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신씨의 culture 리뷰/책'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2/05/12 [책] 빛의 제국 (2005, 김영하) : 분열, 망각, 소외, 욕망.. 오늘을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2. 2012/04/25 [책] 언니의 비밀 통장 : 20대 여성 재테크 입문 도서로 딱!
  3. 2012/04/02 [책] 달려라, 아비 (김애란) : 삶보다는 덜 질척이는 아버지에 대한 상상, 긍정의 힘 (2)
  4. 2012/03/10 [책] 카라마조프가 형제 下 (1880,도스토예프스키) : '아버지'와 '신'에 대한 기대를 버려라
  5. 2011/12/15 [책] 카라마조프가 형제 上 (1880, 도스토예프스키)_신보다 인간에게 신뢰와 애정을!
  6. 2011/10/09 [책] 마담 블루 (박태옥)_예술과 권력, 그 사이에 선 여'성'의 이야기
  7. 2011/04/19 [책] 위험한 호기심 (2008, 알렉스 보즈)_은근히 엿보고 싶은 기상천외한 실험실 (2)
  8. 2011/03/22 [책] 블로그 파워 (2005, 김익현)_블로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2)
  9. 2011/02/18 [책] 기획력 (2008, 나카타니 아키히로)_1%가 부족한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기획 마인드'
  10. 2011/01/25 [책] 걸 (2006, 오쿠다 히데오)_'걸'을 허하는 사회를 꿈꾸며 (2)
  11. 2010/12/13 [책]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 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크로포드)_손 노동의 가치 (4)
  12. 2010/09/07 [시] 입 속의 검은 잎 (1989, 기형도)_그 시대 청춘의 절망을 읽는다
  13. 2010/07/17 [책] 광장/구운몽 (1976, 최인훈)_치열했던 시대, 비극도 낭만으로 바꾸는 문학의 힘
  14. 2010/07/07 [책] 관촌수필 (1977, 이문구)_진정한 소설의 맛
  15. 2010/06/25 [책] 랄랄라 하우스 (2005, 김영하)_노래하다 막히면 그저 랄랄라~ 하듯이 (4)
  16. 2010/06/19 [책] 아랑은 왜 (2001, 김영하)_소설쓰는 재미에 동참해 보기
  17. 2010/06/17 [책] 굴비낚시 (2000, 김영하)_현실을 소금에 절여 말린 영화에 관한 썰 (2)
  18. 2010/06/16 [책] 호출 (1997, 김영하)_김영하 탐닉 중
  19. 2010/06/13 [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1999,김영하)_현대사회 침묵 속의 판타지
  20. 2010/06/07 [책] 검은 꽃 (2003, 김영하)_국가, 종교, 사랑... 모든 것이 그들을 외면했던 시대 (2)

 

 

<빛의 제국> 김영하 | 문학동네

 

얼마 전 중구 주민도서관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빌리고 나서 요즘 하루에 50페이지씩 책읽기 실천중이다. 그 첫 번째 도전작은 애정하는 작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었는데 역시나 후회없는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빛의 제국>

 

이 책은 남한에서 가정을 꾸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한 남파 간첩 김기영이 귀환 명령을 받은 날,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한 일가족의 구성원이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일터와 학교로 향하고 그 사이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정치를 하는 과정들을 집요하게 관찰하게 된다. 십 수년을 함께 산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 그들 각자의 삶의 테두리에는 서로의 영향력이 거의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파 간첩이라는 사실을 십 수년 동안 가족 모르게 살아온 가장 김기영을 비롯하여, 딸과 불과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어린 청년과 변태적 사랑을 나누는 장마리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또래보다 조숙하고 영리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다질 줄 아는, 세상을 한참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어린 딸 현미까지 이 세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되 각기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 날(김기영이 송환 명령을 받은) 하루는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영역 안에서 허용되는 한 가장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남파간첩 김기영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념에 대한 물음들, 그리고 추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방황하고, 스무 살 어린 애인과 일탈을 즐기던 장마리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가족과 단짝친구를 벗어나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현미에게 공통적으로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간 유지해 왔던 일상성이 파괴됨과 동시에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되는 시간, 그 단 하루.

 

일가족의 단 하루

 

 다음 날 아침은 전 날 아침과 똑같이 밝아 왔고 다시 이 구성원은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이들 각자의 세상은 분명 어제와 달라졌고 앞으로도 다르게 굴러갈 것이다. 김기영을 억지로 가정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작 장마리는 딸의 안전을 위해 남편에게 혼자 북으로 돌아가라고 선언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영에게 등을 돌린 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작가적 삶을 꿈꾸었던 '소지'도 마찬가지였다. 마리도 소지도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환멸을 느끼지만 막상 그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함과 지루할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면 마음이 바뀌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남한에서 이십년 가까이 살아온 남파간첩 기영도 마찬가지였다. 무료할지언정 반복되는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사회의 밖에 나와 그 곳을 바라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비록 한 공간 안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갈지언정 그래도 온전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선사해 주는지, 그 하루 동안 기영, 마리, 현미는 모두 깨달았을 것이다. 소지가 말하는 드라마틱한 삶처럼 처절하지 않게 치열하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 그 안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빛의 제국에서는 빛이 사라지기 전엔 아무도 그게 빛인지, 그 빛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채 사는 것이다. 

 

김영하

 

바로 전철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채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것만 같은 작가, 김영하.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각 인물이 입고 먹고 마시고 타고 지나치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친근해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김기영과 소지가 함께 추억하는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되살려 허무하게 추억하고 그 위에 세워진 <빛의 제국> 안에서 누추한 욕망과 환상을 품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새 변해가며 무섭게 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그리고 그 무언가에 무뎌져 간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빛의 제국>인 줄로만 알고 태어나 현미와 같은 세대를 사는 이들은 결코 알기 힘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언니의 비밀 통장> 허서윤/신찬옥 저 | 21세기 북스

재테크 서적을 읽어본 게 얼마만인지... 물론 이 책은 20대 여성, 사회 초년생을 타겟으로 씌여진 책이다. 하지만 뭐 그냥 내가 몇 년 어리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 하긴, 일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요즘 나오는 자기 계발서들 보면 '스토리텔링'은 기본인 듯. 최대한 친근하게, 몰입이 되도록 써 줘야 좀 공감이 되고 읽게 되는 듯. 물론 무리수가 있는 설정도 곳곳에 있지만 덕분에 킥킥대며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골자는 남자친구의 공무원 공부 뒷바라지를 하다가 결국 공무원이 되신 남친한테 대차게 차인 여자 주인공이(ㅡ.ㅡ;;) 인생의 목표를 잃고 헤매다가 문득 재테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 직장 여선배한테서 재테크 노하우를 사사받게 된다는 이야기. 

물론 출발은 다른 재테크 책에서 모두 하는 흔한 조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가만히 내 사정에 대입시켜 생각해 보면, 내게도 점검, 재정비해야 할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얼마 전 잔고를 싹 비워 버린 CMA 계좌도 다시 살려서 열심히 써야겠고, 펀드도 다시 부어야겠고, ETF인지 하는 투자상품도 좀더 관심을 갖고 공부해 봐야겠다는 다짐을!! 

재테크란 것이 그렇더라. 일 잘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서, 별도의 시간투자와 공부가 필요하더란 말이다. 하긴, 살다 보니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한 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법칙이더라만은. 항상 배우고 갈고 닦고 해야만 하는 것들이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다. 내 스스로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을 수록 더욱 그렇다. 

어쨌든 이 책의 타겟도 아니었고, 정말로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꽤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밑줄까지 쳐가며 열심히 읽었으니...그러나 책 뒤에 부록으로 나와 있는 천 만 원 만들기, 일 억 만들기 등의 고급 과정에까지 다다르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려나... ㅠㅠ 

이십대 여성, 여대생이 읽기에 딱 좋은 재테크 도서. 재테크의 'ㅈ'도 몰라도, 공부하는 셈 치고 시작 단계에 파고 들어볼 만 하겠더라는. 무엇보다 재테크의 가장 큰 자산은 '돈'이 아니라 ' 나 자신'이라니, 이런 시크한 도시녀자들에게 혹할 만한 이야기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남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거, 그리고 나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건 '재력'이라는 사실, 냉정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휴... 아무리 쉬운 재테크 도서라도 후딱 읽고서 그냥 덮어버리고 나면 아무 소용 없다. 책에 나와 있는 건 전부 실천해 봐야 나중에 하나라도 남는다! 나이 헛먹었다는 게 아니라 그냥 회춘했다 생각하고 ㅠㅠ CMA통장부터 다시 만들어야지. 어엉~ㅠㅠ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달려라, 아비>
김애란 (2005)

김애란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그녀가 2003년부터 쓴 단편들을 모은 <달려라 아비>이다. 제목에 '아비'가 들어간 것처럼 이 책에는 김애란이 상상하는 아버지의 종류들이 열거되어 있다. 소설 속의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대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부모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결격사유들이 있다. 주인공들은 그런 부모를 증오하거나 피해의식을 갖거나 부지불식간에 닮아 가거나 부정하거나 잊어버리곤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묘사되는 많은 아버지들도 그다지 이상적인 아버지상은 아니다. 그리고 부정하기에 그들은 주인공의 기억과 현재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차마 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김애란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긍정하고 용서한다. 예를 들어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멈추지 않고 지구 위를 달리게 하거나 새로운 가족과 함께 떠나 보내거나 어린 시절과 상관없는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거나 하는 식이다.

분명 '과거'란 현재의 나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의 집합이다. 좋지 않은 과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무심하게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재포장하고, 현재의 시간들을 악착같이 살아내는 정신력과 생활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현대 사회의 부품처럼 살아갈지언정, 무모하게 큰 변화를 꿈꾸었다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부품의 필요성과 가치를 상상해 내고 스스로 위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물론 내 양 옆과 앞뒤에 나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살아가고 있다. <노크하지 않는 방>에서처럼 나 역시 나와 비슷한 경제수준을 지닌 사람들을 머리 위에 이고 발 밑에 두고 살아가고 있고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처럼 나 역시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들러 다른 사람들이 사가는 물건들을 사간다. 내가 남들과 다르지 못하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니다. 그러나 내 상상에 의해 나의 아버지와 나의 지구,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내 형제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희극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건 누구에 의해서건 '마이너스'가 될 순 없다는 것. 이것이 김애란이 보여주는 '상상력과 긍정의 힘'이다.

남루한 미시사에 대한 묘사,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 주변인물들에 대한 무심한 태도, 그러나 생물학적 관계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 쌩뚱맞은 사연들끼리의 불협화음. 이런 것들이 김애란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요소들인 듯.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김애란의 단편들보다도 책 맨 뒤에 붙어 있는 소설가 김동식의 '해설'이 더 재밌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마치 호기로운 신인작가가 마음껏 부려놓은 캔버스를 액자에 끼워 전시회에 가지런히 걸어 둔 것 같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그의 해설을 읽고 나니 내가 흘려 보낸 김애란의 문장들을 다시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졌다. 방만하면서도 찐득하게 흐르는 듯한 문체는 박민규나 마르케스를, 끊임없이 언급하는 우주에 대한 애정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가끔 찐따같이 느껴질 정도의 세심함은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문장들을.

 

아버지는 누운 채 불빛을 세례받는다. 펑! 펑! 활짝 피는 불꽃들이 아름답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거대한 성기에서 나온 불꽃들이 민들레씨처럼 밤하늘로 퍼져나갔을 때, 아버지의 반짝이는 씨앗들이 고독한 우주로 멀리멀리 방사(放射)되었을 때,
"바로 그때 네가 태어난 거다."
면도를 마친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거짓말"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中

 


달려라 아비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창비 | 2005-11-2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출생과 성장의 과정과 관련된 모티브를 주로 다룬 김애란의 첫 소...
가격비교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4/09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카라마조프가 형제 下> 
도스토예프스키 저 | 박호진 역 | 혜원출판사


주인공들과 그 중심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미움의 끈적끈적한 인간극. 사상적·종교적 문제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색을 장대한 규모와 긴밀한 구성으로 집대성한 작품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걸작이다. 물욕과 음탕의 상징인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그의 아들들 드미르티, 이반, 알료샤를 중심으로 펼치는 예술적인 가치와 심오한 사상성을 그려내고 있다. <하 권> 


카라마조프의 막내 알료샤가 현실 세계로 나와 겪는 사건들이 하권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 책이 친부 살해를 다룬 대작이라는 사실을 진작에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허물이 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 전개에 대한 박진감과 소설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법정 싸움을 지켜보는 흥미진진함까지 내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띄엄띄엄 읽느라 소설을 한 눈에 꿰뚫는 감동을 얻는 데에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역시 한 위대한 작가의 말년 그의 평생을 통해 다듬어진 문학과 철학의 가치관이 집대성된 작품 안에 내재된 깊이를 맛보기엔 충분했다. 


신과 인간, 모두 완벽한 존재는 없다

이 작품 속에서 카라마조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여인들이 벌이는 행각들은 신의 방탕한 자녀들의 한바탕 소동극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선 카라마조프의 큰 아들 미챠를 벌하기 위해 신을 대신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미욱하기 짝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모두 한편으로는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신의 고뇌와 번민을 반영하는 캐릭터들처럼 보인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에 의해 살해 당하는 카라마조프를 비롯해 그의 성정을 물려받은 아들들이 각기 어떠한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의 상권에서부터 누누히 언급되어 있지만 하권에 이르러서는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과 가치관의 갈등이 한층 극대화되고 있다.

피조물에 살해당한 창조주
 

비극은 아들들의 아버지인 카라마조프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들들에게 살해 당한 그의 마지막 모습도 그렇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비극은 카라마조프가 아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만든 모든 상황이 아닐까. 법정에서는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 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따져 보면 카라마조프는 모든 아들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큰 아들 미챠는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살인 계획을 담은 편지를 작성했으며 둘째 아들 이반은 그의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다른 형제에게 내비쳤다. 그를 실제로 살해한 것은 카라마조프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 그 역시 아버지로부터 정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버림받은 자식이었다. 결국 그의 아들들 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공모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인간상, 막내 알료샤
 

물론 이 진흙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인물도 있기는 있다. 바로 카라마조프의 막내 아들 알료샤이다. 그는 시종일관 모든 인물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거나 오해를 풀고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시도하는, 마치 평화 사절단과 같은 역할을 자처한다. 직업적으로도 방금 수도원에서 나온,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으로 그야말로 신과 인간 사이에서 객관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알료샤야말로 작가가 지정해 놓은 모든 인간이 이루어야 할 '선'의 극치를 이룬 인물의 모범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어딜 가나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고 악한 이들을 교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선악은 알료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로부터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까지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재판장과 배심원들이 내린 판결(그의 형 미챠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형을 언도받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챠의 탈주 계획에 동조함으로써 형의 결백함을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한 알료샤의 선함을 향한 의식의 여정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완성된다. 그는 한 소년의 무덤가에서 감동적인 마지막 연설을 남기는데 무덤에 묻힌 그 소년은 가난난 아버지가 남들로부터 비웃음과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해 돌멩이를 집어드는 용기를 발휘했고,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또 그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았던 아이였다. 또한 그 소년의 아버지 역시 아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자신이 생명을 주었던 존재의 죽음을 얼마나 사람이 아파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아버지'란 이름에 충실한 자였다. 알료샤가 바라본 인간의 모습이란, 이성적인 인간들 간의 관계란, 이상적인 부자 간의 관계,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인간 세상 역시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비천할지언정 인간이란, 가족이란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를 작가는 알료샤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알료샤는 소년의 무덤가에서, 그 소년의 순수한 또래 친구들에게서 인류의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선언한다. '악인'이 아니라 우리는 '선한'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끈 모든 존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해서 카라마조프(아버지 표도르)는 비록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비난받아 마땅한 이름의 대명사였지만 반성과 후회를 통한 깨달음을 실천으로 바꾸는 노력이 있은 후 카라마조프(알료샤)는 칭송해 마땅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때 알료샤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감격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작가가 기대하는 러시아의 미래였을 것이다. 인간 존재에 가치와 가능성은 그렇게 획득되어 가는 것이며 인간은, 러시아는, 또 인류는 그렇게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말이다.   

뚝심을 요하는 소설

소설의 양이 방대하고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외우기 어려워 도중에 읽기를 중단하면 이후 다시 그 감정을 이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긴박한 법정에서의 논쟁과 변론이 이어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빨려들듯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미챠의 잘못을 주장하는 검사와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의 논고 대결 안에 이 소설 속에 등장한 모든 팩트와 상징성이 압축되어 있어 이 책의 구도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는 것 같은 작가 특유의 장황한 문체의 행간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철학이 담겨 있었는지도 뒤늦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몰락한 인간성의 대표자 격인 아버지, 카라마조프의 생애는 비극으로 마감되었으며 그의 죽음을 심정적으로 공모했던 아들들은 장차 남은 모든 생애를 통한 반성과 희생에 바치며 살아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며 소설은 끝이 났다. 내가 해석한, 작가가 관객에게 남긴 주문은 다음과 같다. 무책임한 아들을을 방치한 신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따르고 그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선함'을 실천하고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결하게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알료샤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연설처럼 말이다.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카라마조프가 형제 -상 - 8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혜원출판사

헌책방에서 상, 하권을 함께 구입한지 반 년. 드디어 上권을 다 읽었다. ㅠㅠ


간단하게 말하자면 카라마조프라는 성을 가진 남자들의 이야기. 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어머니가 다른 삼형제들이 성인이 된 이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가족력(?)을 확인해 가는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특히 삼형제 중 막내인 알료샤의 성장드라마에 가까울 정도로 그의 언행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며칠만 지나도 기억할 수가 없어서 초반에는 이름을 적으면서 보았지만 그것도 보다보니 러시아식 이름을 외우는데 적응이 되는지 나중에는 조금 편해졌다. ;; 장황하고 길고 추상적인 문장들을 따라 가는 것도 처음엔 어렵지만 보다 보면 리듬을 타게 되는 듯 술술 읽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처음에는 꽤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한번 집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데 그의 인물들이 가끔 내보이는 엉뚱한 면이나 사차원을 넘나드는 대사,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작가의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진중하거나 상식적이거나 일반적이거나 어른스러운 인물은 이 책에서 조시마 장로 단 한 사람의 캐릭터에 집약되어 있으며 나머지 이름을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례하거나 난잡한 취향을 지녔거나 집단 광기에 휘말릴 정도로 어리석거나 염치가 없거나 교활하거나 유아적이거나 나약하거나 탐욕스럽다.
그러나 그렇게 부족한 성향이 바로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카라마조프가 남자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사의 집약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남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막내아들 알료샤만이 점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긍정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특히 신의 문제,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문제는 말이야. 이런 모든 문제는 삼차원의 이해력밖에 지니지 못한 인간의 두뇌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문제야. 그래서 난 신을 인정해.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신의 예지와 그 목적까지도 인정해. 생명의 질서와 의미도 믿고 있으며, 우리들이 언젠가는 하나로 융합된다는 영원한 조화도 또한 믿고 있지. 그리고 우주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언제나 신과 함께 있는 그 말씀, 또 동시에 신 자신이기도 한 그 말씀, 그 하느님 자신의 직접적인 기도의 말씀을 믿어. 또 그와 비슷한 모든 무한한 것을 믿지...

... 그러나 놀라진 말아라. 나는 최후의 결론으로서는 이 신의 세계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나는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 바로 이 신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또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는 거야.

...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어린애같이 이런 걸 믿고 있지... 언젠가는 인간의 모든 고뇌와 아픔도 아물게 될 것이고, .... 그리하여 마침내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채워 주고 모든 원한을 풀어 주고 인간의 모든 악행과 그들이 서로 흘리게 했던 피를 보상해 주고,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잡다한 일을 용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런 문제에 관해 변호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 336~337p.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의 존재를 인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 현상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듯. 사실 논리와 과학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 이 지구상에서 인간들이 갖가지의 형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상 자체는 신의 존재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도 오묘한 것이 맞다. 그러한 측면에서 신의 존재를 믿는 것과 그 세계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는 작가의 주장이 어떤 의미인지 왠지 알 것도 같다. '믿는다는 것'과 '인정하는 것'의 차이. 무조건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 합리성에 대해 고민할 줄 아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라면 나도 기꺼이 "신의 존재를 믿되 신의 세계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겠다. 신은 인간이 원할 때마다 원하는 장소에 있어주지 않으며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며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사랑하거나 벌을 내리지 않으니까.


신<인간, 교회<민중

신의 세계를 부정하는 만큼 작가가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내고 있는 대상은 바로 '민중'이다. 교회나 국가와 같은 울타리가 굳게 쳐진 단체가 아닌 부족하고 상처 투성이인 인간 하나하나의 존재를 믿고 사랑하는 것만이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上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도사였던 카라마조프가의 막내 알렉산드로비치 카라마조프(알료샤)는 일생의 롤모델이던 조시마 장로의 죽음을 겪으며 신의 존재에 대해 묻고 또 묻고 고뇌한다. 그를 자꾸만 현실로 끌어내리는 난봉꾼 아버지와 사고뭉치 형님들 사이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인류애를 지키기 위해, 신의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 고민하던 그는 급기야 신의 존재를 몸으로 깨닫고 수도원을 떠나 속세를 향하게 된다. 아마도 알료샤가 신의 품을 떠나 혼잡한 인간 사회에서 겪는 혼란과 가치관에 대한 고민이 下권의 중심 내용이 될 듯. 

한 권에 500페이지가 넘으니 이렇게라도 리뷰를 쓰고 넘어가야 下권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으니 일단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

저작자 표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담 블루 - 8점
박태옥 지음/자음과모음
다종다양한 곳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글쓰기를 해왔던 글쟁이 박태옥의 첫 장편소설.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철저하게 계산된 이미지로 대중들을 현혹하면서 한편으로는, 돈과 권력을 무기로 도덕과 윤리와 양심을 짓밟으면서 화수분처럼 무한으로 샘솟는 욕망을 채워가는 이기적이고 더러운 권력층들의 모습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주인공 제이는 정재계의 권력층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며 대중과 언론, 권력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미술계의 스타다. 부유층만을 위해 새롭게 설계된 가연시 향서마을에 새롭게 들어설 종합미술타운인 Artra의 기획실장 겸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KS그룹의 최선윤의 신임과 역시 대기업 총수인 양 회장의 도움으로 Artra의 대개관에 맞춰 갤러리 The-J를 열게 된다.

그러나 개관 이틀 전에 돌연 문자로 해임 통보를 받는다. 더불어 모든 방송, 강의까지도 해고당한 그녀. 그런 그녀 주위로 의문의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신 곁에는 늘 그녀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화려해 보이는 삶 속에 숨겨진 더럽고 치졸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음모와 권력의 암투, 예술을 '돈'의 논리로 사고팔려는 부조리한 현실, '욕망'에 따라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지만 몰락할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삶을 묵직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진지하게 소설 속의 세계를 만들어낸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다시 독서를 열심히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눈에 들어온 소설이다. '마담 블루'. 신비로움과 우울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여자. 표지가 주는 느낌부터 서늘하면서 서글프다.

'주인공 제이는 정재계의 권력층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며 대중과 언론, 권력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미술계의 스타다.'

책 소개글을 조금만 보더라도 누구나 몇 년 전 국내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를 떠올릴 것이다. 미술 천재, 독한 여자, 팜므 파탈, 거짓말쟁이, 치열한 삶을 사는 여자. 그 어떤 말로도 그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항변하듯 낸 책을 읽고 싶지는 않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이해받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충분할 것 같다. 윤리와 도덕을 판단하기 이전에 살아남아야 했던, 자신을 살게 했던 최소한의 보람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앞으로 나아갔던 여자. 책에서는 '제이'로 그려진 여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 뿐 아니라 '욕망'에 휘둘리는 우리 모두가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씁쓸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거대한 시스템. 예술가로서 지니고 있는 특별한 예민함이 빚어낸 드라마와 비극.  권력과 성을 탐하는 인간들의 면면을 지켜보는 건 소설을 통해서도 충분하다. 이 이야기가 픽션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니까. 

짧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이야기를 빠르게 이끌고 가고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각 캐릭터에 대한 배경과 그로부터 배어 나오는 심리 상태와 욕망의 형체가 자세하게 그려져 몰입이 쉽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빠져들거나 공감할 여지는 여간해서는 주지 않는다. 어차피 현실에서도 사건은 인간의 감정이 추슬러 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 사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이지만 그 사건들이 가리키는 바는 한결같이 명확하다. '추악함', '처절함'. 외면하고 싶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든, 가진 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욕망이 대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만큼 소설이 주는 충격은 가슴 아프다.
가연휴먼시티나 Artra, The-J 등 가상의 공간에 대한 묘사와 상징도 생생해서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민정이 살해당했던 화장실에 벽에 그려져 있는 '눈'처럼, 인간이 향유와 쾌락을 위해 만들어 놓은 '예술'이라는 대상은 인간이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 인간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몰아 넣는 듯 하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이자 동시에 쾌락과 욕망에 빠지게도 하는 그 무엇. 특히 예술이 특정 권력을 위해 작용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인간에게는 비극이다. 그 비극을 교묘하게 기회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는 것도 결국은 비극.

어렵다. 소설 속 팩트는 명확하지만 여전히 그 이야기가 보여주고 있는 이 사회의 한 단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 기준은 모호하다. 내가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읽은 탓도 있는 듯.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위험한 호기심 - 6점
알렉스 보즈 지음, 김명주 옮김/한겨레출판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심리실험을 다뤘다. 인류의 모든 역사적 발전은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공인된’ 호기심은 때때로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시도한다.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심리실험으로 심리실험의 대상은 동물부터 인간, 어린아이까지 뻗어 있다.


인간의 호기심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요건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위험한 호기심>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실험 케이스들이 소개되어 있는 책. 바퀴벌레가 경주를 할 때 동료 바퀴벌레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 기록이 더 좋게 나온다거나, 코끼리에게 대량의 LSD를 투여하여 반응을 살펴본다든가, 코카콜라 매니아들이 상표가 없는 상태에서 펩시와 코크를 구별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거나, 인간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 위해 사형수의 몸무게를 재는 따위의 정도는 양반이다. 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경악하게 되는 실험들을 나열한다. 살아있는 개의 등 위에 다른 개의 상반신을 이어 붙인다거나 훈련받은 쥐의 뇌를 갈아 다른 쥐에 이식하는 등의, 흡사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방불케 하는 실험들 이야기가 나올 땐 역겹기도 하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위험한 시도들과 우연히 얻어진 실험 결과들이 문명과 과학을 발전시켜 왔을 거라는 점이다. 물론 이 책만 봐서는 이 정신 오락가락하는 것 같은 '돌+아이'들이 전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 않지만 결국 이런 괴짜들이 세상을 조금씩 움직여 가는 건 아닐까. 지은이는 이러한 엽기적인 실험을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위트 섞인 마무리 멘트를 적절하게 집어 넣음으로써 독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을 돕는다. 너무 진지하게는 말고 가볍게 읽을 만 한 책이다. 지은이가 조심스레 예측하듯 어쩌면 이 책은 화장실에서 몰입해서 읽기에 딱 적당한 주제와 길이를 지니고 있는지도.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실험 결과는 모차르트가 태교 음악으로 정말 좋은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레이디 가가를 듣겠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hwanyou.net BlogIcon 환유 2011/04/24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이디 가가. ^^ 멋진 발상입니다!
    위험한 호기심은 결국 세상을 발전시키는 나름의 원동력도 되었다는 점에서-
    그런 내용들만 모아놓은 이 책이 궁금해집니다. ^^ 읽어봐야겠어요.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1/04/25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ㅋ 책에 모아놓은 사례들은 이게 과연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나, 이 사람들을 과학자라고 불러도 되나 좀 헷갈릴 정도로 엉뚱하긴 하지만 ㅋ
      심심할 때 한 챕터씩 읽어보기엔 좋을 거 같아요. ㅎ

블로그 파워 - 8점
김익현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이라크 전쟁 상황을 생중계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살림팍스로부터 시작해, 전설적인 블로그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블로그에 열광하는 이유, 다른 매체와의 연결성, 블로그 파워의 세 가지 요소(링크, 긴 꼬리, 신뢰와 평판)를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한 뒤, 한국형 블로그와 오픈소스 저널리즘을 다룬다.

이 책을 득템했던 게 아마도 2008년이나 2009년 문화캠프에서였던 거 같은데 이제서야 읽었다. 더군다나 책이 나온 건 2005년, 요즘처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5년 전 책을 읽는다는 건 참 무의미한 듯도 하지만 어쨌든 다 읽었으니 몇 자 적어야겠다.

다시 얘기하지만 이 책을 당시에, 그러니까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대폭발하던 시점에 읽었더라면 훨씬 유익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블로그의 어원부터 블로그가 유행하게 된 계기, 유명한 블로거들, 블로거가 사회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예측 등등, 우리가 궁금해 하는 '블로그가 당최 뭔데?'라는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대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넘어간 듯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블로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버릴 수 없는 나로서는 블로그만이 가지고 있는 역할과 비전을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하듯 블로그가 저널리즘으로서 기능하길 기대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경험적 지식을 기록하고 소소한 정보나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하버마스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건 어쩌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더 어울리는 듯. 트위터는 실시간 뉴스가 오가는 그 신속성 측면에서, 페이스북은 하나의 이슈에 대해 간단한 생각을 주고 받거나 친구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면 블로그는 개인의 고유한 사유와 경험과 관심사와 히스토리가 기록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전부터 그래왔듯, 앞으로도 오랫동안 독보적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요즘 블로그에 글을 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자동 피드하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페이스북에 동시 업로드를 하는 식인데 이웃,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의 정도는 전자 같은 경우(블로그/트위터/페이스북 3중 업로드)은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 후자의 경우(트위터/페이스북 2중 업로드)는 페이스북>트위터 순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각 매체를 각각 어떻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조금 하다 보니 알겠더라. 그냥 나 편한대로 쓰면 되겠더라는 것. ㅡㅡ;; 그러나 블로그 고유의 가치를 믿고 특별히 애정한다는 것만은 여전하다는. (직업과는 무관한 개인 성향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blog.ibk.co.kr BlogIcon SMART_IBK 2011/03/22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업을 왜 그렇게 강조하시나요? ㅋ

기획력 - 6점
나카타니 아키히로 지음, 이선희 옮김/웅진윙스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의 저자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제안하는 기획 노하우. 기획의 초심을 상기시켜줄 노하우를 60가지로 집약하여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짧은 분량의 에세이형식으로 작은 사이즈의 판형으로 제작되었다.

일반인에게도 친근한 사례를 들어가며 생활 속에서 바로 실천하여 기획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는 방법, 제1의 고객인 상사에게 내 기획을 설득시키는 방법, 회의에만 매여 정작 기획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못했을 때의 대안 등을 제시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필요하지만 왠지 자신이 없는 분야에 도전해야 할 때 자기계발서에 의존하곤 한다. 하지만 책을 사려고 하더라도 시중에 쏟아져 나와 있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자기계발서 앞에서 종종 좌절하기 일쑤. 여기 '기획력'이라는 멋들어진 제목의 책이 있다. 당신이 회사의 기획팀에 있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한 분야에서의 기획 능력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선택하지 말길 바란다. 이 책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분야의 어른 사람들에게 있으면 좋을 '기획 마인드',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당신'이 좀더 노력해서 찾아낼 수 있는 일상 속 1%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전문 혹은 관심 분야와 크게  관계 없다는 말이다.)

기획은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니다. 크지 않게, 강하지 않게, 자극적이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획기적이고 뛰어난 기획이라 하더라도 계속할 수 없는 기획은 일류기획이 아니다. - 55쪽 중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에 자체 형광펜(!)이 그어져 있어 중요한 글귀만 찾아서 보기에 용이하다. 절대 어렵지 않은, 그러나 알고 있다면 반드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당신을 매사에 조금은 더 꼼꼼한 시선을 던질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사실 '기획력'이 별 게 아니라 책의 홍보 카피처럼 당신을 완성시켜 줄 나머지 1%를 스스로 발견하는 능력 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다 읽고 나면 후... 나도 기획력 좀 발휘해 볼까~ 하는 안도감과 용기가 생기는 반면, 왠지 모를 배신감도 동시에 밀려드는 묘한 책.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 8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북스토리

'걸그룹'의 '걸'이 아니다

책의 제목인 '걸(girl)'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일본에서 일종의 은어처럼 쓰고 있는 '걸'은 소녀처럼 살고 싶은 성인 여성을 뜻하고 이 책의 '걸'은 그 중에서도 '오피스 걸'을 칭한다. 밥벌이를 위해 회사에 다니고 남자 어른들과 함께 일을 하지만 나이먹고 싶지 않은, 아니면 어떻게 가치있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세대, 성별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걸'이다. 말하자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만 처묵처묵하고 있는 나도 '걸'이라고 볼 수 있겠지. 뭐 일부러 이렇게 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세월과 주변 환경에 등떠밀려 살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타의에 의한 '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렇게 말하면 굴욕이려나.


'걸'끼리는 통한다

한 집단 내 여러 명의 '걸'은 서로의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나이트에서 무안 당한 서른 두 살의 '걸'이 분홍색 레이스 치마를 입고 총각들과 노닥거리는 서른 여덟 살의 '걸'을 보고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마음 먹기도 하고,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걸'이 동갑내기 독신녀 '걸'과 어느 순간 마음이 통해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결국 '걸'끼리는 나이가 적든 많든, 독신이든 애엄마든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모두 동등한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책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모든 '걸'은 나를 포함한 여성들 모두의 이상이나 박탈감, 꿈, 야망, 오기, 질투, 이해심, 욕구 등을 나누어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모든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결말은 '걸'의 '성장'이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 '걸'들의 세상에 '남자'란 그야말로 부차적인 존재들로 그려진다는 것. '걸'들 중 그 누구도 남자한테 기댈 생각을 하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경쟁이나 스트레스, 아주 가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물론 현실적으로 '걸'들이 하는 고민들 중 '남자' 아니, '남편'과 '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진 않겠지만 어찌됐든 그런 것 말고도 우리에겐 고민거리와 즐길거리가 너무너무 많은 것이다.

'걸'에겐 이게 다가 아니다

남자에 대한 고민이 포함된, 더욱 다양한 '걸'들의 고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야마모토 후미오의 '내 나이 서른 한 살'을 보면 된다. 이렇게 표현하면 웃기지만 남자들이 끼어들 때 걸들의 세계는 조금 더 엽기적이고 청승맞게 변한다.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
가만 보니 요즘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렇게 세대와 성별 간에 구분되는 고민과 가치관 등을 그린 자기 반영적 소설들이 많은 듯. 특히 여성의 자립은 어디에서나 큰 화두이다. 사회는 그녀들을 이해하기 전에 '결혼하라'는 둥 '아이를 낳으라'는 둥 섣불리 조언, 충고하지 말 것. 자신만의 삶을 희생하는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게 그녀들이 줄 것이라고는 없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걸'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사회라면 더더욱.

오쿠다 히데오

오쿠다 히데오 책은 처음 읽었는데 듣던 것과 많이 다른 분위기. 일단 이런 소설을 남자가 썼다는 게 정말 놀랍다. 여자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



+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송장군님께 감사 ㅎㅎ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analy 2011/01/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른 문체입니다.
    이 작가의 스펙트럼은 되게 다양하다는 점이 놀랍죠.
    저는 <공중그네>는 좋아하지 않지만, <걸>이라든지, <남쪽으로 튀어>는 좋아합니다.
    다작이면서, 다양하기란 쉽지 않죠.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1/01/25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책들과 문체가 다르다고 별로 안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나 보더군요 ㅎㅎ
      어쨌든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골고루 사랑받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인 듯.
      암튼 재밌었어요.
      일본과 우리나라의 오피스 환경에 대한 비교도 되면서 말이죠. 훗.

모터사이클 필로소피 - 8점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이음

손으로 생각하기.
이 책의 부제로 붙어 있는 문구다.
손을 많이 움직이면 두뇌 발달에 좋다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포크보다는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종이접기를 하며 놀게 하지 않던가.
하지만 요즘엔 정말 손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손이 아닌 손가락과 손 끝으로 터치를 하는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와 스마트폰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가 우리의 손끝으로 움직여진다. 물론 이렇게라도 손을 움직이자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손으로 생각하기'는 단순한 손의 물리적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의 완력과 익숙한 감각들을 가지고 기계의 로직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잘 작동하도록 하는 과정에 우리 스스로의 힘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기계와 소통하는 것에 성공함으로써 우리의 인간됨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도들이 경시되어 가고 있는 풍조에 씁쓸함을 표현하며 손으로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의 벽을 깨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정직한 기록이다. 

사물을 보는 것이 늘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전문으로 다루는 비교적 초기에 나온 구형 오토바이만 해도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변수가 너무 많다. 또 어떤 증상은 원인이 너무 불분명하기 때문에 명쾌한 분석적 추론에 실패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오직 경험에서만 우러나오는 판단이다. 규칙보다 직감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싱크탱크에 있을 때보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37쪽) 
언제부터인가 손을 쓰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이 분리되어 인식되기 시작했고 손을 쓰는 것은 지식노동과 달리 못 배운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어 어느날 갑자기 사무실의 복사기나 화장실 변기가 고장이 났을 때 화이트칼라들이 그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아마도 그들은 전화번호부를 찾아 기술자를 부를 것이다- 어느 쪽이 우리의 진짜 '삶'에 밀착되어 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맹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를 선망하고 노후 염려 때문에 현재를 즐기기 보단 사회 시스템의 몰개성한 부품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왜 그런 삶이 전부라고 믿는가. 실제로 인간의 삶이 편안해 지도록 돕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우리의 편견을 버리고 시야를 넓히면 주위의 물컵 하나, 나사 하나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그가 남들이 인정하는 안정된 직장-정치철학박사 출신의 워싱턴 싱크탱크 소장-에서 '노동자'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 쉬운 오토바이 수리공이라는 직업을 택하는 결단을 감행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충족감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겁내지만 사실은 우리가 손을 움직여 만물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과, 마음이 이끌리는 직업을 자신있게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중반부,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는 부분은 오토바이나 기계에 대해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삶과 손, 기구에 대한 철학에 충분히 공감한다면 오토바이 수리공으로서의 인증 설명과도 같은 작업일지가 진실하게 읽혀질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내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게 되었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무엇보다 고정관념과 맞설 수 있는 작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할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0/12/16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0/12/22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입 속의 검은 잎 - 8점
기형도 지음/문학과지성사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죽음에 대한 느낌과 식물의 고정성, 사랑에 대한 미련, 어린 시절의 초라한 기억
모든 것이 혼합되어 있는 시어와 문장들이다.
모든 단어에서 쓸쓸한 바람이 불어나온다.
기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묵은 기운,
외로움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이 남긴 한 권의 시집을 읽었지만
흡사 느낌은 그가 그 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그 이후의 세월동안 더 나이를 먹고 쓴 듯하다.
청춘의 단어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깊고 눅눅할 수 있는지.

치열하면서도 일면 무기력함이 돌고,
무한히 뻗어나가는 듯 하면서도 이내 침잠해 버리고 마는 세계.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 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 詩作 메모 (1988.11)




매일 마시는 공기 한줌에 그토록 고민을 거듭했던 시대의 청춘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시어들을 보며 오싹한 느낌을 받는다.
진득한 어둠, 공허... 한없이 가벼운 요즘 내 일상을 부끄럽게 만드는 감상들이다.
그저 그렇게 바람에 날리듯 살다 갈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이렇게 글을 통해서나마 자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눈깨비

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
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
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
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
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
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낸 추억들이 밟히고
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
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했다, 진눈깨비


바보같게도 내 삶이 아주 조금은 더 고통스러워 진다 하더라도
많이 억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광장/구운몽 - 8점
최인훈 지음/문학과지성사

책소개

전후의 문제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려 제 3국을 택했으나 끝내 자살의 길을 택했던 석방포로 이명준.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 성찰을 밀실과 광장의 대비를 통해 묘사한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 수능공부할 때 얼핏 읽었던가. 갈매기와 무기력한 뱃전의 사나이 정도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던 <광장>을 드디어 다시 읽었다. 자그마치 '완독'이다. 이렇게 오래 전에  쓰여진 소설이 이렇게 오랜 텀을 두고 다시 책을 잡은 내게 강렬하게 다가올 줄이야.

주인공 이명준을 통해 저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 이념을 모두 신랄하게 비판한다. '광장'이 개인의 '밀실'만큼의 자유도 허용해 주지 않음을 비판하고 '혁명'을 그저 흉내내는 데 그쳐버린 껍데기 공산주의의 허울을 비웃는다. 소설의 결말,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은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을 인간의 권리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을 말한다. 자살은 권리의 실행이자 포기를 동시에 뜻한다. 이것은 이념의 갈등 사이에서 무기력하게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처지를 보여준다고, 나는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다.

"...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프랑스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p.62-63



인민 정권은, 인민의 망치와 낫이 피로 물들여지며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약소 민족의 해방자이며 영원한 벗'인 붉은 군대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바스티유의 노여움과 기쁨도 없고, 동궁(冬宮) 습격의 아슬아슬함도 없다. 기요틴에서 흐르던 피를 본 조선 인민은 없으며, 동상과 조각을 망치로 부수며, 대리석 계단으로 몰려 올라가서, 황제의 안방에 불을 지르던 횃불을 들어본 조선 인민은 없다. 그들은 혁명의 풍문만 들었을 뿐이다.
p.146



하지만 이 소설은 저자에 의해 여러번 수정되는 과정을 거쳐 결말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내려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마지막 장면 갈매기를 바라보던 시선을 끝으로 바다에 몸을 던진 이명준은 그 어느 쪽에도 융화될 수 없는 비균질한 육체와 의식을 비관해서가 아니라 갈매기를 통해 문득 떠올린 사랑했던 여자와 태어났을 뻔 했던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으로써 답은 '이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의 머릿속에만 맴도는 '자유'나 흉내만 내는 '혁명'이 아닌 즉물적 육체를 곁에 둠으로써 그 육체를 보듬고 내 것과 결합시킴으로써 완성할 수 있는 것, 즉 '사랑'이 인간사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저자의 인생의 어떤 굴곡이 그러한 결론을 내리도록 했을까에 대한 대답까지는 감히 내가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수많은 길을 돌아간 작가가 땀 닦으며 멈춰서 깃발을 꽂은 광장, 그 곳에는 다른 것 아닌 '사랑'이 있더라... 라고 한다면 나 같은 마음 가벼운 독자는 그저 그런가보다, 그게 진실인가보다 할 뿐이다.


마음은 몸을 따른다. 몸이 없었던들, 무얼 가지고, 사람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고지라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그렇게 보면 햇빛에 반짝이는 구름과, 바다와 뫼, 하늘, 항구에 들락날락하는 배들이며, 기차와 궤도, 나라와 빌딩, 모조리, 그 어떤 우람한 외로움이 던지는 그림자가 아닐까. 커다란 외로움이 던지는. 이 누리는 그 큰 외로움의 몸일 거야. 그 몸이 늙어서, 더는 그 큰 외로움의 바람을 짊어지지 못할 때, 그는 뱄던 외로움의 씨를 낳지. 그래서 삶이 태어난 거야.
-p.93


"이 동무가 수상이라면 어떡하시겠어요?"
"나? 나 같으면 이따위 바보짓은 안 해. 전쟁 따윈 안 해. 나라면 이런 내각 명령을 내겠어. 무릇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은 삶을 사랑하는 의무를 진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적이며, 자본가의 개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다. 누구를 묻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말이야."
p.161



이 은근 야하고 관능적인 소설이 청소년 추천문학으로 꼽히다니, 그 때 진지하게 읽어볼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재밌는 소설이었다. 이념과 이상, 본능, 부모와 나의 세계, 죽음과 사랑 등 죽을만큼 괴로워 했던 주인공의 간절한 고뇌마저 이제는 '낭만적'이라고 느껴지는 걸 보니 나는 역시 살만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단 생각이 든다. 

나는 영웅이 싫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좋다. 내 이름도 물리고 싶다. 수억 마리 사람 중의 이름 없는 한 마리면 된다. 다만, 나에게 한 뼘의 광장과 한 마리의 벗을 달라. 그리고, 이 한 뼘의 광장에 들어설 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만한 알은체를 하고, 허락을 받고 나서 움직이도록 하라.
p.186






* <구운몽> : 이 소설이 굳이 <광장>과 맞붙어 있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든 주체로부터 '참여'할 것을 강요받는 주인공 독고민이 계속하여 도망치다가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의 죽음이 그의 삶을 통해 지속된 '선택'의 종결편이라고 볼 수 있다면 <구운몽>의 주인공 독고민의 죽음은 자신이 지켜내야 할 권리들로부터 끊임없이 종용당하다가 막다른 길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죽어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행위든 '능동'이냐 '수동'이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죽음을 맞을 '광장'을 찾아 나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스스로 내 몸을 뉘일 '광장'을 지어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광장의 바닥을 까는 타일 하나를 고르는 손길에서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 손길 하나하나가 바로 나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S's hypertext

2009/04/02 - [신씨의 서재/문학/외국소설] - [책] 신곡 (1321, 단테)_인내와 겸허함을 절로 깨우치는 여정

오늘날 당신은 신이 인간의 손으로 직접 만든 피조물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생각하기를 진작에 포기했든가.

한영애가 부릅니다.
 '조율'




관련글
2009/01/07 - [신씨의 스크랩/추천곡] - S's Collection #1~4 수록곡 리스트


광장/구운몽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2009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촌수필 - 8점
이문구 지음/문학과지성사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그리고 단숨에 읽게 될 줄 몰랐다. 지어진지 30년이 훨씬 넘은 책이다. 책의 주된 내용은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극중 저자(아마 이문구 작가의 실제 어린 시절과 지인들이 책에 고스란히 등장했을 것이다)가 살고 있던 충청도 보령 지방 작은 시골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성격과 삶에 대한 묘사다. 한자어는 없지만 그래도 사전에도 있을까 의심스러운 명사, 형용사, 부사가 다닥다닥 달려나오는 어려운 문장들이 이어진다. 어릿하게나마 짐작으로 넘어가고 머릿속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어가다보니, 요전에 계속해서 현대소설만 읽던 버릇이 남아선지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나지 않아 조급증도 일었다. 하지만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내가 어쨌고 저 집이 저랬더라는 이야기들이 줄지어 펼쳐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는 것처럼 풀잎사귀 빛깔이며 소똥냄새, 바다냄새까지 맡아가며 훑어내릴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다섯 챕터에는 각기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저마다의 위치에서 주인공과 다양한 관계를 이루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사람들 특유의 구수함과 순진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사투리와 몸짓이 그려지는 부분에서는 웃임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 고향 관촌부락을 찾은 주인공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흔적을 더듬고 아는 얼굴들을 만나고 할아버지의 유령을 마주치는 등 옛 추억을 부지런히 소환해 보지만 그것은 이제 주인공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는 풍경일 뿐이다. 어리숙한 시골 사람들의 삶들을 한바탕 구성지게 풀어낸 이후에는 쓸쓸함만이 남은 느낌이다.격변하는 시대를 겪어내는 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 비록 우스운 에피소드도 많고 간간이 두근거리는 마음, 끈끈한 우정 관계도 등장하지만 이제 주인공에게는 좋았던 한때의 지난 이야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자신부터가 전쟁 때 사정이 기운 양반집안 출신이며 어린 시절 친누이처럼 자신을 보살폈던 부엌데기 옹점이는 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마을 일을 자신의 일처럼 치러냈던 석공은 병을 얻어 죽었다. 인정도 사라지고 법조차 이들의 삶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요상하고 억울한 시대에서 젊은 세대들은 짐을 싸 도시로 도망치듯 떠난다.
 변한 건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어두운 밤 시골 소년의 마음을 놀래키던 도깨비불은 도시에서 몰려간 낚시꾼들의 야광찌로 바뀌었고 잔칫날마다 동네 사람들의 몸과 정을 살찌우던 돼지는 들판에 버려진 콘돔을 삼키고 죽는다. 근대화의 흐름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스러져 가고 있는 노쇠해진 작은 동네 이야기는 이렇듯 씁쓸함을 남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서있는 지금 이곳을 새삼스레 다시 되짚어보게 만드는 것이다.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 컸으며, 낄룩― 하는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p.51



모두가 인정하듯 문장을 읽는 맛 하나는 최고다. 이런 한글 소설을 외국어로 100% 완벽하게 번역해 내기가 절대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이런 문장들을 현대소설에서 맛보기조차 힘들어졌으니... 이렇게 신간과 고전을 번갈아 읽는 것, 꽤 좋은 독서 방법인 듯.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랄랄라 하우스 - 8점
김영하 지음/마음산책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랄랄라 하우스>가 출간되었다. 그간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글과 사진을 함께 실었다. 작가가 직접 그림, 사진을 작업했고 만화가 이우일이 본문의 김영하 캐리커쳐를 그렸다. 본문은 Free Talk, 사진집, 방명록의 세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Free Talk'는 도시, 쇼핑, 사랑, 문학, 담배, 시간 등에 관한 단상들로 엮었다. 임시로 맡았다가 키우게 된 고양이 방울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입양하게 된 고양이 깐돌이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사진집은 김영하 자신과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장소들로, 방명록은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졌다.


거대 서사가 아닌 개인적 미시사를 쓸 땐 이토록 발랄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소설가의 일상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가 궁금하다면 기꺼이 읽어볼 만한 책. 고양이 2마리를 향한 애정이 움트는 시간에서 문학을 대하는 태도, 여행 이야기 등 인간 김영하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경계없이 술술 풀려나오고 있다. 특히 소설 <검은 꽃>의 취재차 방문했던 멕시코나 과테말라 여행기는 현실과 과거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작가가 견디어 내는 시간이 어떤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듯 하다. 작가의 미니홈피를 들여다 보듯 사진첩 / 방명록 / 게시판 등으로 나뉜 챕터가 재밌다. 또 독자들이 게시판에 줄줄이 달아 놓은 댓글, 그리고 작가가 직접 단 리플까지 읽을 수 있다는.

아.. 김영하라는 사람은 그렇게 살고 있구나. 그런 사람이 그런 글들을 쓰는 것이구나. 아주 사소한 것에서 우주의 비밀을 발견해 내는(발견까지는 못 가도 그저 찾으려고 애만 쓴다 할지라도 의미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평범하게 우리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런 글들을 쓸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들. 그리고 이것저것 재주가 많은, 상식이 풍부한, 무엇보다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오가며 읽기에 딱 좋은 책. 가끔 혼자 낄낄거리다 주위 시선에 뻘쭘해 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랄랄라하우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김영하 (마음산책, 2005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adthink.tistory.com BlogIcon 여 울 2010/06/29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가 직접 작업한 그림과 사진이 함께하는 산문이라 기대되네요.
    작은 사소한것에서 우주의 비밀을 찾아낸다는 부분이 인상 깊네요 ^^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0/06/30 0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 일상도 비범할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신기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ㅎㅎ
      가볍고 유쾌하게 읽을만한 책입니다 ^^

  2. 쿵쾅 2010/06/29 1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영하에 푹 빠졌구나. 나도 소설을 다 보진 못했는데 ㅎㅎㅎ 이탈리아 여행(거주?)한 에세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이것도 함 봐봐 ㅎㅎ

    • Favicon of http://shinsee.tistory.com BlogIcon shinsee 2010/06/30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책도 냈구나 ㅋㅋ 정말 다양한 방면의 글을 쓰시는군;; 추천해 준 책도 꼭 읽어봐야겠다 ㅎㅎ 우리도 곧 보자~ ^^

아랑은 왜 - 8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이 소설은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다시 고쳐 장편으로 펴낸 것이다.그래서인지 맨 처음 연재되었을 때와는 다른 부분도 있다. 연재되었을 당시보다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을 보강하고 더불어 아랑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다.

지은이는 이번 소설을 통해 소설가의 역할 및 자신의 소설가적 자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 이야기라는 주장을 하며 그 공을 이야기에게 돌리면서 말이다.

그동안 김영하가 보여주었던 소설과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는 소설. 슬쩍슬쩍 던지는 인물들의 대사에서 우리는 태연하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은이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하의 소설 <아랑은 왜>는 '정옥낭자전'이라는 허구의 소설을 끌어와 좀더 탄탄하고 치밀하고도 역동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시도를 한다. 이 남자 주인공의 배경엔 뭐가 있었을까, 그 여자는 왜 그 때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배후에 숨겨진 엄청난 이야기들이 더 있지는 않았을까, 그것이 의도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숨겨져야 했던 건 아닐까 등등에 대한 상상은 보통 평범한 추리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가동시켜야 하는 뇌용량의 한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정은 뭐 과학적인 것도 좋고, 역사 적 배경이 확실한 것도 좋지만, 그냥 '이렇게 하면 더 재밌으니까'가 가장 좋은 것이더라. 다 필요없고 자고로 '이야기'란 '가장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원전이 확실치 않은 이야기, 그 옛날 누구누구와 누구누구가 사랑했다가 헤어진 이야기, 아무개가 원한을 사서 살해 당하고 밤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 호소한다는 이야기들... 현대의 우리들이 더이상 읽지 않는, 그 옛날 '전래동화집'을 통해 다 뗐던 이야기들이 조금만 시각을 바꾸어서 본다면, 조금만 비틀어 보고 그 주인공들의 말못할 사연에 대해 상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엄청난 서사가 다가온다. 이건 어제 본 영화 <방자전>과도 같은 맥락이다. 주인공은 절개를 지킨 춘향이와 약속을 지키러 돌아온 이몽룡이 아니라 춘향을 몰래 사랑했던 방자의 순애보에 관한 이야기라는 해석. 밋밋한 줄기만 남아버린 플롯에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개연성을 갖다 대다 보니 엄청나게 다양한 스토리로 나아가더란 말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그 본능적인 욕구의 근원까지 궁금해지도록 만든다. <아랑은 왜>는 작가가 혼자 썼지만 소설을 구성하는 과정에 독자를 동참시킴으로써 우리를 화자이자 독자의 입장에 동시에 위치시킨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의 행위나 시대적 배경을 결정할 때 독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식이다. 물론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독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처음부터 'A가 B를 한다'라고 가정하고 나아가는 것보다 A가 그냥 B를 하는 것보다는 C를 가지고 D를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재밌으니까 그렇게 가보자'는 식이라면 독자로선 훨씬 능동적으로 글 읽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한번 읽고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매력을 새삼 느껴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랑의 전설이라는 플롯 자체에 대해 빠져드는 게 아니라 '아랑'을 소설의 소재로 삼음으로써 수행해야 할 소설가적 임무, 영감, 추리, 상상, 글발, 개연성있는 거짓말, 뒷조사, 지식의 동원 등등에 대한 작가의 A to Z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게 이 책 <아랑은 왜>의 색다른 매력이다.

아랑은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굴비낚시 - 8점
김영하 지음/마음산책

굴비 낚시 / 작가의 말

1. 수정아 사랑해 / 오! 수정
2. 인터뷰 감식법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3. 새마을 운동이여 안녕 / 쉘 위 댄스
4. 사랑이라는 이름의 버그 / 러브레터
5. 아름다운 잡탕들 / 매트릭스
6. 동문서답 / 주유소 습격사건
7. 셰익스피어가 내게 속삭이기를 / 셰익스피어 인 러브
8. 아, 신창원 / 쇼생크 탈출
9. 미학적 마조히즘 / 아메리칸 뷰티
10. 내 마음의 신파 / 시네마 천국
11. 아날로그의 망령 / 토이스토리2
12. 사랑은 불안의 부산물? / 걸 온 더 브릿지
13. 평소에 잘하자? / 유 턴
14. 바퀴와 포르노에 관한 명상 / 부기 나이트
15. 내 친구 오이디푸스 / 애널라이즈 디스
16. 축제가 좋아 /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ㆍ백치
17. 베트남과 망각에 관한 농담 한마디 / 동사서독ㆍ다다를 수 없는 나라
18. 서정의 정치학 / 대부2


<굴비낚시>라는 제목을 듣는다면
아, 영화를 굴비처럼 줄줄이 낚아 올려서 굴비낚시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보다는 살짝 더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다.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후 엮어서 만든 판매용 상품이다. 조기가 오리지널이라면 굴비는 그것을 가공하여 만든 제품인 것이다. 현실을 비틀고 과장해 만드는 영화는 그래서 '조기'가 아닌 '굴비'에 비유된다. 조기보다 굴비는 오래 가고 잘 팔리며 맛이 좋다. 하지만 굴비는 조기가 없이는 존재 불가능한 존재다. 우리는 굴비를 소비하지만 사실은 조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 영화들이 뜨끈뜨끈한 신작이었을 시기에 읽었다면 얼마나 신바람나고 두근거렸을까. 무려 <오! 수정>이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처럼 10년이나 지난 영화들에 이런저런 사연과 상념들을 더해 풀어놓는 글은 그래서 다소 김이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문장이 주는 힘과 재미만큼은 전혀 낡지 않았다.

김영하의 영화 리뷰(?)는 나의 영화 리뷰와 다르다. 그의 글은 영화가 담아내고자 했던 현실을 파헤치고 그것이 영화에서 어떻게 미화되고 과장되었는지를 짚어낸다. 그러다보니 정작 영화 텍스트 자체에 대한 내용보다는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사회 해부도와 같은 느낌이 더 강하기도 하다. 영화의 미학이나 작가주의 따위보다는 왜 이런 영화가 이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우리는 그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작가가 내내 강조하는 '시대정신' 탐구의 영화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이만한 썰을 풀어내려면 내공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 걸까. 서른에 쓴 책이라는데... 제길. 이 상대적 박탈감. 나도 적지 않은 양의 영화를 보건만... 그러나 좋아하는 작가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또 없다. 그저 알아뫼실 뿐이다. 다시 가슴 두근거리며 또 다음 책을 펼쳐드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wdfish.net BlogIcon 완도서경낚시 2010/07/03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고의 서비스로 모십니다.남해안 갈치낚시의 전초기지
    완도서경낚시 클릭하시면 조황정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출 - 10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도마뱀
호출
도드리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
배를 가르다
전태일과 쇼걸
나는 아름답다
거울에 대한 명상

해설
작가의 말


또 김영하다.
우연히 예전에 썼던 글들을 들추어 보다가 왜 K가 내게 김영하 전집을 갖다 줬는지 알게 됐다.
내가 블로그에 올렸던 나의 독서 성향 테스트에서 나와 잘 맞는 작가로 김영하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역시 섬세한 이 같으니... K도 그렇지만 그런 독서 성향 테스트를 만든 이들도 그렇다.
어떻게 안 거야, 내가 이렇게 김영하에 꽂혀버릴 줄...

출퇴근길에 신문 대신 책을 끼고 다닌지 며칠 만에 김영하 책만 4권 째 읽고 있다. 그래서 문제라기엔 조금 뭣한 문제가 있다면... 리뷰를 채 쓰기도 전에 다른 책을 절반 이상 읽어버리기 때문에 전에 읽은 내용과 지금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짬뽕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분명 어느 구절인가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가슴을 때렸던 문장들도 있었고(버스 안에서 서서 책을 보려면 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펜을 꺼내 줄을 긋거나 하는 등의 사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아...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이런 감상을 떠올렸겠구나 심하게 공감되어 책 속에 코를 파묻고 싶은 부분(그래봤자 종이에 콧기름만 묻겠지만), 미친 듯이 메모를 하며 내 생각을 확장시켜 가고 싶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인간의 기억이란 너무나도 얄팍한 것이어서.. 책장 딱 덮고 나면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

그런데도 굳이 리뷰를 쓰겠다고 이렇게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이유는 김영하의 글이 나로 하여금 미친 듯이 '글이 쓰고 싶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이 그의 단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든 현대사회의 패배자들의 삶을 작가가 혼자 체험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모든 것은 체험에서 비롯된 상상으로 이루어진 캐릭터와 사건과 배경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나도... 이렇게 팍팍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나도 조금 노력해 보면 무언가 내 안에서 끄집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열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음악, 영화, 학생운동, 사진, 죽음, 신내림, 게임, 범죄, 섹스, 극한의 외로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연스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 걷어내지 못한 내 안의 오만함이나 부끄러움, 머뭇거림, 무지(無知)를 뛰어넘으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나이를 먹어야 할 것이고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인간과 사회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버스 안에서 몸이 흔들릴 때 문득문득 생각하곤 한다. 평생 읽고 쓰는 일은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뭐 내 글을 누가 읽든 안 읽든 그건 나중 문제.

그리고 중요한 건 김영하의 글처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시대가 결정하고 구조가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동양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래서 김영하의 인물들은 자립하지 못하고 언제나 주변 요소에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와 자아가 부딪혀 만들어지는 균열 사이에 판타지와 절망이 번갈아 잠입한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절망, 단조로운 인간관계, 배반, 눈치 속에서 자아의 욕구가 해소되지 못하는 순간 그 욕망은 (대부분) 비극 또는 허무로 나아간다. 그래서 김영하 단편소설의 모든 결말은 '空'이다. '無'가 아닌, 그리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과정이야 어쨌든 결국엔 '空'이 되어 버리는 상태, 그 과정에 설득당하는 게 김영하 소설을 읽는 재미다. 요즘 나를 들뜨게 하는.

p.s. <호출>의 마지막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은 바로 故 이은주의 유작인 <주홍글씨>의 원전이었다. 예전에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 제목을 본 적도 있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새삼 눈에 들어왔다. 삶의 허무, 죽음에 대한 환상, 육체적 욕망, 떨칠 수 없는 과거를 끊임없이 말하는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 안에 이은주의 모습이 꽤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새삼 하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한 비극. 이런 요소에서 드라마틱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불손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호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펴냄, 1997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진관 살인 사건', '당신의 나무' 등 9편의 단편을 실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드러난 나르시시즘적 인물,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구성 등의 특징들이 이번 작품집에서도 발견된다. 반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더욱 세련되어졌고, 소설은 허구라는 모토에 훨씬 접근해있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는 법을 망각했다. 몸으로 나누는 대화에 익숙하고 욕망이 머리를 다스리고 그 몸과 욕망은 다시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빛을 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낄 수 있나? 를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놀랄만큼 우리가 그러한 일들에 얼마나 무심한 채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상기해 본다면, 더이상 세상에서는 놀랄 일이 없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지하철 플랫폼 노란선을 넘나드는 것처럼 미묘한 차이다. 중심을 잡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 하지만 그 경계를 깨달은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외로움과 혼란스러움, 죽음에 대한 無공포를 잘 이겨내야만 한다.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침묵'?

건조하고 외롭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월한 듯 하지만 결코 그들보다 우월하거나 행복하지 못한 인생들. 그저 살아갈 뿐인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해도 탐내지 않고 증오도 품지 않으며 그저 주어지는 시간만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언어와 사고가 이렇게 유려할 수만 있다면 그건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부한 삶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부러움이 들게 만드는 문체다. 단 10줄만 읽어도 주인공에게 십분 동화되어 버리도록 만드는 것이 김영하의 단편들이 지닌 힘이다. 관념적인 문체 안에서도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에 각 단편이 모두 다른 맛을 지니고 있고 이야기 속 수많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 느낌이다. 아, 그들과의 대화는 물론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차피 말로 해도 못 알아들을, 이렇게 차라리 글로 나누는 것이 나을, 그런 '침묵'의 대화. 그렇지만 그 어떤 소통 방식보다도 정확하고 사려 깊은.

이런 식으로 김영하 소설만 계속 읽다가는 우울증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멈출 수가 없다.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검은 꽃 - 8점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김영하의 『검은 꽃』은 뇌쇄적인 작품이다. 가장 약한 나라의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경영을 이렇게 강렬하게 그린 작품은 일찍이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작가가 이들의 고난을 처절하게만 그려 연민의 눈물을 쥐어짜내는 감상주의에 빠지지도 않았고 주인공의 의지만으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영웅본색'식 모험담에 유혹당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검은 꽃』에서 가혹한 운명과 마주한 사람들은 그 운명에 맞서 싸울 힘 하나 없는 바로 그 처지로 자신들의 운명을 다스려나가는데 그러한 과정 자체가 운명의 블랙홀 속으로 무참하게 흡입되어가는 형국을 이룬다. 그리하여 독자는 가장 비천한 살마에게서라도 사람답게 살고자 할 때는 어김없이 비쳐나는 고결한 기품과 유한자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패배가 자아내는 깊은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작가는 '동일시'와 '낯설게 하기'라는 모순된 기법을 하나로 융합시켜나가는 가운데 정념의 '두 무한'을 인간 정신의 높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처럼 세워놓았다. 올해의 한국문학이 배출한 최고의 수작이라고 서슴없이 말해도 좋으리라.


에네켄

오래 전 얼핏 보았던 <애니깽>이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그게 멕시코의 아시엔다(대농장)에서 재배하던 작물 이름 에네켄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거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와이나 멕시코 등지로 노동이주를 떠났던 최초 이민세대들의 회한의 세월, 이야기 들은 바는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역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개개인의 생활로 들여다 보게 된 것도 처음이다. 굳건하고 짧은 김영하의 문장들이 마치 김훈의 문체를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과장됨이 없는 침착한 묘사다. 책 표지 뒤에 나와 있는 동인문학상 수상적 선정 이유에서 볼 수 있듯 이야기와 인물들 모두의 안에 '슬픔'이 있되 그것은 '뇌쇄적'으로 그려진다. 야만이나 다름없는 조선의 19세기에서 문명으로 가기 위해 우리 민족이 거쳐 가야 했던 어두운 터널 반백년 동안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이 땅에서, 또 다른  땅으로 건너간 우리 민족에게 일어났는가. 이것의 껍질은 소설이지만 결코 허구가 아닌, 우리가 똑바로 직시해야 할 객관적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비참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관련기사
'애니깽'이란 말을 아시나요? 2006/10/22 세계일보

기억에 따르면 그간 읽었던 역사소설의 엔딩이 해피엔딩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무언가 희망의 불씨를 살려 놓은 채 희생을 하곤 했다. 그들의 헌신을 통해 후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박적으로 인식시키려는 것처럼.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정말 먼지처럼 살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엄연히 살아남아 열심히 각자의 일생을 일구어 나가고 있겠지만. 이 소설 속에 나왔던 불꽃같았던 젊은 연인 김이정과 이연수만 하더라도 김이정은 우리 민족과 하등의 관계나 교류가 없었던 멕시코나 쿠바, 과테말라와 같은 중남미 국가들의 혁명 전쟁에 휘말려 죽고 말았고 이연수는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이후로 계속 여자로서 비참한 생을 이어나간다. 혁명가의 이발사였던 박정훈도, 궁중의 마지막 악사였던 김옥선도, 허울좋은 독립국가를 꿈꾸었던 조장윤도, 벌레처럼 살다 아편중독으로 죽은 통역가 권용준도, 종교와 신념 문제로 얼룩진 삶을 살았던 박광수도,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으로 살다 죽은 최선길도... 그들이 각자의 삶을 위해 얼마나 치열했는지와 상관없이 하나같이 소위 개죽음을 당했다. 이유는 오직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들에게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요, 둘째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속감을 찾아 행동하고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투쟁했다. 치열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계급신분도 없는 희망의 땅에 가서 돈을 벌어 금의환향하겠다는 꿈을 안고 일포드 호에 몸을 실었던 그 순간부터, 한 달의 항해를 거치는 동안 파도에 흔들려 남녀의 몸이 뒤섞이고 토사물과 음식이 뒤범벅되는 지옥같은 공간을 지나 '강산'이 없는 낯선 땅 멕시코에 부려진 후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노동에 시달리고 그 이후에도 남의 나라 내전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휘말려 들어가 목숨을 잃게 되기까지 그들은 그야말로 모진 삶을 견뎌냈다. 지금 내가 이 곳에 살아 있기까지 이어져온 이 나라의 역사 면면은 어쩌면 이렇게도 애끓고 비통한지...

꽤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꽤 긴 시간 동안의 사건을 다루지만 압축적이고도 냉철한 문체 덕분에 한 권으로 충분한 역사소설이 되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그 시절 그 땅에 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어지러웠던 당시 세계사가 그들의 먼지같은 죽음들을 뒤덮어 버렸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느낌이 든다.

검은 꽃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shinse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bandinbook.tistory.com BlogIcon 반디앤루니스 2010/06/14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씨님, 안녕하세요.
    저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김현선이라고 합니다.

    저희 반디앤루니스는 이번 다음 View와의 제휴를 통해 <반디 & View 어워드>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매주 '다음 VIEW'에 노출되는 블로그 중 좋은 글을 선정하여, 선정된 블로거분들께 반디앤루니스 적립금을 지급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신씨님의 리뷰가 <반디 & View 어워드>에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적립금 지급을 위한 반디앤루니스 아이디와 다음뷰 발행 닉네임을 담당자 메일(anejsgkrp@bandinlunis.com)로 6월 16일까지 보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또한 앞으로도 <반디 & View 어워드>를 매개로 신씨님과 좋은 인연 계속 이어가길 소망합니다. 그 밖에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담당자 메일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매주 <반디 & View 어워드> 선정작은 반디앤루니스 책과 사람 페이지(http://www.bandinlunis.com/front/bookPeople/awardReview.do?awardType=02)와 다음 파트너 view 베스트 페이지(http://v.daum.net/news/award/weekly)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김현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