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 문학동네
얼마 전 중구 주민도서관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빌리고 나서 요즘 하루에 50페이지씩 책읽기 실천중이다. 그 첫 번째 도전작은 애정하는 작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었는데 역시나 후회없는 선택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빛의 제국>
이 책은 남한에서 가정을 꾸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한 남파 간첩 김기영이 귀환 명령을 받은 날,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한 일가족의 구성원이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일터와 학교로 향하고 그 사이 마주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정치를 하는 과정들을 집요하게 관찰하게 된다. 십 수년을 함께 산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 그들 각자의 삶의 테두리에는 서로의 영향력이 거의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파 간첩이라는 사실을 십 수년 동안 가족 모르게 살아온 가장 김기영을 비롯하여, 딸과 불과 몇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어린 청년과 변태적 사랑을 나누는 장마리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또래보다 조숙하고 영리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다질 줄 아는, 세상을 한참 배워 나가는 과정에 있는 어린 딸 현미까지 이 세 가족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되 각기 다른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 날(김기영이 송환 명령을 받은) 하루는 이 세 사람은 각자의 영역 안에서 허용되는 한 가장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남파간첩 김기영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이념에 대한 물음들, 그리고 추억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며 방황하고, 스무 살 어린 애인과 일탈을 즐기던 장마리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가족과 단짝친구를 벗어나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현미에게 공통적으로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간 유지해 왔던 일상성이 파괴됨과 동시에 인식의 전환을 맞게 되는 시간, 그 단 하루.
일가족의 단 하루
다음 날 아침은 전 날 아침과 똑같이 밝아 왔고 다시 이 구성원은 한 공간에 모여 있지만 이들 각자의 세상은 분명 어제와 달라졌고 앞으로도 다르게 굴러갈 것이다. 김기영을 억지로 가정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정작 장마리는 딸의 안전을 위해 남편에게 혼자 북으로 돌아가라고 선언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영에게 등을 돌린 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작가적 삶을 꿈꾸었던 '소지'도 마찬가지였다. 마리도 소지도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환멸을 느끼지만 막상 그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함과 지루할 정도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오면 마음이 바뀌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남한에서 이십년 가까이 살아온 남파간첩 기영도 마찬가지였다. 무료할지언정 반복되는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 사회의 밖에 나와 그 곳을 바라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비록 한 공간 안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갈지언정 그래도 온전한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감을 선사해 주는지, 그 하루 동안 기영, 마리, 현미는 모두 깨달았을 것이다. 소지가 말하는 드라마틱한 삶처럼 처절하지 않게 치열하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하고 무난한 일상, 그 안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빛의 제국에서는 빛이 사라지기 전엔 아무도 그게 빛인지, 그 빛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채 사는 것이다.
김영하
바로 전철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채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것만 같은 작가, 김영하.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각 인물이 입고 먹고 마시고 타고 지나치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친근해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김기영과 소지가 함께 추억하는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되살려 허무하게 추억하고 그 위에 세워진 <빛의 제국> 안에서 누추한 욕망과 환상을 품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새 변해가며 무섭게 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그리고 그 무언가에 무뎌져 간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빛의 제국>인 줄로만 알고 태어나 현미와 같은 세대를 사는 이들은 결코 알기 힘들.
<빛의 제국 > 이전의 소설 속 '이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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