증하는 순간은 바로 알버트가 조이를 부를 때 내는 새소리에 반응할 때였다. 이처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즉 인간의 입으로 소리내어 하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행위보다는 소년과 말 사이에 싹튼 교감, 약속, 신뢰, 추억과 같은 것들이 훨씬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용기

이 영화는 또한 '용기'를 재정의한다. 수많은 전쟁에 참여해 표창을 받은 알버트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을 만 하지만 그저 동네 유지에게 무시당하는 절름발이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들인 알버트는 그의 아버지가 용기가 없어 술을 마시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적군을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아버지의 태도가 바로 '용기'라고 말한다. 또한 에밀리의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내려다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날아가는 '용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탈영했던 독일군 형제는 적발되어 총살당하기 직전 '실수였냐'는 물음에 '약속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용기있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철조망에 갇힌 조이를 풀어주기 위해 백기를 흔들며 적진을 향해 걸어간 한 병사였다.
그동안 '용기'는 전쟁터에서 진격할 때 앞장서며 적군을 무찌르는 데 거침이 없으며 후퇴할 줄 모르는 집념을 일컫는 말로 쓰여 왔다. 하지만 <워 호스>에서 말하는 '용기'는 가족을 위해 옳은 선택을 내리고 내 안위가 위협당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신념을 말하고 있다. 점프를 하지 못했던 조이가 탱크를 뛰어 넘어 미친 듯이 달려 갈 때, 그리운 집과 알버트를 향해 질주하는 조이의 모습이 바로 용기있는 행동이요, 임대료를 내기 위해 조이를 길들여 최선을 다해 자갈밭을 갈아내는 알버트의 모습이 바로 용기있는 행동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용기는 거대한 명분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때 절로 발휘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무리

물론 곳곳에서 작위적인 설정과 감상이 이어지는 듯한 감은 없지 않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가 그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안에 '냉소'와 '좌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선한 마음을 갖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드러내놓고 테크놀로지를 자랑하거나 억지 감동을 자아내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전쟁을 겪어내는 한 마리의 동물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전쟁을 보여주고 그 안의 인간들의 모습들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노을이 비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알버트의 가족이 다시 만나 포옹하는 장면은 한없이 동화적인 비주얼의 실루엣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말없이 그저 서로를 안는다. 대사 한 마디 없지만, 또 그들의 해피엔딩은 너무나 평화롭고도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지만 이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상적인 인간사였을 것이다. 바로 그 이상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가족'으로 평화롭게 머무는 세상이다.




+ 어떻게 말을 이 정도로 훈련시켜 영화에 출연시킬 수 있을까.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 뿐만 아니라 애절한 눈빛연기까지 손색없는 연기력을 보여준 '조이'. 동물연기상이 아니라 남우주연상은 거뜬히 받아야 하는데.. ㅋㅋ
 

++ 한 가지 불만은.. 왜 영국, 독일, 프랑스인 모두 영어를 쓰나...;; 아무리 영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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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감주 (즈라더) 2012/02/27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전부 영어쓰는 거야 헐리우드에선 당연한...

  2. jeenee 2012/03/16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베니도 언급해줘. ㅋㅋㅋ

영화 <하울링>
개봉 2012.02.16
감독 : 유하
출연 : 송강호, 이나영
등급 : 15세 관람가

승진 때마다 후배에게 밀리는 강력계 만년 형사 ‘상길(송강호)’. 어느 날 그에게 고과도 낮은 분신 자살 사건과 함께 순찰대 출신의 새파란 신참 여형사 ‘은영(이나영)’까지 파트너로 떠맡겨진다. 상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사를 시작하지만 조사 결과 이는 정교하게 제작된 시한벨트발화장치에 의한 계획된 살인임을 알아낸다. 상길은 승진 욕심에 상부에 보고도 않은 채 독단적인 수사에 나서고 은영은 사체에서 발견된 짐승의 이빨자국에 주목하지만 상길은 은영의 의견을 무시할 뿐이다. 그러던 중 짐승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은영은 지난번과 이번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독 수사를 감행하는 상길과 어쩔 수 없이 상길을 따라야 하는 은영. 마침내 두 사람은 피해자들의 몸에 공통된 이빨자국이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의 것임을 그리고 피해자들이 과거 서로 알던 사이였음을 밝혀 내는데……

* 스포일러 유의

단순히 동물 영화라고 말하기엔
유하 감독님, 나름대로 센세이셔널한 작품세계를 보이시던 분이 갑자기 동물영화라니, 의외다 싶었다. 동물영화라고 하니 <마음이>와 <백구>와 같은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그만큼 동물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취향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물론 이 영화 <하울링>의 주인공은 늑대개다. 그만큼 동물의 연기가 도드라지는 작품이었지만 역시 영화는 인간과 동물이 사회로부터 받는 상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내와 이혼 후 사춘기 아들, 딸을 키우며 승진에서도 자꾸 밀리는 형사 상길(송강호)와 이혼한 남편 이외에 친구나 친척이 없고 직장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은영(이나영)의 만남. 예상대로 이들은 첫만남부터 삐걱거린다. 이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동물의 습격으로 보이는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것. 한방 터뜨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비밀수사를 진행하는 상길과 성희롱과 성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은영은 일에 임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그리고 특유의 여성적 섬세함으로 사건에 접근해 가는 은영 덕분에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늑대개 역시 사람에 의해 상처를 지닌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된 은영과 늑대개가 서로 교감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간지러운 설정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신이 간직한 상처를 극복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헤어진 아내와 남편에 대한 원망, 비뚤어진 채 자라나는 아이들이 부모에 가진 증오, 어른들 손에 '애들장사'에 팔려간 소녀들이 받는 상처, 마음과 몸에 상처입은 딸을 지켜 보아야 하는 아비의 슬픔, 인간의 분노 때문에 잘못 길러진 짐승 등 행복하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누구에겐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주어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딸이며 아빠이거나 친구임에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인정하는 게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씁쓸한 일이 아닐까. 내 딸을 키우기 위해 다른 이의 딸을 팔아넘기는 짓 따위를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 그에 비해 자신에게 모든 마음을 열어준 주인 소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늑대개 '질풍'이 또다시 인간에 의해 희생당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더 아프다.  


송강호보다 이나영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누구나 송강호가 이 영화의 메인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상처받은 등장인물(견 포함)들의 대표격인 '은영'(이나영)이다. 이나영은 남성위주의 조직 사회에서 홀로 싸운 외로운 존재였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노리개가 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홀로 분노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이자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잘못 키워진 한 생명에 동정심을 갖게 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의 완벽한 주인공은 바로 이나영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시종일관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움직이던 이나영은 마지막 홀로 범인들의 아지트를 덮치는 장면에서 모든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 때까지 이나영은 영화 내내 감정을 절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 때의 폭발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의외로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특히나 이나영의 캐스팅이 절묘하다고 느껴졌던 장면은 이나영의 서글서글하면서도 사연이 많아 보이는 그 큰 눈이 늑대개와 기싸움을 벌이는 순간이다. 바로 이 때만큼은 이나영이 정말 눈으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외계인이라도 좋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은 특유의 신비로운 느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누군가의 질문에 대해 유하 감독님의 답변을 들어 보니 사모님께서 이나영을 적극 추천하셨다고. ㅎ

물론 그녀의 연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뒷받침해 주는 송강호가 전해주는 연륜도 만만치 않은.


유하 감독님과의 대화
영화가 끝난 후 유하 감독님과의 문답 시간이 이어졌다. 감독으로서 개봉 이전에 관객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긴장되는 일일까. 배우에 대한, 영화 속 대사에 대한, '늑대개'를 포함한 동물에 대한 느낌과 감상 등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유창하진 않지만 조근조근 진실되게 대답하는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그저 영화를 꾸준히 만드는 이의 우직함이 느껴졌다. 질문을 하면 감독님이 직접 쓴 책과 <하울링>의 원작소설을 선물로 준다기에 많이 망설였지만 역시 부끄러워 그저 다른 분들의 문답을 듣고만 있었다.


오옷! 이 사진 너무 예뻐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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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감독 : 윤종빈
출연 : 최민식, 하정우, 조진웅

 1982년 부산. 해고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은 순찰 중 적발한 히로뽕을 일본으로 밀수출, 마지막으로 한 탕 하기 위해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익현은 탁월한 임기응변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형배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다. 주먹 넘버원 형배와 로비의 신 익현은 함께 힘을 합쳐 부산을 접수하기 시작하고, 두 남자 앞에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하지만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조직의 의리는 금이 가고 넘버원이 되고 싶은 나쁜 놈들 사이의 배신이 시작된다.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한판 승부, 최후에 웃는 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오랜만에 보는 조폭영화. 노태우 정권 당시 슬로건이었던 <범죄와의 전쟁>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조직 간의 암투, 조직원 간의 배신을 뛰어넘어 건달인 듯 아닌 듯 한 시대를 살았던 어느 한 인물, 최익현(최민식)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는 데 온 집중을 다 한다. 넉살과 배짱, 잔머리는 타고 났지만 배포가 크지 못하고 간사해 이리 붙고 저리 붙어 가며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던 최익현(최민식)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구워 삶아 들러 붙어 자신의 살길을 모색할 줄 아는 뛰어난 생존 본능의 소유자. 이 사람이 최씨 집안의 조카뻘이라는 이유로 부산 최고 조직의 보스 형배(하정우)를 동생 삼아 버리고 건달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과정, 그리고 그 후 어떻게 그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는가를 좇는 일대기가 바로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다. 

미워할 수 없는 반달, 최민식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여러모로 단연 최민식이다. 최민식은 얍삽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반건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비리 공무원에 불과했던 최익현이 '반달'(건달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人)이 되는 지점은 바로 자신을 해고한 공무원 상사를 술집에서 만나 술김에 그를 짓이겨 버린 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을 때다. 두려움.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볼 때 그는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곧 썬글라스를 쓰고 각그랜저에서 머리를 빗으며 내려 가오를 잡는 '건달' 흉내를 그럴 듯 하게 내어가기 시작한다. 서빙하는 여자의 가슴을 아무렇지 않게 주무르는 형배를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침을 삼키더니 기어이 식혜를 시켜 먹고는 '살아 있네, 살아 있어!'라며 그를 따라하는 장면, 혹은 형배한테서 버림받은 후 자신을 찾아온 형배의 라이벌 조판오(조진웅)를 보자마자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그의 유치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그는 총알 없는 총으로 주변 사람들을 위협해 가며 가족을 지켜 가는 구슬픈 아버지이기도 하다. 자신은 비록 건달들 빨아먹으며 산 저급한 인생이지만 자식에게는 '잉글리시 이즈 파워'를 외우게 하며 공부시켜 검사로 만든 그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상을 대변하기도 하다. 
그런 최익현을 보며 관객은 욕을 하기보다는 한숨부터 푹 쉬게 될 것이다. 그의 인생에 대한, 그런 인생이 존재하도록 만든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탄스러움이 최익현에 대한 '연민'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험난한 인생이 그래도 의미없지만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또한번 한숨을 쉬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검사가 된 그의 아들이 또 그 아들의 돌잔치를 맞이한 날 그와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검버섯이 피어 이제 나이가 들었음이 역력한 그의 옆얼굴, 후회보다는 자랑스러움, 뿌듯함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은 그가 걸어온 길을 그 아무도 그릇되다고 비난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물론 이 모든 캐릭터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비리 공무원이었다가 건달이었다가 아버지였다가, 그가 연기한 최익현은 80~90년대를 처절하게 살아낸 한 남자의 모든 면을 담은 인물임과 동시에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비장하면서도 굴욕적이고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처럼 악독하고 교활한 모습을 오간다. 최익현의 웃음과 주정, 찌질함, 허세, 곤조 모든 것이 최민식이 그간 보여온 모든 인물들의 집대성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감히 올해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최민식이 휩쓸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예감을 해보게 되기도.)


본 투 비 건달, 하정우

그보다 비중은 작지만 하정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도 만만치 않다.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는 타고난 건달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보스로 '건달은 싸워야 건달'이라는 신조 아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 누구든 잔혹하게 미리 그 싹을 잘라버리는 냉혈한이다. 
그런데 
어째서 하정우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그냥 처음부터 그 인물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걸까. 연쇄살인마든, 바람둥이 검사이든, 돈 떼먹는 찌질한 남친이든, 옌볜 살인무기이든,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이든 그 무엇이든 그냥 하정우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었던 것 같아.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몸짓이나 눈빛 하나하나 모두 가볍지 않으면서도 차가운 건달의 모습을 제대로 살리면서도 '종친이시다'라는 아버지 한 마디에 큰절을 올리는 효심 지극한(!) 아들의 면모를 보이거나 크림빵을 입에 묻혀 가며 먹으면서 자신을 감옥에서 빼줄 유일한 희망인 대부 최익현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준 최익현에게 대뜸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순진한 모습까지 단 하나의 표정으로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가 막힌 연기력의 소유자. 역시 최민식에 밀리지 않는 기싸움을 하기에 하정우만한 배우도 없었겠다 싶다.

이거시 진정한 하간지...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그야말로 '살아있는' 잘 만들어진 느와르 영화.  비정하고 잔혹한 요소는 갱스터무비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들(특히 <좋은 친구들>) 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종친회, 종교, 학연 등으로 얽히고 설키는 인맥에 대한 묘사나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 미국에 대한 선망, 가족주의 등 우리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한국적인 코드와 역사적 사건들이 잘 녹아있어 역시 착착 감기는 맛이 있다. 또한 80년대를 흠뻑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나 패션, 소품 등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영화를 만든 윤종빈 감독은 79년생이던데 88올림픽이 열릴 당시 겨우 7살에 불과했을 나이에 도대체 그 시대에 대한 어떠한 기억이 그토록 생생하게 그 시대를 재현해 내도록 했을까. 역시 스토리텔링이나 연출력은 나이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그리고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말하다 보니 여성들의 비중이 적은 것은 좀 아쉽다만 어쨌든 오랜만에 남자들이 뻑적지근하게 즐길 만한 영화가 나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힛, 귀여워. 저 두 남자!

아!

80년대...;;



+ 생각보다 조진웅 비중이 적어서 아쉬웠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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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byong.com BlogIcon bbyong 2012/02/08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 투 비 건달, 하정우 너무 와닿아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최민식 역시 동감합니다 :-)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2/09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더이상 새로운 스토리가 없다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지요.
      특히 하정우가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어요. +_+ <러브픽션>도 기대중이라는. ㅋ
      댓글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hwanyou.net BlogIcon 환유 2012/02/13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익현의 웃음과 주정, 찌질함, 허세, 곤조 모든 것이 최민식이 그간 보여온 모든 인물들의 집대성 같은 느낌이랄까.

    이 말..정말 왕 공감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표현해 내시다니!!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2/13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핫. 그런가요 ㅋ
      최익현에 몰입이 되면서도 최민식이란 배우가 지닌 아우라가 워낙 커서인지
      그동안 최민식이 연기해 왔던 모든 캐릭터를 모아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ㅋㅋ

댄싱퀸


개봉 : 2012.1.18
감독 : 이석훈
출연 : 황정민 / 엄정화

서울 시장 후보의 아내가 댄싱퀸?!
 “혹시 가수 해 볼 생각 없어요?”
 왕년의 신촌 마돈나 정화 앞에 댄스 가수가 될 일생 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오랜 꿈을 향한 도전의 설렘도 잠시,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는 남편 정민의 폭탄 선언!
 서울 시장 후보의 부인과 화려한 댄싱퀸즈의 리더 사이에서 남편도 모르는 위험천만, 다이나믹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기대했던대로 황정민과 엄정화의 영화였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어리숙한 형사와 당당한 여의사로 나와 티격태격하는 커플을 연기했던 황정민과 엄정화의 연기 호흡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어 한 사람들이 역시 많았던 듯. 두 사람의 실제 이름을 극중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했을 만큼 두 사람의 개성과 캐릭터가 뚜렷하게 살아났고 그만큼 싱크로율 100%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영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친숙함

이 영화는 <내 생애...> 외에도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댄스가수가 꿈인 엄정화가 영화 초반 '신촌 마돈나'로 디스코텍에서 화끈한 무대를 선보인다거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성인돌 '퀸즈'가 화려한 데뷔무대를 갖는 장면이 찡한 감동을 안겨주는 몇몇 순간들이 <미녀는 괴로워>나 <드림걸즈>를, 이후 신촌 골목에서 시위를 하는 운동권 학생들 틈에서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군경에 쫓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써니>를 꼭 닮았다. 전당대회처럼 군중이 모인 틈에서 남녀가 눈물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이야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작품에서 보아왔던 장면이고.(그럼에도 번번이 감동받고 눈물을 짜게 되는 이유를 나는 정말 모르겠다만) 결론은 한국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코드들이 전부다 반영되어 있다는 게 이 영화의 기획 포인트이자 장점.
그러고 보면 그동안 개봉했던 한국 영화 중 춤과 노래를 곁들인 장면이 들어간 영화 치고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냥 화려하기만 한 무대를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여 인간승리의 요소를 더한다는 가정 하에. <미녀는 괴로워>와 <복면달호>가 그랬던 것처럼. 또한 이 땅의 주부들이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때문에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간다는 자기 도전 스토리에 <써니>와 <댄싱퀸>에서처럼 소위 잘나갔던 우리 엄마들의 과거, 즉 80년대를 디스코 음악을 배경으로 버무려 신나게 묘사한다는 설정도 세대 간에 고른 지지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는지 요즘 영화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댄스가수 > 서울시장

더불어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는 엄정화와 황정민이 각자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정확히 두 갈래로 나뉘어 보여진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남편과 (여성)댄스가수에 도전하는 그의 아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도 드라마틱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한 지점에서 이 영화의 과제는 두 사람의 꿈을 균형있게 그려야 한다는 점이었을 터. 그러나 보라. 영화의 제목은 <시장과 (여)가수>가 아니라 <댄싱퀸>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두 사람을 정확히 같은 비중으로 실어내는 것보다 좀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꿈에 그 무게를 싣기로 결정했음을 알리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황정민의 시장되기 스토리는 엄정화의 댄스가수 도전기에 비해 다소 밋밋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황정민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도 확실하고 그가 시장이 되어가는 과정에도 나름대로의 개연성 부여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이 각자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조금 차이가 발견된다. 엄정화가 '신촌 마돈나'라 불리던 20대 초반부터 그녀의 꿈과 재능이 확실하게 증명(!)되었던 것에 비해 황정민은 어린 시절 꿈이 '대통령'이었다는 설정으로 그 출발이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 모두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준 조력자가 있었고 자랑스러운 엄마, 자랑스러운 사위가 되고 싶다는 욕망 또한 동일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엄정화는 자신이 직접 부딪혀 가며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꿈을 이루어 가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것에 비해 황정민은 등떠밀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했다거나 하는 운에 의해 인정받게 된 케이스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황정민이 TV 토론회에 나가 보여준 모습은 성실하고 솔직한 서민 이상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가 육아정책과 서민정책에 대해 관련하여 일장연설을 펼치는 장면이 사뭇 감동적이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나 그 '공감' 이후 실질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라면 그는 아마도 가슴만 뜨거운, 무능한 정치인이 되기 쉬워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당연하게도 꿈을 이룬 엄정화와 여전히 꿈에 매진하는 황정민,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무난하게 마무리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황정민은 시장 이전에 착한 남편, 타인의 꿈을 존중하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엄정화는 남편과 딸에게 인정받는 당당한 댄스 가수가 되었다. 에필로그처럼 등장하는 황정민의 유쾌한 유세 장면은 이후 황정민이 훌륭한 서울 시장이 될 것이라는 암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혹자처럼 실제로 서울시장이 된 황정민과 유명 가수가 된 엄정화의 좌충우돌을 그리는 속편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영화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해 가며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꿈들을 이루어 가는 모습들을 담아냄으로써 일반 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역할에 충실했고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맙소사. 저런 미소의 서울시장 후보가 나온다면 찍지 않고 못 배길 듯.

서울 시장 후보 와이프와 댄스가수를 오가는 완벽 연기는 엄정화가 역시 제격!

+ 겉핥기에 그쳤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치인상을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둔 듯한 캐릭터, 황정민. 
  그의 순박한 미소를 <그저 바라보다가> 이후 또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 황정민, 엄정화도 그렇지만 정성화도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었다는.

+++ 영화의 단점은 바로 신선미 제로라는 것. 그러나 좋은 영화의 척도가 분명 '신선미'는 아니니까. ;; (깨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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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하게 해고된 김경호 교수.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하기에 이른다. 격렬한 몸싸움, 담당판사의 피 묻은 셔츠, 복부 2cm의 자상,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 곧이어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테러’로 규정, 피의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그러나 피의자 김경호가 실제로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하면서,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았던 재판은 난항을 거듭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 엇갈리는 진술! 결정적인 증거 ‘부러진 화살’은 행방이 묘연한데... 비타협 원칙을 고수하며 재판장에게도 독설을 서슴지 않는 김경호의 불같은 성격에 변호사들은 하나둘씩 변론을 포기하지만, 마지막으로 선임된 자칭 ‘양아치 변호사’ 박준의 등장으로 재판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 상식 없는 세상에 원칙으로 맞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혀 슬픈 영화가 아닌데 영화를 보다 문득 눈물이 났다. 타칭 '석궁교수'라 불렸던 주인공 김경호 교수는 평소 유난떨며 정의를 외치던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숨 걸고 삭발하며 권리쟁취를 위해 싸우는 절박한 노동자도 아니었다. 그저 소신대로 원칙대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대의명분과 체면 때문에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학교 측에 의해 생존권을 박탈당했고 그 사실을 묵과한 사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그가 석궁을 택한 것이 떳떳한 방법이었던 것은 아니나 사법부 입장에서도 그 지리하고 굴욕적인 재판들을 이어가면서까지 법과 정의의 이름에 스스로 먹칠하는 과정을 이어갈 만한 일 역시 아니었다. 김교수가 법원에 서게 된 원인과 이유는 달라졌지만 문제의 본질은 같은 것에 있었다. 바로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는 속물 근성과 타협주의를 고발하고자 하는 김교수의 고집과 소신이 세상의 벽에 부딪힌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며 왠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영화 <도가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보이지 않는 결탁과 권력의 남용, 만연한 비양심 때문에 주인공의 원칙에 의거한 소신이 위협받는 장면을 지켜볼 때의 참담함. 그냥 당연한 것을 주장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할 뿐인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함께 눈감을 것을 강요하는 사회의 일면을 마주할 때의 어이없음, 분노.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이런 사건들을 진작에 알고 함께 분노하며 싸우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드는 게 사실이다. 또한 그 어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나 르포 다큐보다도 사건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영화만큼 강력한 매체가 있을까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가 사건의 '방향성'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에 한해서만 그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어디까지나 실화를 소재로 삼은 '허구'이기에. 이 허구 이야기는 잠시 잊혀져 있던 석궁교수의 진실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도록 만들었고 이것이 또 한번 발화되어 '도가니'의 경우처럼 재수사를 이끌어내고 결국 진실을 밝혀낼지 모른다. 그래서 진실은 잠시 밝혀지지 않는 것일 뿐 대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해서 옳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며 대다수가 합의하고 따르기 위해 재정한 '법'이란 것이 그 '법'을 관장하는 이들의 체면 따위 때문에 악용되어서도 안된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으면 좋겠다.

대쪽같은 석궁교수 김경호는 국민배우 안성기라는 칭송이 그 어느 때보다 와 닿았던 캐릭터로 되살아났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어투가 인상적이었던 안성기의 연기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오기가 비단 자신만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필요한 상식을 위해 쓰이도록 노력하는 사람,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집념으로 스스로를 상처입히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는 의로운 사람 김경호를 설득력있게 그려내었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본다면 '꼰대'라고 비아냥댈 만한 젊은 관객들마저 깊은 흡인력으로 이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 것은 그가 배우로서 지닌 아우라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이 영화를 보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은 왠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의 그와 함께 분노하고 그의 도전과 거침없는 언행에 통렬함을 느끼는 묘한 감정이 뒤섞이는 가운데 사법부를 상대로 투쟁했던 주인공은 결국 4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어쩌면 그의 싸움은 이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가끔 현실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체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 결말이 사뭇 기대된다.



이제 왠지 원로감독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정지영 감독의 관록있는 연출이 깊이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꽤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할 말만 하고 법정을 나가버린 김경호 교수의 뒷모습처럼 깔끔한 뒷맛이 마음에 들었던 엔딩까지.


+ 영화에 미안하지만 리뷰에 덧붙여 극장 흉을 좀 봐야겠다. ;;
씨너스 강남이 메가박스에 인수된 후 처음 가 봤다. 영화 상영 시간에 십분 정도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 갔는데 그제서야 입장 시작.. 그로부터 십분 후에 광고 시작, 그러고도 십분이나 광고 상영. 결국 티켓에 찍혀 있는 상영 시간보다 영화를 삼십분이나 늦게 시작하더라. 멀티플렉스이니 십분 정도의 늑장상영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삼십분이나 늦는 경우는 처음 봤네. 상영 시간을 지키는 것도 상식이자 원칙이건만... 시간 사기꾼들. 멀티플렉스의 만행과 횡포에 번번이 질리면서도 오늘 또 가고야 말았네. 다음부턴 꼭 대한극장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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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angn.tistory.com BlogIcon 홀리 2012/01/31 0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두번 보고 실제 재판 녹취록도 읽어보았습니다 김명호교수님 실력있는 수학자셨다는데 거의 20년을 재판하고 이민가고 다시 돌아와 시위하고 했다는게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분을 이해해주는 가족 구명을 함께 생각하는 분들 등.. 의사의 진술도 몹시 이상하던데 설마 의학계도 이상한 일이 있는건 아니겠지 싶기도했고..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근데 흥행할수록 사법계나 음해세력이 가만 안있을것도 같구요 ㅠ.ㅠ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2/02/01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시 영화를 통해 이런 일을 알게 되니 좋은 점도, 부끄러운 점도 많이 발견하게 되네요.
      어쨌든 '도가니'의 경우처럼 영화가 흥행되어 사람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질수록 사건을 재수사하거나 재판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여론이 가장 무서운 법이니까요. ㅎ
      댓글 감사합니다. :)

기쁨의 도시라 불리는 인도 최대의 도시 캘커타. 그러나 그 이면에는 4백만 명이 넘는 절대 극빈자가 지독한 가난과 싸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곳에 맨손과 맨발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인력거꾼 ‘샬림’이 있다. 아내의 병원비, 가족의 생활비를 벌면서 틈틈이 돈을 모으고 있는 샬림의 꿈은 하루 빨리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것.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인샬라’를 마음에 새기며 매일같이 지열 70도의 뜨거운 아스팔트,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를 뚫고 꿈을 향해 맨발로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차도가 보이질 않고, 설상가상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뭄바이로 떠났던 큰 아들은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 스포 주의

극이 시작하자마자 이 영화의 주인공, 아니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매우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늙고 추레한 외모의 이 초로의 인도 남성이 바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극구 카메라를 밀어 내며 자기를 찍지 말라며 화를 낸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후 다큐멘터리는 관객이 던진 이런 물음에 답을 하듯 진행된다.


기쁨의 도시라 불리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맨발로 인력거를 모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샬림'이 바로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샬림은 35년 전 고향을 떠나 캘커타에 와서 인력거를 모는 일을 해서 푼돈을 모아 다달이 집으로 생활비를 부쳐 왔다. 그가 보내준 돈으로 아내는 시골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먹여 키운다. 샬림과 같은 인력거꾼들은 대부분 지독한 가난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흘러 들어온 극빈자층이 대부분이다. 샬림의 큰아들뻘인 '마노즈' 역시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신참 인력거꾼이다. 다큐멘터리는 샬림과 마노즈와 같은 인력거꾼들이 서로를 다독이며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정도 있고 유머도 있다. 또한 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얻는 위안은 이들에게 큰 힘을 준다. 하지만 현실은 인력거를 몰아 버는 수입으로는 고향에 보낼 돈은 커녕, 자신마저 끼니를 거를 때가 허다할 만큼 비참하다. 또한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사고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샬림 역시 적은 돈으로 대식구 살림을 꾸려 가던 아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가난 때문에 가출했던 큰 아들도 병에 걸려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럴 때마다 샬림은 인력거를 내려 놓고 가족들에게 달려 간다. 가난한 그에게 '가족'과 '꿈'은 같은 이름이면서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대상이다. 샬림은 가족을 위해 인력거를 몰았고 가족을 위해 삼륜차를 사고 싶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으나 결국 그 희망은 가족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샬림은 다큐멘터리에서 총 두 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영화의 초반, 제작진에게 카메라를 치워 달라며, 당신들과 같은 외국인 친구들은 필요없다며 화를 내고, 또 영화의 중후반, 자신이 35년 동안 꿈을 위해 노력해 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조짐을 느끼고, 그간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인물이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다큐멘터리의 매체적 딜레마가 등장한다. 인물의 절망하는 순간을 담아야 하는 다큐멘터리의 숙명은 언제나 윤리적 물음에 맞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의 존재로 인해 인물이 더 심하게 받게 될 실질적인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카메라는 결국 샬림의 모습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내었고 덕분에 관객은 샬림이 잠든 가족 옆에서 숨죽여 눈물을 훔치며 제작진에게 제발 카메라를 치워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고야 말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나가 달라며 화내고 애원하는 샬림을 지켜보는 장면은 분명 마음 아프다. 그러나 그 '아픈 마음'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멈칫 하는 순간 제작진이 카메라 안에 등장해 샬림을 안아주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작진이 샬림을 진정시키는 데 쓴 말은 바로 '인샬라',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신의 뜻'은 샬림의 태생적 가난을 가리키는 것인가. 가족의 질병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샬림의 피치못할 선택을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의 불행을 낱낱이 담아 내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나의 '아픈 마음'은 동정심일까, 아니면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은 아닐까.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다큐

극의 초반에서 제작진은 내레이션(이외수)을 통해 '우리는 샬림을 한 사람이 아닌 피사체로 보았던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 어린, 그러나 답이 없고 해결할 의지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샬림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순간까지 지켜본 관객 모두에게 가책을 나누어 지도록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샬림에게 있어) 잔인하다. 관객은 한 사람의 생을 스크린을 통해서 지켜보며 무력하게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참담함을 느끼고 그의 상황에 우리의 현실을 빗대 난 그래도 '다행'이라는 잔인한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샬림의 아내는 여전히 입원 중이고 그의 생계 수단인 인력거는 빈곤의 상징으로 비판받으며 인도 정부에 의해 수년내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샬림과 그의 아내와 큰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신분제와 지주, 소작농 사이의 갈등 때문에 아버지가 학살된 수많은 '마노즈'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캘커타 거리를 오가는 배낭여행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들의 불행을 한낱 구경거리와 교훈과 위안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다큐멘터리가 의의를 가지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을 통해 그들의 불행을 목도한 댓가로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도록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제작진이 고민해야 하는 몫이 아니다. 10년 전에 샬림을 만나 기획과 제작이 시작되었을 이 다큐멘터리는 관객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그 소임을 마쳤다. 물론 그들의 가난과 불행은 감상적으로 포장되었고 관객은 잘못 한 것 없이 샬림의 눈물 앞에서 죄의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반성해 보아야 할 지점은 이 다큐멘터리를 주목하는 이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인 빈부 격차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이국적인 피사체와 풍경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병든 아내의 손을 붙잡은 샬림의 손. 근데 샬림 손금이랑 내 손금이랑 비슷해..ㅜㅜ ㄷㄷ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할 뿐 절대 완벽할 순 없다. 냉소적으로 말해 카메라를 든 사람(제작진)은 그들의 불행을 전시하여 앞으로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샬림의 직업이 인력거꾼인 것처럼 카메라는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샬림의 밑바닥 인생을 비추는 역할을 하였고 관객인 나는 연휴 중 어느 날 영화관 한 구석에 앉아 머나먼 나라의 밑바닥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돈을 주고 관람하였다. 이렇게 카메라는, 그리고 관객은 샬림을 가난에서 구제해 주거나 그의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는 존재해야 한다. 다큐멘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그 존재 이유로 갖는다. 카메라의 도구적 역할은 샬림과 같은 캘커타의 인력거꾼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인도 정부의 모순과 무능을 지적하고 먼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현실을 직시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샬림과 10년 동안 친구였다고 '주장'하는 제작진은 과연 샬림의 불행과 슬픔을 어디까지 공감했을까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고 그들이나 관객의 감정이 단지 가슴아픔 이상의 감상일 수 있었을까 자책할 수도 있고 누구 하나 실질적으로 샬림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인가 자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샬림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앞으로 만들어낼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죄의식을 공유한 관객들이 스스로 변화하길, 그러한 변화가 모여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키길 바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큐멘터의 의의는 관객들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조금씩 생겨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남겨진 것은 이제 카메라가 아닌 관객들의 몫이다. 이것이 이 다큐멘터리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하는 이유이다. 


+  이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은 이외수씨가 맡았다.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투가 그들의 슬픔을 더욱 낭만화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외수'씨가 자체 발산하는 아우라 덕분에 상쇄되는 듯.

++ 샬림의 친구로 만나게 된 마노즈가 제작진의 카메라에 10년 전 찍힌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제작진의 엄청난 자료 수집에 대한 노고와 작품에 대한 열정, 의지가 느껴졌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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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지내는 11살 소년 시릴의 꿈은 잃어버린 자전거와 소식이 끊긴 아빠를 되찾는 것이 다. 어느 날,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도망친 시릴은 자신의 소중한 자전거를 아빠가 팔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게 된다. 아빠를 찾던 시릴을 우연히 만나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미용실 주인 사만다는 시릴에게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아빠를 찾고 싶어하는데…


※ 스포 주의

마나 부서지기 쉬운 나이인가, 열 한 살은. 아빠로부터 버림받고 보육원에 맡겨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꼬마 시릴에게 사만다의 조건없는 애정과 관심은 살아갈 희망이 되었다.

깡마른 소년의 방황기

영화의 처음부터 시릴은 아빠와 자전거에 집착하며 보육원 선생님들에게 대들고 탈출을 시도하는 등 대책없는 꼬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만다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게 된 이후로도 이 소년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그다지 이뻐할 만한 구석이 없는 말썽쟁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사만다의 눈에는 아빠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어찌할 바 모르는 어린 아이로 보였나보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결국은 사만다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범죄에 가담한 시릴은 친구라 믿었던 스티브한테서까지 버림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년의 깨달음은 길게 지속되는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를 지속하는 동안 소년도 관객도 머릿속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밀려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소년과 관객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롱테이크는 길게 길게 이어진다.
결국 사만다에게 돌아와 용서를 구한 시릴은 사만다와 함께 평온하게 자전거를 타는 듯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곧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돈을 뺏기 위해 방망이로 때려 기절시켰던 소년에 의해 나무 위로 쫓겨 올라갔다가 돌에 맞고 떨어진 것이다. 죽은 듯 누워 있다가 일어나 툭툭 털고 사만다의 심부름으로 산 숯을 옆구리에 낀 채 다시 자전거를 굴려 집으로 향하는 시릴의 뒷모습에서 영화는 가만히 멈춘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집으로 향하는 시릴의 뒷모습은 이제 이 소년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동안 참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이제야 소년은 무조건적인 희망과 기대를 접는 대신 가진 것에 감사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모든 것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다. 앞으로 소년은 '괜찮을' 것이다.
눈물이 날 만큼 찡한 장면이다. 



'모성애'가 세상을 구원하리

온전치 못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쉽게 유혹에 빠지고 타락할 수 있는 위험한 사회이다. 그 안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우울함과 절망감에서 구해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살펴 주는 '사랑'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의 눈빛과 행동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 반면 한 달 만에 얼굴을 본 아들에게 '다신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아비의 모습이나 '얘야, 나야?' 하면서 애랑 똑같은 관심을 달라고 칭얼대는 사만다의 남자친구의 성정은 사만다의 마음씨를 결코 닮을 수 없는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만다는 아이가 원하는 바를 위해 아버지가 팔아버린 자전거를 다시 사오고, 아빠를 그리워 하는 아이를 위해 함께 담벼락에 매달려 창문을 두들기고,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자전거를 함께 타고 달려주는 등 현실적인 차원에서 발휘되는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거칠게 밀어내고 상처를 입힌 시릴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 아무 조건 없이 그 용서를 받아 들여 주었다. 거창한 미사여구나 큰 돈이나 과장된 애정표현은 없지만 정말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사만다가 결국 이 세상 모든 불행한 아이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의 상징이 아닐까. 그것의 이름은 바로 '모성애'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아마도 처음인 듯. 곱씹어볼 수록 마음이 짠해지는 영화ㅇ다.  절망 혹은 깨달음 등 소년의 마음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울리는 음악*, 간결한 컷 분할 등의 요소 덕분에 모든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쉬이 잊혀지지 않을 듯.
무엇보다 열 한 살 또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이기도. 너희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가 곁에 한 명쯤은 반드시 있어주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 찾아 보니 소년이 절망의 순간에 부닥칠 때마다 짧고 강렬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일명 <황제>의 2악장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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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마이크가 명예로운 군인이 되길 바랬던 퇴역 군인 행크 디어필드는 참전 후 귀환한 아들이 외출 후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다. 아들이 귀국했다는 소식도 모르고 있던 헌병 수사관 출신 행크는 탈영 처리될 위기에 처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러 직접 군부대로 향한다. 단순한 마약관련 사건으로 아들의 실종을 처리하려는 군수사대를 의심한 행크는 지역 관할 형사인 에밀리 샌더스와 함께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선다. 전직 수사관 출신답게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해 가던 중 아들 마이크와 전쟁에서 함께 했던 전우들을 만난 후 결국 그 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군 당국과 지역 경찰과의 갈등은 심해져 간다. 마침내 아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된 행크는 그 동안 조국에 충성했던 자신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아들의 죽음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간직해온 신념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스포일러 주의


스펙터클이 아닌 현실 속에 남겨진 전쟁의 이면

이라크 전쟁에서 귀환한 아들이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으러 부대로 떠난 행크(토미 리 존스). 아들의 전우들을 만나 보지만 뚜렷한 행방을 아는 이가 없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부터 이 아버지는 죽음의 배후를 밝히기 위해 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는데 진실을 알게 될수록 자신이 고수해 온 가치와 신념이 뒤흔들리게 된다. 이 아버지는 본인이 한때 군인이었으며 두 아들을 직접 전쟁터로 보낸 장본인이다. 이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충성과 헌신은 말로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굳건하고 완고했다. 그러나 그가 전쟁터로 보낸 둘째 아들 마이크는 처참히 살해당했다. 부모와 사이도 좋았고 착했던 아들이었지만 전쟁터에 다녀온 마이크는 입이 거칠고 마약을 하고 스트립 댄서를 모욕하는 폭력적인 군인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붙은 '위생병'이라는 별명도 그가 이라크에서 생포한 포로의 상처를 헤집으며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붙여준 거라고 하니 행크는 더욱 혼란스러워 진다.
이렇게 이 영화는 전쟁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스펙터클이 없다. 다만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에 다가서는 아버지의 절망스러운 눈만 있을 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미국'

아들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한 후 집으로 돌아온 행크가 한 일은 아들이 보내온 낡은 성조기를 거꾸로 매다는 일이었다. 국기를 거꾸로 다는 것은 국제적 조난 신호를 뜻하는 것이라며 국기를 바로 걸어야 한다고 훈수를 두었던 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성조기를 거꾸로 매달고 깃대를 테잎으로 감아 봉해 버린다. 그에게 영예와 자긍심, 충성의 대상이었던 조국인 미국은 그의 선량했던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 괴물로 만들었으며 적이 아닌 또다른 동료 괴물들에 의해 살해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뿐만 아니라 정작 자신은 왜 아들이 애타게 아버지 도움이 필요하다며 울먹였을 때 그것을 외면했던가. 그렇다. 자신 역시 아들이 죽도록 내버려 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믿어온 모든 가치가 한낱 살인기계를 양성하는 국가관에 복무해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조국 미국이 다른 나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국기를 거꾸로 닮으로써 스스로 공표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모든 기성세대가 자신의 아들들을 괴물 제조공장으로 보내 버리는 가해자이자 공범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정신적 조난 상태에 빠진 미국을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전쟁만큼 무서운 '방관'과 '방조'

여기서 '방조죄'는 행크와 함께 수사에 나선 여형사 에밀리(샤를리즈 테론)에게도 성립된다. 그녀는 한 여인이 자신의 애완견을 때려 죽인 남편을 신고하러 경찰서로 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일이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 그녀를 돌려 보낸다. 결국 남편에 의해 욕조에서 익사당한 그 여인의 손을 부여잡은 에밀리도 자신이 왜 그때 그 여인을 모른 척 했을까 뼈아프게 뉘우쳤을 것이다. (이 때 아내를 살해한 그 남편 역시 참전 용사였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 역시 '전쟁'이 만들어 낸 하나의 '괴물'이었다.)
결국 폭력과 범죄와 전쟁은 모두 '악'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키우는 것은 바로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방조'와 '방관', '외면'이다. 폴 해기스는 이렇게 전쟁을 둘러싼 모든 혐의에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물론 미국내에는 여전히 직장내 여성차별이라든가 인종차별과 같은 고질적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사회 구성원 간의 이성과 화해로 극복 가능한 반면 전쟁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폴 해기스 감독은 스스로 병들어 가고 있는 미국에게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고백을 이 영화 한 편에 덤덤하면서도 충분히 고통스럽게 담아내었다.



'엘라의 계곡'

'엘라의 계곡'을 제목으로 택한 이유는 뭘까. 괴물을 이기려면 피하지 말고 맞서야 한다는 다윗 이야기의 교훈은 결국 괴물에게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군인 정신의 논리를 미화한 전설이 아닌가. 행크의 아들 마이크는 바로 그 군인 정신이 낳은 부작용 때문에 살해되었건만. 그렇다면 이 제목은 이제부터라도 인류는 역사 안에 놓인 수많은 '엘라의 계곡'을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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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성훈 2012/01/21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대충 영화 봐서 이해를 잘 못했는데 여기와서 이해 제대로 했습니다

카렌은 연극배우 체닝의 공연이 있던 어느 날 저녁, 무대 뒤편에서 이브란 여인을 만난다. 이브는 카렌에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자신이 마고 체닝의 열렬한 팬임을 말한다. 이브의 용모와 진솔한 태도에 감명받은 카렌은 이브를 분장실로 데리고 들어가고 이브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털어놓는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지만 전쟁터에서 전사한 이야기 등등. <이브의 모든 것>은 연극무대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배우와 광적인 팬, 비평가와 작가의 관계를 냉소적인 시선에서 고찰한 작품. 작품상을 비롯해 6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성성을 소재로 한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브레이브 하트>나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작품들이 떠오른다. 이런 영화들의 장르가 대부분 액션, 사극의 형태를 지니고 주로 아드레날린 분비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여성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에린 브로코비치>, <여자, 정혜>가 떠오르는데 이러한 여성성이 부각되는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 멜로, 드라마 장르가 주를 이루지만 <이브의 모든 것>처럼 드라마가 강조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심리스릴러의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있다.

<이브의 모든 것>


<이브의 모든 것>은 장동건과 채림이 나온 동명 드라마로 국내에서는 더 유명하겠지만 자그마치 62년 전에 나온 영화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영세하게 제작한 티가 역력하고 연극적인 대사, 몸짓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마치 우리 영화 <별들의 고향>을 보는 느낌이 현재 미국인들이 이 영화를 보는 느낌과 같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인상적이다. 특히 마고 체닝 역의 베티 데이비스는 술에 항상 취한 듯 희미하게 치켜뜬 눈과 허스키한 목소리로 정신착란에 가까운 히스테리를 부리는 대여배우의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또한 타이틀롤인 '이브' 역을 맡은 앤 벡스터 역시 단정하고 품위있는 용모에서 숨겨진 야망을 드러내는 '이브'역에 무척 잘 어울렸다. 아, 다시 한번 거론하지만  연극적인 대사와 과장된 지문 등으로 반감된 현실감 여부는 제외하고 보았을 때. 


'여성'과 '여배우'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연극계의 스타와 스타 지망생들, 그리고 연출가와 각본가, 기자 사이의 쇼비즈니스의 일면을 그리고 있지만 드라마 자체의 핵심은 항상 타인(정확히 말하면 남성들)으로부터 주목을 받길 원하는 여성들의 본능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고 체닝 캐릭터의 경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여배우들의 등장에 긴장하게 되고 자신을 여배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남자친구의 오랜 구애에도 결혼을 수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불안해 하고 신경질적이며 어린 여성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녀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하는 이브를 보며 경계를 하는 모습이나 리허설 시간에 늦어 동료들에게 핀잔을 듣고 난 후 무대에 혼자 남아 흐느끼는 장면은 그녀가 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비단 그녀가 여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젊음을 유지하고 싶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든 여성들의 심리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측면에서 여배우는 특정한 직업이기 이전에 여성이 지닌 모든 장단점을 극대화, 상품화(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하는 집약된 존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성으로서의 자존심, 사랑받고 싶은 욕구, 화려함에 대한 동경 그 모든 것이 그동안 우리가 매체를 통해 보아온 '여배우'의 모습 안에 다 들어 있기에. 쨌든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마고 체닝의 차가운 마음이 녹기 시작한 것은 역시 가장 힘든 순간에 자신 옆을 지켜 주는 사람(빌)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그러고 난 후 그녀는 놀랄 만큼 유연해 지고 안정감을 찾으며 삶의 연륜을 갑자기 발휘하여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부터 이브의 캐릭터 역시 반전되는데 그간 숨겨 놓았던 발톱을 드러 내며 스타가 되기 위해 거짓말과 협박을 일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 두 명의 캐릭터는 완벽하게 뒤바뀌게 된다. 물론 그 모든 과정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길게 늘어지는 듯 하면서도 버릴 것이 없는 연극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력이다. 특히 마고 체닝이 친구 캐런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나 빌이 마고에게 화를 내듯 타이르는 장면에서 둘이 나누는 대사는 문학책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처럼 깊고 유려한 표현들의 연속이다.


다혈질 마고 채닝 & 빌

독사 커플 에디슨 & 이브



영화는 결과적으로 이브의 성공으로 보이는 것처럼 마무리된다. 하지만 반전은 또다시 마련되어 있는데 바로 또다른 '이브'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브의 호텔방에 몰래 숨어든 여고생이 이브의 화려한 가운을 걸쳐 보고 트로피를 든채 자기 도취된 듯 거울 앞에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해 보이는 듯한 모습은 섬찟하다. 이 장면은 '이제는 행복하다'며 웃는 마고 체닝의 모습과 심하게 대비된다. 결국 여성의 자기 욕구란 나이가 많이 들어 가는 동안 스스로를 피폐해 지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숱한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비로소 수그러들어 겸손함을 되찾게 되는 것인가. 가장 젊을 때 젊음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싶어할 순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자존감을 지키는 여성, 여배우로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과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게 될수록 점점 더 외로워 져 간다는 것을 영화 속 마고 체닝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언젠가 이브가 깨닫고 또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그 여고생이 느끼게 될.  

같은 해(1950년)에 <선셋 대로>에서도 나이든 여배우의 히스테리컬한 모습이 영화 소재로 쓰인 바 있다. 당시에 '여배우'라는 존재와 '할리우드 사람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동경이 영화 소재로도 적절했을 듯. 물론 대중의 동경과 할리우드 실체 간의 괴리 덕분에 영화 장르는 대부분 '느와르', '스릴러'가 되어 버렸지만.


+ 신인 여배우 '클라우디아' 역으로 단역 출연한 마릴린 먼로의 앳된 모습 (노란 드레스)


++ 마고 체닝 역의 베티 데이비스. 이 언니도 당시 카리스마 쩌는 대여배우였을 듯.

+++ 다음 도전할 고전 영화는 프랭크 카프라의 <멋진 인생>(1946년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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